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 무너진 재판 신뢰, 지 판사가 결자해지를
의심 증폭... '尹 구속 취소'가 원죄
"정의롭게 보여야" 격언 되새기길

1923년 영국인 매카시는 오토바이를 몰다 다른 오토바이와 충돌하는 사고를 냈다. 위험 운전 혐의로 기소됐고, 유죄 판결과 함께 10파운드의 벌금형을 받았다. 그런데 1심 선고 후 이상한 사실을 알게 됐다. 재판 서기였던 랭엄 형제가 매카시를 상대로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낸 피해자 측 로펌에서 과거 파트너로 근무한 이력이 있었던 것이다.
매카시는 항소했다. 해당 로펌이 민사소송 승소에 유리한 조건(매카시 유죄)을 만들기 위해 랭엄 형제를 연결고리 삼아 형사사건 재판부에 로비를 벌인 게 아니냐는 의심이었다. 물론 담당 판사들은 펄쩍 뛰며 ‘랭엄 형제의 재판 개입’ 의혹을 부인했고, 항소심을 심리한 고법 내 ‘왕좌 재판소(King’s Bench)’도 이를 받아들였다. 그럼에도 ‘매카시 유죄’ 판결은 취소됐다. 당시 영국 대법원장 고든 휴워트 경은 이같이 판단하면서 “정의는 실현돼야 할 뿐만 아니라, 명백하고 의심할 여지없이 ‘실현된 것으로 보여야’ 한다”고 밝혔다. 사법 영역에서의 의심 해소, 곧 ‘신뢰’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일화다.
그 유명한 법률 격언, “재판(사법)은 공정해야(정의로워야) 할 뿐 아니라, 공정하게(정의롭게) 보여야 한다”는 이렇게 탄생했다. 100여 년 전 남의 나라 얘기를 구구절절 설명한 건 오늘날 한국 사법부의 위기를 짚어볼 필요가 있어서다.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는 윤석열 전 대통령 구속 취소 결정,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선거법 위반 사건 상고심에 대한 ‘조희대 대법원’의 이례적인 속전속결 처리(유죄 취지 파기환송) 등이 초래한 ‘사법 불신의 늪’ 얘기다.

최근 논란의 핵심 인물은 단연 윤석열 내란 사건 재판장인 지귀연 부장판사다. 민주당이 들고 나온 ‘룸살롱 술접대 의혹’ 탓이다. 대법원 윤리감사관실에서 사실관계 확인에 나섰으니, 시시비비야 머지않아 가려질 것이다. 문제는 의심이 한 번 불붙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증폭된다는 점이다.
지 부장판사가 누구인가. 불법 계엄으로 민주주의를 파괴하려 든 ‘내란 수괴’ 윤석열을 풀어줘 거리를 활보할 수 있게 해 준 인물이다. 수십 년간 이어진 검찰 수사·법원 재판 실무를 그는 깡그리 무시하고, 구속 기간을 ‘날’이 아니라 ‘시간’으로 따지는 전무후무한 계산법을 택했다. 1차 공판 땐 ‘법정 내 피고인 윤석열’을 촬영하게 해 달라는 언론 요청을 불허했다. 또 서울고법은 1·2차 공판 당시 ‘법원 지하주차장 출입을 허가해 달라’는 윤석열 측 요구를 수용했다. ‘사법부가 윤석열을 편드는 게 아닌가’라는 의심은 더 커졌다.
물론 비판 여론이 커지자 재판부와 법원은 기존 방침을 철회했다. 포토 라인에 서고, 형사재판을 받는 ‘윤석열 피고인’의 모습은 결국 카메라에 담겼다. 하지만 의심은 그대로다. 이러다 “2시간짜리 내란이 어디 있느냐”는 윤석열 측 주장대로, 향후 ‘내란 유무죄’ 판단에 ‘시간 계산법’을 도입할지 모른다는 건 지나친 억측인가.
본질은 ‘술접대 의혹’이 아니다. 사실무근 결론이 내려져도 대중은 지 부장판사에 대한 불신을 거두지 않을 공산이 크다. ‘윤석열 구속 취소’라는 그의 원죄는 재판 공정성을 내내 믿지 못하게 만들 것이다. 마음속에 일단 똬리를 틀면 여간해선 사라지지 않는 게 의심의 고약한 생리다.
한 세기 전 휴워트 경은 피고인의 의심을 지우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재판 결론 자체를 무효로 하는 초강수를 뒀다. 한국 사법부도 더 늦기 전에 ‘공정한 재판으로 비치게 하는’ 방법을 찾아야 할 듯하다. 지 부장판사의 결자해지가 가장 빠르지 않을까.
김정우 이슈365부장 woo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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