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서사 거부하는 ‘누보로망’ 걸작… 짧지만 깊게 읽는 ‘인간의 본성’
민음사 · 문학동네서 각각 출간

불어로 ‘새로운 소설’이라는 뜻의 ‘누보로망’(Nouveau roman).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언어적 모험을 감행한 프랑스 작가들을 중심으로 집필된 전위적 소설들은 세계 문학사에 커다란 이정표가 됐다. 각 인물을 중심으로 사건을 배치해 위기와 절정을 지나 결말에 이르는 기존 소설 서사를 거부한다는 점에서 ‘반(反)소설’로 불리기도 했다.
누보로망의 시초격으로 여겨지는 나탈리 사로트의 ‘향성’(민음사·왼쪽 사진)과 누보로망의 대표 작가인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초기 걸작인 ‘동네 공원’(문학동네·오른쪽)이 최근 각 출판사의 세계문학전집으로 출간됐다.
두 권 모두 해설을 제외한 소설 분량은 72쪽과 118쪽에 불과한 가벼운 분량이라는 공통점도 눈에 띈다. ‘벽돌책’이라는 세계문학전집 특유의 진입 장벽이 없는 셈이다. 본격적으로 작품에 몰입하기 위해 적어도 100페이지는 참고 읽는 것이 아니라 단편 한 편 읽어볼 요량으로 펼쳐본다면 1930년대와 1950년대의 누보로망의 세계로 입장할 수 있다.
‘향성(向性)’이란 본디 식물이 외부 빛 등 외부 자극에 반응해 일정한 방향으로 굽거나 움직이는 지향성을 뜻하는 생리학 용어다. 사로트는 마르셀 프루스트, 제임스 조이스, 버지니아 울프 등의 저작에서 영향을 받으면서도 그들이 천착했던 ‘의식의 흐름’과는 차별화된 글쓰기로서 향성을 집필했다. 짧게는 고작 한두 쪽, 길어봐야 네댓 쪽에 불과한 글로 이뤄진 소설은 알 수 없는 무엇인가에 이끌리고 반응하는, 의식을 초월한 인간의 성질을 보여준다. 자신의 기분, 타인과의 관계는 물론 날씨와 계절, 사물로부터도 영향을 받는 사람의 모습을 작가는 무척이나 감각적으로 묘사한다.
뒤라스의 ‘동네 공원’은 공원 벤치에서 만난 낯선 남녀의 대화만으로 이뤄진 소설로 언뜻 희곡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여자는 주인집에서 보모 일과 식사 시중 등 잡무를 도맡아 하는 노동자로 피로에 절어 있다. 불행한 처지에서 벗어나기를 간절히 바라며 함께 삶을 꾸려나갈 결혼 상대를 찾아 댄스 클럽에 나가는 게 유일한 탈출구라고 여기는 스무 살의 가정부는 희망과 변화를 떠들어댄다. 그 앞에 앉은 남자는 집도 없이 홀몸으로 상품 가방 하나 들춰 메고 잡동사니를 팔러 떠돌아다닌다. 수많았던 과거의 불행으로 미래와 사람에 대한 기대를 품지 않는다. 작가는 남녀의 만남에서 흔히 기대하는 러브스토리 대신 좀처럼 맞닿지 않고 엇갈리는 대화만을 보여준다.
사로트와 뒤라스의 작품은 모두 인간의 본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향성’은 삶이 언제나 미처 의식하지도 못한 사이 변화해버린다는 점을 짚는다. 또한 그런 변화의 순간을 집요하게 들여다보는 사람만이 인간을 둘러싼 모든 조건의 총체, 시대정신을 읽을 수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뒤라스는 한 인터뷰에서 ‘동네 공원’이 ‘욕구 이론’을 탐색한 소설이라고 밝혔다.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보편적 조건에 대해 이야기할수록 보편적 결핍, 나아가 연대의 가능성 또한 선명해진다는 것이다.
장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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