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유권자 의사 그대로 반영되는 선거는 가능할까

한겨레21 2025. 5. 21. 0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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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윤빈의 과학 읽다]수학자들이 입증한 ‘다수결’의 역설과 ‘합리적 선택’의 불가능성… 패배한 후보자 정책까지 검토해야 하는 이유
제20대 대통령선거 투표일인 2022년 3월9일 오전 서울 강남구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에 마련된 기표소에서 유권자가 투표를 마치고 나서고 있다. 한겨레 신소영 기자

곧 대선이다. 혼란스러운 국내 정세 때문인지 요즘 들어 인간 대신 인공지능(AI)이 정치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는 식의 상상력이 자주 눈에 띈다. 물론 이야기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디스토피아가 돼버리긴 하지만 처음 AI에 정치를 맡길 때의 판단 근거는 대개 유사하다. AI에 사익을 추구하지 않고 공공의 선을 실현할 충분한 능력이 있다는 가정. 그런데 정말로 그럴까? 만약 전지전능하고 완전무결하게 선한 AI가 사회를 이끌어가게 된다면 우리는 유토피아에 살게 될까?

투표 순서에 따라 최종 승자가 바뀌는 역설

18세기 후반, 프랑스 수학자 마르키 드 콩도르세는 ‘다수결의 원칙’에 따른 의사결정이 유권자의 선호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을 수 있음을 발견했다. 유권자가 후보자들에 대한 명확한 호불호를 가지고 투표했음에도 가장 매력 없는 후보자가 1등으로 당선되는 일이 가능했다. 당신이 도깨비 왕국의 투표 관리 AI라고 상상하면서 다음 이야기를 들어보시기를.

왕도깨비 후보자 A, B, C가 있다고 하자. 유권자는 총 7명이고 각 후보자에 대한 확고한 마음 속 순위표를 가지고 있다. 선거는 기권 없는 투표를 통해 1등만 뽑을 것이다. 선거 관리 AI인 당신은 유권자 셋은 A가 1등이라고 생각하고, 나머지 넷은 A가 3등이라고 생각한다는 정보만 알고 있다. 과연 누가 당선될까? 둥둥, 투표가 종료됐다. A가 당선됐다. 놀랍게도 B와 C에게 표가 둘씩 나뉘어 3표를 받은 A가 1등을 한 것이다. A는 이견의 여지 없는 민주적 절차를 통해 왕도깨비가 됐다. 그러나 거꾸로 생각해보면 무언가 이상하다. 만약 가장 싫어하는 후보자를 뽑는 투표를 했다면, A는 과반수인 4표를 받아 당당히 최악의 후보자가 됐을 것이기 때문이다.

A 같은 경우를 ‘콩도르세 패자(敗者)’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A와 B 혹은 A와 C 둘이서만 일대일 비교를 하면 A는 무조건 4:3으로 패배하기 때문이다. 선거 관리 AI인 당신에게 만약 최종 결정권이 있다면, 당신은 이 선거를 무효로 할 것인가? 아무래도 좀 애매하다. 현명한 당신은 이번 선거는 용인하고 다음 선거부터 결선투표를 도입하기로 한다. 둥둥, A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다음 선거가 시작됐다. 후보자는 여전히 A, B, C이고, 투표의 규칙 역시 기권 없는 1등 투표. 다만 A는 나쁜 왕도깨비였다. 유권자의 14%가 인간 세상으로 도피하는 바람에 유권자가 여섯으로 줄었다. 어쩔 수 없이 후보자 하나는 부전승으로 하여 투표를 두 번 하기로 했다. 그런데 이번에도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A와 B가 먼저 대결하고 C를 부전승으로 했을 때, A와 B의 대결에서 승리한 B가 C에게 패배해 C가 최종 당선됐다. 그런데 B 지지자들의 반발로 B를 부전승으로 하자, 이번에는 B가 A와의 최종 결전에서 승리했다. 불길한 예감에 당신은 마지막으로 A를 부전승시켜 보았다. 그러자 A가 C를 이기고 최종 당선됐다. 전수조사를 해보니 이는 기가 막힌 균형의 결과였다. A, B, C를 (1, 2, 3), (2, 3, 1), (3, 1, 2) 순서로 선호하는 유권자가 각각 두 명씩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마치 가위바위보처럼 C는 B를 이기고, B는 A를 이기고, A는 C를 이기는 관계가 형성됐다. 각 유권자의 생각은 변함없고 합리적 판단으로 투표하는데도, 투표 순서에 따라 최종 승자가 달라졌다. 이러한 역설을 ‘어젠다 패러독스’라고 부른다.

모든 이의 선호를 반영할 수는 없다

만약 기존 방식대로 한 번에 결선투표를 한다고 해도 모두가 2표를 받아 비기는 상황. 이번에는 덮어놓고 넘어갈 수도 없다. 당신은 어쩔 수 없이 최종 결정권을 발휘해 왕도깨비 단임제를 선포한다. 지난번에 당선된 A가 후보에서 제외됨에 따라 C가 최종 당선자가 됐다. C는 왕도깨비가 되자마자 A를 지지했던 두 유권자를 찾아내 방구 도깨비라고 부르며 왕국에서 쫓아내버렸다.

선거 관리 AI인 당신은 고민에 빠졌다. 아무런 부정도 없었고, 유권자의 표심은 확고했으며, 당신에게는 오로지 선의만이 있었다. 그럼에도 도깨비 왕국은 혼란스러워졌다. 어쩌면 애초부터 이상적인 투표체계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다행히 이에 관해 고민한 이가 있었다.

미국의 경제학자 케네스 애로는 1951년 ‘사회적 선택과 개인의 가치’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거기에는 ‘불가능성 정리’라는 한 가지 딜레마가 제시돼 있다. 우선 애로는 사회후생함수라는 가상 수식을 도입한다. 이는 이상적인 사회 의사결정을 위한 시스템으로 거기에 모든 유권자의 각 후보자에 대한 선호를 입력하면 최선의 투표 결과를 알려준다. 애로는 사회후생함수의 전제가 되는 다섯 조건을 제시했는데, 요약해서 설명하자면 이는 유권자의 합리성과 투표의 규칙에 관한 것이다.

우선 유권자의 합리성은 다음과 같다. 유권자는 기권하거나 무효표를 던지지 않고, 확고한 의견을 가지고 있다. A를 B보다 좋아하고 B를 C보다 좋아한다면 A를 C보다 좋아해야 한다. A와 B만 있을 땐 A를 좋아했는데 C가 나타나자 B를 더 좋아할 수는 없다. 말하자면 확고한 선호도의 우선순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며, 가장 좋아하는 후보를 제쳐두고 더 당선 확률이 높아 보이는 차선을 택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현실과는 좀 차이가 있지만 이론적인 ‘이상’을 찾기 위한 증명에서는 충분히 합리적으로 보인다.

합리적인 유권자를 데리고 하는 투표의 규칙은 두 가지다. 하나, 집단의 선호는 구성원이 선호하는 것의 합과 같다. 이론적으로는 만장일치를 지향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다수결의 결과가 정당함을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둘, 특정 구성원의 선택이 다른 사회 구성원의 선택을 무시하고 결과를 결정해서는 안 된다. 독재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 두 규칙을 각각 P, D라고 한다. 다수결과 독재 금지 역시 직관적이고 지당한 규칙으로 보인다.

문제는 애로가 불가능성 정리를 통해 합리적인 유권자를 데리고 하는 투표에서 규칙 P와 D를 모두 만족시킬 수 없음을, 그러니까 사회후생함수가 존재하지 않음을 수학적으로 증명했다는 점이다. 애로에 따르면 우리가 꿈꾸는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이상적 선택의 가능성이 현실에는 없다. 모든 이의 선호를 반영하려 하면 반드시 딜레마에 빠진다. 유권자의 합리성이 부정당하거나 규칙 P나 D가 위배되거나.

좌절에 빠지지 말고 찾아야 할 해답은

선거 관리 AI인 당신은 암울한 기분에 휩싸인다. 그러나 전지전능하기 때문에 곧 기운을 차린다. 당신은 앞선 두 번의 투표에서 무엇이 문제였는지 알아차린다. 도깨비의 왕을 뽑는다는 체계 그 자체가 문제였다. 한 번의 투표로 너무 많은 것이 결정돼버렸다. 투표를 통한 어떤 의사결정도 완벽할 수 없다면, 투표에서 패배한 후보자들과 그들의 정책 역시 충분히 존중돼야 했다. 당신은 투표할 때만이 아니라 평소에도 왕도깨비가 유권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도록 여러 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한다….

서윤빈 소설가

* 세상 모든 콘텐츠에서 과학을 추출해보는 시간. 공대 출신 SF 소설가가 건네는 짧고 굵은 과학잡학. 3주에 한 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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