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보들 ‘국가부채’ 인식 긍정적…‘이념 대결’ 통상 전략 “도움 안 돼”

한겨레 2025. 5. 21.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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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가 본 후보들 TV토론
국민의힘 김문수(왼쪽부터)·민주노동당 권영국·개혁신당 이준석·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가 18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SBS 프리즘센터 스튜디오에서 열린 제21대 대선 1차 후보자 토론회 시작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제공

대선 후보 토론회는 유권자들이 후보자의 정책과 비전, 가치관을 직접 듣고 비교할 수 있도록 하여 보다 나은 선택을 할 수 있게 돕고, 후보자 간 상호 질문과 반박을 통해 정책의 진정성을 검증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하지만 이런 취지에도 불구하고 지난 18일 열린 경제 분야 토론회는 전반적으로 실패에 가까웠다. 경제를 주제로 한 토론회였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경제 문제보다는 각 후보의 선거 전략과 정치적 수사만이 노골적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에 본 글에서는 각 후보가 내놓은 경제정책의 내용 그 자체에 집중하여 비교·분석하고자 한다. 분석은 토론회에서 제시된 질문 순서에 따라 정리했다.

토론회의 첫 질문은 단기적 경기 활성화 정책과 중장기적 경제 성장 전략을 동시에 묻는 질문이었다. 단기 정책이란 소비·투자·수출 등 수요를 촉진해 침체된 경기를 빠르게 되살리는 방안이고, 중장기 정책은 인구·자본 축적·기술·교육·건강·제도 등을 통해 경제의 근본적인 성장 역량을 키우는 것을 말한다. 결국 경제 정책의 거의 모든 영역을 포괄하는 질문이었다고 볼 수 있다. 질문이 방대한 만큼, 각 후보의 답변도 어디에 초점을 맞추느냐에 따라 서로 다른 층위를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김문수를 향한 권영국의 의미있는 질문

필자는 단기 경기 활성화 대책에 조금 더 주목하며 토론을 지켜봤다. 이는 중장기 성장 전략의 중요성을 가볍게 여긴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성장 전략은 정권이 바뀐 뒤에도 긴 호흡으로 추진해야 하는 과제인 반면, 경기 부양 대책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없이 바로 출발해야 하는 정권의 긴급 과제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토론에서 각 후보가 제시한 경기 활성화 대책은 말 그대로 현실에 대한 절실함을 가늠해볼 수 있는 시금석이라고 보았다.

권영국 후보가 김문수 후보를 향해 내란 책임을 거론한 것은 경제 토론의 범위를 벗어난 발언으로 비판받을 여지가 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 집권 여당의 경제 실적을 평가하는 차원에서는 결코 가벼이 넘길 수 없는 지적이기도 했다. 선거란 결국 과거에 대한 평가(응징 투표)와 미래에 대한 선택(전망 투표)의 성격을 동시에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0.8%로 하향 조정했으며, 일부 민간 기관들은 아예 0.5%에도 미치지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처럼 암울한 전망 속에는 정치적 불안정으로 인한 내수(소비·투자) 위축이 중요한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의 경제 상황에 대한 집권 여당의 책임을 분명히 묻는 것은 단순한 정치공세가 아니라 유권자의 정당한 평가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계엄 사태의 여파가 이미 경제 지표에 모두 반영되었다고 단정 짓기 어렵다. 경제적 충격은 항상 일정한 시차를 두고 실물 경제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소비와 투자 등 총수요를 살리기 위한 단기 경기 부양 대책은 차기 정부 출범 직후 가장 시급한 과제가 될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는 계엄 정국이라는 거대한 정치 이슈가 경제 이슈를 가려버린 상황에 처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경제 논의가 뒷전으로 밀린다면, 자칫 외환위기 수습에 정권 초기의 모든 역량을 쏟아 부어야 했던 김대중(DJ) 정부 초반 상황이 재현될 수도 있다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

“국가부채 증가 불가피”…뜻깊은 공감

이 문제는 자연스럽게 이준석 후보의 이재명 후보에 대한 집중 비판과 연결된다. 이준석 후보는 이재명 후보의 경제 정책을 일관되게 포퓰리즘으로 규정하며 공격했고, ‘호텔경제학’이라는 이름을 붙여 ‘빚잔치 하지 말라’는 경고를 던졌다. 이재명 후보가 과거 주장했던 기본소득 정책이 이러한 비판의 빌미를 제공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문제는 단기 총수요 부양 정책까지 무조건 ‘빚잔치’로 몰아붙이는 태도다. 이런 식이라면 한국 사회는 또다시 비생산적인 재정건전성 논쟁에 빠질 수밖에 없다. 필요한 추가경정예산 편성 한 번 했다고 갑자기 ‘바나나 공화국’ 소리를 듣는 것이야말로 우리 경제 논의의 가장 고질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단기 경기 활성화 정책 중 한국은행이 담당하는 통화정책은 논외로 하고, 정부의 역할로는 재정정책과 정책금융이 있다. 재정정책은 필연적으로 국채 발행, 즉 국가 부채 증가로 이어지며, 정책금융 역시 구조는 더 복잡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공공기관 부채 확대라는 부담을 남긴다. 결국 경제에 공짜는 없다는 말처럼, 침체된 시장을 살리기 위해 정부가 마중물 역할을 자처하는 과정에서 정부와 공공 부문의 부채가 늘어나는 것은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할 비용이다. 반면, 그 대가로 경기 침체 속에 쌓여 있는 민간 부채의 규모와 구조를 어떻게 조정하느냐가 앞으로의 핵심 과제가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토론에서 단기 경기 부양을 위해 일정 수준의 국가 부채 증가는 불가피하다는 현실적 인식을 밝힌 이재명 후보와 김문수 후보의 입장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논점 이탈한 통상 전략 토론

두 번째 질문인 트럼프 시대의 통상 전략에 대한 토론은 길게 다루지 않기로 한다. 경제정책 관점에서 건설적인 논의가 오가지 않았고, “친미냐 반미냐”, “친중이냐 반중이냐”는 식의 이념적 대립만 반복되었기 때문이다. 다만 토론회를 보며 한 가지 우려가 들었다. 차기 정부의 최우선 과제 중 하나가 대미 통상 협상이고 이는 경제정책 차원에서 매우 중대한 사안이다. 전통적으로 정부는 내수 진작을 위해 재정이나 통화정책 등 나름의 정책 수단을 동원할 수 있지만, 수출 확대와 같은 대외 경제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다른 나라 경제가 좋아야 우리 물건을 사주는데 한국 정부가 미국 경기나 중국 경기를 인위적으로 살릴 수도 없고, 미시적인 환율 정책이나 보조금 정책을 쓰기에도 국제통상환경이 매우 엄혹하다. 결국 대미 관세 협상을 어떻게 풀어가느냐가 차기 정부의 중요한 시험대가 될 텐데, 문제는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정치권 논쟁이 지나치게 이념적으로 흐를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는 점이다. 이런 논쟁 구도는 한국 경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특히 지적하고 싶다.

규제만능·코인 리스크 경계해야

국가경쟁력 강화 방안을 묻는 세 번째 질문은 사실상 각 후보의 중장기 경제 성장 전략이나 경제 철학과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는 질문이었다. 이 질문에 대해 후보들은 지역균형발전, 원전, 주가지수 5000, 차별금지법, 중대재해처벌법, 최저임금, 양곡관리법, 스테이블코인 등 너무나 다양한 주제를 쏟아냈다. 이에 대해 이 글에서는 공통된 맥락만 짚어보고자 한다.

우선 김문수 후보와 이준석 후보는 규제 완화를 대표적인 경제 성장 전략으로 내세웠다. 물론 불필요한 규제를 유지하자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규제 완화가 마치 경제 성장의 만능 해법인 것처럼 반복되어 온 데 비해, 구체적 내용이나 실체는 늘 모호했다. 특히 선거 때마다 ‘규제 프리’ 구호만 반복되는 모습은 아쉬움을 남긴다. 이준석 후보가 찬성한 ‘코스피 5000’ 달성을 위한 상법 개정이 대표적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상법 개정은 그동안 재계가 가장 강하게 반대해 온 규제 중 하나이지만, 주주 보호 제도가 잘 갖춰질수록 자본시장이 활성화된다는 실증 연구는 이미 충분하다. 규제는 생산성을 높일 수도, 낮출 수도 있는 양면적 도구다. 따라서 무조건적인 규제 완화가 아니라 어떤 규제가 시장을 살리고 어떤 규제가 시장을 망치는지 구체적으로 가려내고 정교하게 설계하는 논의가 절실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이준석 후보가 이재명 후보의 ‘한국형 스테이블코인’을 비판한 대목은 그 의도와는 별개로 곱씹어볼 가치가 있다. 충분한 검토 없이 산업진흥정책만 앞세웠다가는 시장의 혼란을 키울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이재명 후보는 부동산 외에도 주식과 가상자산을 통한 자산 형성 지원과 디지털 금융 산업 육성을 강조하는 것 같은데, 주식과 가상자산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가상자산은 가치가 불명확할 뿐만 아니라 화폐 기능과도 연결되어 있어 자칫하면 금융 질서를 뒤흔들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정치인은 첨단 산업의 가능성을 외면해서는 안 되지만, 그만큼 중요한 것은 산업육성과 시장질서의 균형을 제대로 잡는 일이다. 혁신을 외치는 목소리는 넘쳐나지만, 그 혁신이 시장 질서를 해치지 않도록 감독하는 궂은 일은 결국 정치인만의 몫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창민 한양대 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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