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중, 다시 한중일로 돌아갈까 [정상외교100일①]

"필요하면 곧바로 워싱턴으로 날아가겠습니다. 베이징과 도쿄에도 가고 여건이 조성되면 평양에도 가겠습니다"
2017년 5월 문재인 대통령 취임사의 한 구절입니다. 얼핏 보면 특별한 것 없는 내용이지만 많은 언론은 도쿄보다 베이징을 먼저 언급한 것에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한 외교 전문가는 "국내뿐 아니라 국제적으로 한국이 어떤 순서로 한국과 중국, 일본을 언급하느냐를 두고 눈에 불을 켜고 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후 정상과의 전화 통화 순서도 미국-중국-일본 순서였습니다.
실제로 문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 중 '한반도 운전자론'을 내세우며 미국과 중국 사이에 균형 외교를 추진했고, 일본과는 끊임없이 마찰을 빚었습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2022년 3월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돼 이튿날인 3월 10일 당선인 신분으로 미국 대통령과 통화를 했습니다. 이후 정상 통화는 일본-영국-호주-인도-베트남(3.23)-중국(3.25) 순서였습니다. 눈에 띄는 건 중국의 순서가 한참 뒤로 밀렸다는 겁니다. 언론은 베트남보다도 늦게 중국과 통화를 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중국으로서는 자존심이 상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을 겁니다.
윤 대통령은 가치 동맹을 강조하며 한미일 연대를 밀어붙였습니다. 특히 국내 여론의 부담에도 일본과의 관계를 정상화했습니다. 그전까지 언론 등이 관행적으로 한중일로 부르던 순서를 논란을 무릅쓰며 한일중으로 바꿀 정도였습니다.

尹 정권의 한미일 연대에 대한 평가는 엇갈립니다. 우선 계엄으로 중도 탄핵당한 정권임에도 한미일 외교 틀을 만든 것만큼은 잘했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는 "우리나라 같은 지정학적 위치에서 만약 중국이 저렇게 있고, 러시아가 있고, 북한이 핵을 가지고 있는데 미국이 없다면 어떻게 되겠나"라며 "이 평화와 번영이 유지될지 생각해 보면 답이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국민의힘이 정권을 연장한다면 尹 정부 외교 스탠스를 그대로 이어갈 가능성이 큽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부정적입니다. 윤 대통령의 1차 탄핵소추안에서 "윤 대통령이 가치외교라는 미명하에 지정학적 균형을 도외시한 채 북한·중국·러시아를 적대시하고 일본 중심의 기이한 외교정책을 폈다"는 점을 탄핵 사유로 들 정도입니다. 2차 소추안에서 빠지긴 했지만 1차에 들어 있던 내용이 속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재명 대선 후보는 한미 동맹과 한미일 협력의 필요성을 언급하면서도 "거기에 완전히 몰빵 올인해서는 안 된다"며 "중국과 러시아의 관계도 중요하기 때문에 잘 관리해야 된다"고 강조합니다. 하지만, 모두와 다 잘 지내야 한다는 말은 이상적이지만, 엄혹한 외교 현실에서 현실성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복수의 외교 전문가들은 한일중 순서를 급히 한중일로 바꾸는 것에 대한 우려를 나타냅니다. 새 대통령이 미국 다음에 중국과 통화를 한다면 일본뿐 아니라 미국과의 동맹에 균열이 생길 거라고 우려합니다. 일단 한일중을 유지하면 중국 입장에서 섭섭할 수 있지만, 외교적으로 달랠 수 있을 것으로 봤습니다. 물론 한미일이 금과옥조는 아닙니다. 중국과의 관계가 일본보다 상황에 따라서는 미국보다 앞설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현재 건곤일척의 미중 갈등 상황에서 기존의 입장을 바꾸려면 그만한 명분과 실리가 뒤따라야 합니다. 새 정부가 들어섰으니 전 정부의 외교 스탠스를 뒤집는 차원이라거나 단순히 경제를 위해 중국과 더 친밀하게 지내야 한다는 정도의 수준으로는 위험부담이 크다는 겁니다.
글이 길었습니다. 문제는 간단합니다. 새 대통령은 취임 첫날 미국 다음에 중국과 통화를 할까요? 아니면 일본과 통화를 할까요? 사뭇 궁금해지는 대목입니다.
[이성식 기자 mods@mbn.co.kr]
< Copyright ⓒ MBN(www.mbn.co.kr)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opyright © MB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김건희 주가조작 수사 지휘'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 돌연 사의 표명
- [21대 대선] 김문수 ″우리 둘이 다른 게 없다″ 이준석 ″단일화무새″
- ‘43억 횡령 혐의’ 황정음, ‘솔로라서’ 최종회 통편집
- [단독] 민주당, 대선 직후 '교사 출마·선거 운동 합법화' 추진 움직임 [21대 대선]
- [단독] 육군 소장 성 비위 의혹에 분리조치…압수수색 진행
- 머스크 ″테슬라 실적 반등…5년 뒤에도 CEO″
- '빽다방' 디저트 곰팡이 논란…더본코리아 ″전량 회수 검토″
- 시흥 살인사건 차철남 ″3천만 원 안 갚아서 살해″
- 민주당사 배회하던 남성 가방에 흉기…'방탄 유리막 유세' 하루만
- ″교실서 남녀교사 부적절한 행위″…민원에 교육청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