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없는 K팝 그룹?... K가 작아질수록 K팝은 커진다

고경석 2025. 5. 21.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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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브, 美 걸그룹 캣츠아이 신곡 '날리'
미국 프로듀서가 K팝 그룹 기획·제작해
미국, 중국, 일본 등 K팝 시스템 이식 활발
하이브의 미국 현지화 그룹 캣츠아이. 하이브 제공

# 하이브의 미국 현지화 걸그룹 캣츠아이의 새 싱글 ‘날리(Gnarly)’가 17일자로 발표된 미국 빌보드 종합 싱글 차트 ‘핫100’에 92위로 진입했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K팝 가수가 아닌 해외 현지화 아티스트로선 첫 기록이다. 선율을 줄이고 과장된 일렉트로닉 사운드로 채운 하이퍼팝 장르를 시도한 ‘날리’는 이전 싱글들과 달리 K팝적인 요소를 크게 줄인 것이 특징이다. 빌보드는 지난 16일 ‘영향력 있는 21세 이하 아티스트’를 꼽으며 K팝 관련 아티스트로 캣츠아이와 뉴진스 두 팀을 꼽기도 했다.

# 지난달 데뷔한 걸그룹 VVS의 소속사 MZMC의 대표는 미국인 프로듀서 폴 브라이언 톰슨이다. 외국인 제작자가 K팝 그룹을 기획, 제작한 드문 사례다. 그는 2013년 JYP엔터테인먼트에 발탁된 뒤 JYP 퍼블리싱과 계약을 맺고 작곡가로 활동했고, 자신의 프로듀서, 작곡가 팀과 함께 SM엔터테인먼트 소속 가수들의 곡 제작에 참여했다. 톰슨 대표는 본보에 “10년 넘게 한국에서 거주하고 음악 작업을 해가며 한국 대중이 어떤 음악 스타일에 매력을 느끼는지와 해외 K팝 팬들이 선호하는 음악 사이의 차이를 끊임없이 공부했다”고 말했다.

미국 제작자 폴 브라이언 톰슨이 제작한 한국 걸그룹 VVS. MZMC 제공

K팝의 K가 점점 작아지면서 전 세계 음악 산업으로 속속 스며들고 있다. K팝의 가장 중요한 해외 시장인 일본에선 현지화 그룹이 이미 자리잡은 데 이어 K팝의 요소를 도입한 가수들이 국내외에서 속속 기획되고 있고, K팝의 궁극적 타깃인 영어권 국가에서도 가시적 성과가 나오고 있다. K팝이 다양한 문화에 이식되면서 확산하고 있고, 팬들도 점차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K팝 시스템을 자국 산업에 가장 적극적으로 이식하고 있는 나라는 일본이다. J팝에 영향 받은 K팝이 다시 J팝에 영향을 주며 상호작용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2023년 한 방송에 출연해 “일본에서 발굴된 인재들이 한국 기획사로 가는 일이 반복되면 일본 예능이 한국에 종속될 수 있다”고 경고했던 아이돌 출신 제작자 스카이하이는 자신의 기획사 BMSG를 통해 K팝 요소를 도입한 보이그룹 비퍼스트를 데뷔시켜 큰 성공을 거뒀다.

BMSG처럼 신생 기획사들이 특히 K팝을 참고하는 데 적극적이다. 일본 통신회사 NTT의 엔터테인먼트 자회사는 지난해 K팝 시스템으로 제작한 일본인 걸그룹 코스모시를 내놓았다. 기존 기획사들도 이 같은 변화에 동참하고 있다. 가수 보아 데뷔 때부터 SM과 오랫동안 파트너 관계를 유지해온 에이벡스는 세계 시장을 겨냥한 보이그룹 원 오어 에이트를 제작하며 한국에도 데뷔시켰다.

SM엔테인먼트 창업자 이수만이 기획한 중국 걸그룹 A20 메이. A20엔터테인먼트 제공

K팝의 문화적 이식은 여러 나라에서 이뤄지고 있다. 한국계 미국인 프로듀서 재이콥스(한국명 박준호)가 설립한 국내 기획사 엑스갤럭스(XGALX)가 2022년 배출한 일본인 걸그룹 XG는 지난달 미국에서 열린 음악축제 코첼라밸리뮤직앤드아츠페스티벌에서 공연하며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SM 창업자인 이수만은 A20엔터테인먼트를 세워 중국인으로 구성된 걸그룹 A20 메이를 지난해 데뷔시키며 재기에 나섰다. 코미디 그룹 ‘컬트 삼총사’의 멤버로 유명한 정성한은 필리핀에서 보이그룹 SB19 제작에 참여한 데 이어 자신의 기획사를 차려 걸그룹 YGIG와 보이그룹 플러스(PLUUS)를 배출했다.

이렇게 해외 시장을 겨냥해 제작한 그룹들이 국내에서 인기를 얻기도 한다. 일본인으로만 구성된 JYP의 일본 현지화 그룹 니쥬의 국내 컴백 곡 ‘러브 라인’은 지난달 9일 MBC M ‘쇼! 챔피언’에서 1위를 차지했다. 이들이 국내 음악방송에서 1위에 오른 건 일본 데뷔 후 3년 만에 냈던 한국 데뷔 싱글 ‘하트리스’(2023) 이후 1년 5개월여 만이다. 니쥬는 K팝 현지화 그룹 가운데서 최초로 국내 음악방송에서 1위를 차지한 아티스트다.

이를 두고 K팝 연구자인 야마모토 조호 일본 리츠메이칸대 강사는 “K팝은 단순한 한국 음악이 아니라, 한국을 기점으로 발전해온 문화 생산 양식이며, 그 핵심은 엄밀한 육성 시스템과 심미적 기준의 공유에 있다”면서 “이때 중요한 것은 누가 노래하느냐가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어떤 형식 안에 편입되어 있는가인데, 니쥬의 성공은 K팝이 어떻게 제도로서 이식되고 다시 맥락화되면서도 여전히 K팝일 수 있는지를 웅변적으로 말해준다”고 말했다.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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