정부 재정지출 비율 상승했다지만… 아직도 '22년 전 프랑스'보다 낮다 [추적+]
정부 재정지출 비율 분석해보니
지출 늘었지만 정부 역할 미비
복지 지출 늘어도 비율은 꼴찌
경제 관련 정책 우선순위 하락
환경 외치지만 지출엔 소극적
재정 확충 후 똑똑한 지출 필요
대한민국은 지난 20여년간 어떤 국가를 지향하면서 달려왔을까. 방향성을 묻는 질문이어서 답을 구하는 게 마땅치 않다. 이럴 때 정부가 어떤 분야에 돈을 썼는지를 보면 그 방향성을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2000년부터 2022년까지 우리나라 정부가 어디에 재정지출을 해왔는지 분석해봤다.
한 국가의 재정운용은 그 국가가 설정한 목표를 실현하는 수단이다. 국가의 재정운용 내용을 들여다보면 국가가 무엇을 목표로 해왔는지 알 수 있다는 의미다. 중요한 건 무엇을 목표로 하든 재정운용 내용엔 정치적 이념과 정책 우선순위, 경제 여건, 성장 전략. 시대적 요구 등을 반영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지난 20여년간 한국의 재정운용은 어떤 지향점을 갖고 있었을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 일반정부의 분야별 재정지출을 총지출 대비 비율과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율로 따져봤다. 이렇게 하면 시기별 정부 정책의 우선순위와 정부의 개입 정도를 파악할 수 있고, 분야별 절대적 지출 수준을 국가별로 비교할 수 있다. 분야는 일반공공서비스, 공공질서ㆍ안전, 국방, 경제문제, 환경보호, 주거ㆍ지역사회편의시설, 보건, 오락ㆍ문화, 교육, 사회복지 등 10개 분야(유엔 국제기준 적용)다.
또한 한국의 재정지출 변화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국의 재정지출 구조와도 비교해봤다. 비교 대상 국가는 '3050클럽(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이상, 인구 5000만명 이상)' 소속 7개국(미국ㆍ일본ㆍ독일ㆍ영국ㆍ프랑스ㆍ이탈리아)이다.
우선 2000년부터 2022년까지 정부의 분야별 재정지출 변화를 살펴보자. 재정지출을 총지출 대비 비율로 비교하면 정책 우선순위 변화를, GDP 대비 비율로 비교하면 재정지출의 관여도를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GDP 대비 비율과 총지출 대비 비율 모두 상승, 모두 하락, GDP 대비 비율 상승과 총지출 대비 비율 하락, GDP 대비 비율 축소와 총지출 대비 비율 상승 등 네가지로 구분해서 살펴봤다.
GDP 대비 비율과 총지출 대비 비율이 모두 상승했다는 건 해당 분야의 재정지출 증가와 동시에 국내 정책 우선순위가 강화하고 있다는 뜻이다. 여기에 해당하는 분야는 사회복지, 보건, 오락ㆍ문화 분야다.
사회복지 분야 재정지출은 GDP 대비 5.86%포인트, 총지출 대비 10.42%포인트 상승했다(이하 2000년 대비 2022년). 보건 분야는 GDP 대비와 총지출 대비 각각 3.69%포인트와 4.02 %포인트, 오락ㆍ문화 분야는 각각 0.43%포인트와 0.18%포인트 올라갔다.
GDP 대비 비율이 하락한 분야는 없었다. 따라서 GDP 대비 비율과 총지출 대비 비율 '모두 하락'이나 'GDP 대비 비율 하락과 총지출 대비 비율 상승'에 해당하는 재정지출은 없었다. 나머지 7개 분야는 모두 'GDP 대비 비율 상승과 총지출 대비 비율 하락'에 해당했다. 명목상의 재정지출은 증가했지만, 국내 정책의 우선순위에선 중요도가 낮아졌다는 얘기다.
총지출 대비 비율이 가장 크게 떨어진 분야는 경제문제(-7.45%포인트) 분야였다(표➋ 참조). GDP 대비 지출 규모는 과거와 유사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지만, 정부 재정지출의 비율은 타 분야에 비해 크게 하락했다. 이어 교육(-2.82%포인트), 국방(-2.80%포인트), 주거ㆍ지역사회편의시설(-1.70%포인트), 일반공공서비스(-1.30%포인트), 공공질서ㆍ안전(-0.91%포인트), 환경보호(-0.36%포인트) 순이었다.
분석 과정에서 우리나라의 재정지출은 몇가지 주목할 만한 특징들을 보였다. 첫째, 한국의 재정지출이 늘고 있지만, 여전히 정부의 역할이 미미하다. 2000년 한국의 총 재정지출 비율은 GDP의 22.70%였는데, 이는 프랑스(51.8%)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2022년엔 14.3%포인트 상승한 37.0%를 기록했지만 아쉽게도 가장 낮은 수준이다. 22년 전 프랑스보다도 낮다. 미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들은 현재 40~50%대를 기록 중이다.
둘째, 사회복지 재정지출이 GDP 대비든, 총지출 대비든 모두 상승했다. 특히 2022년 기준 총지출 대비 비중이 24.30%인데, 국내 재정의 4분의 1이 사회복지 분야에 지출되고 있다는 뜻이다. 고령화와 복지국가 전환이라는 한국의 당면 과제를 잘 보여주는 수치다.
다만 이를 근거로 한국이 복지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고 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총지출 대비로 보면 프랑스(40.84%), 독일(40.79%), 일본(39.35%), 이탈리아(38.98%)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GDP 대비로 봐도 한국은 9.02%다. 이 비율이 한자릿수인 국가는 우리나라와 미국(8.33%)이 유일하다.
셋째, 경제 문제 관련 재정지출 비중의 변화다. 통계를 보면, 총지출 대비 비율은 2000년 22.92%에서 2022년 15.47%로 하락했다. GDP 대비 비율은 2003년에 잠깐 크게 상승하긴 했지만, 전반적으로는 5%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정부가 경제 활성화를 위한 재정지출을 해왔지만, 경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이 우선순위에서는 뒤로 밀렸다는 뜻이다.
넷째, 환경보호 분야의 재정지출이 소극적이었다는 점이다. GDP 대비 비율은 2000년 0.75%에서 2022년 1.06%로 상승했지만 총지출 대비 비율은 2000년 3.22%에서 2022년 2.86%로 떨어졌다. GDP 비율이 상승했다는 건 재정지출 규모가 늘었다는 것이다. 반면, 총지출 대비 비율 하락은 환경보호 분야 외 다른 분야의 지출 비율이 크게 올랐음을 시사한다.
이처럼 한국의 재정지출 비중은 높지 않아서 향후 이를 늘릴 여지가 충분하다. 다른 국가들만큼 재정지출을 확대해야 한다는 건 아니지만, 고령화나 인구 감소, 지방소멸 등에 적절하게 대응할 수는 있을 거다. 그러기 위해선 재정을 확충할 필요가 있다. 윤석열 정부처럼 '세수펑크'를 초래하는 정책을 펴선 곤란하다. 차기 정부의 몫이다.
김유리 나라살림연구소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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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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