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열된 대한민국 통합 역량 갖춘 사람 대통령 되길”

오세현 2025. 5. 21.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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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인터뷰]‘충암고 출신’ 김영식 전 제1야전군사령관
군-국민 갈라놓은 12·3 계엄에 ‘분노’
사태 후 수십일간 유폐 “고통스러웠다”
“고교 후배 윤석열·김용현 권력 동원…
철저히 반성하고 반드시 죗값 치러야”
국가에서 받은 혜택, 사회에 환원 다짐
충암고 졸업한 육사 37기 ‘엘리트 군인’
독일·미국 유학 등 풍부했던 학업 기회
전역 후 봉사 다짐… 300회 외부 강연
숲에서 배운 가치 “삶이 곧 메시지여야”
유학시절 남효창 박사 만나 숲과 인연
장병 대상 ‘그린캠프’ 결핍 채우는 시간
“다양성 인정하고 손잡고 다같이 살아야”

비상계엄이 터진 지난해 12월 3일. 김영식(67) 전 제1야전군사령관은 이후 한 달 반을 두문불출했다. 집 밖으로 나가지도, 사람을 만나지도 않았다. 한 달 반 사이 체중이 4㎏이 줄었다. 화가 났다. 자신의 권력을 위해 군을 동원한 군통수권자에게. 그 명령을 이행한 전 국방부장관에게. 김영식 전 사령관은 충암고를 졸업, 육군사관학교(37기) 출신이다. 당시 국방부장관이었던 김용현 장관과는 육사 생도시절부터 연을 쌓아왔다. 윤석열 전 대통령, 이상민 전 행안부장관과도 고교 동문이다. 여러모로 지금 시국에 대한 소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새로운 군통수권자를 뽑는 대선을 2주 여 앞두고 그를 춘천 강촌 마인바움에서 만났다.
 

- 계엄 이후 스스로를 유폐시켰다고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고교 2년 후배고 김용현 전 장관이 고교 1년 후배다. 대통령하고는 개인적 관계가 전혀 없었지만 김용현 전 장관은 육사 생도 때부터 40년 넘게 인연이 있다. 인사가 나면 내 직책을 바로 물려준 적도 있으니 가까운 후배다. 12월 3일 이후 한 달 반을 집에서 지냈다. 너무 화가났다. ‘어떻게 이렇게 한심한 짓을 했을까’하는 생각에 잠을 자기도 힘들었다. 사람들을 만나는 것 자체가 고통스러웠다.”

- 어느 지점에서 화가 났을까.

“정치적 얘기는 하지 않겠다. 다만 군(軍)을 그렇게 썼다는 것 자체가 나를 가장 힘들게 했다.”

- ‘그렇게’ 라면.

“권력에 동원했다는 점이다. 나는 육사 37기로 박정희 전 대통령 아들 박지만과 동기다. 생도 3학년 때 10·26이 터졌고 생도 4학년 때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났다. 역사의 현장 속에서 군 생활을 시작했다. 군에 대한 낙인, 비상계엄과 쿠데타에 대한 평가를 보면서 어린 나이지만 ‘이런 것들이 다시 군을 옥죄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4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군이 그 멍에를 벗기 위해, 환골탈태하려고 노력했던 점들이 하루 아침에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 군사적 측면에서 이번 사태를 본다면.

“군은 전쟁을 억제해야 하는 집단이지만 억제에 실패한다면 승리로 전쟁을 조기에 종결시켜야 하는 무력집단이다. 그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서는 정부, 군, 국민 세 가지가 있어야 한다. 이게 전쟁론에 나오는 얘기다. 그런데 12·3 비상계엄은 군과 국민을 갈라서게 만든 사건이다. 정치적 문제를 떠나서 이 부분이 가장 마음이 아프다. 지금이라도 북한이 도발할 지 모르는데 국민이 군을 의심하는 상황에서 이길 수 있을까. 국민이 군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계기를 군 스스로 제공했다. 물론 군이 선택한 게 아니라 군통수권자가 지시를 했지만 군통수권자와 장관, 계엄사령관 모든 사람들이 여기에 대해 철저히 반성하고 죗값을 받아야 한다.”

 

▲ 윤석열 전 대통령 고교 선배인 김영식 예비역 대장이 최근 춘천 남산면 마인바움 카페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방도겸 기자

- 군인의 길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거창하게 ‘군인이 되겠다, 장군이 돼야겠다’는 생각에 육군사관학교를 간 것은 아니었다. 집안이 어려웠다. 생후 8개월 만에 부친이 돌아가셨다. 서른두살 된 어머니가 5남매를 길러냈다. 1960년대에 여자 혼자서 다섯남매를 건사하는 게 쉽지 않았다. 다들 공부는 잘했다. 서울대를 가고 싶었는데 원하는 과(경제학과)를 가기엔 힘들었다. 집안 사정으로 선택한 곳이 육사였다. 큰 형님이 나를 육사로 보내고 속이 상해 엄청 울었다. 다행히 육사 생활이 나에게 맞았다. 규율이나 단체생활, 운동, 공부가 적성에 맞았고 육사 생도들에게 용돈도 주니 너무 좋았다. 그렇게 점차 군인이 됐다.”

- 40년 6개월 11일간의 군생활은 어땠나.

“행복했다. 군 생활이 잘 맞았고 공부할 수 있는 기회도 많이 줬다. 독일에서도 공부했고 미국에서도 공부를 했다. 국가의 혜택을 많이 받은 사람이다. 군에서 올라갈 만큼 다 올라갔다. ‘국가가 나에게 이렇게 많은 혜택을 줬으니 내가 사회에 환원을 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갖고 2017년 전역을 했다.”

- 전역 후 ‘다섯가지는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고 들었다.

“정치 하지말자, 정보를 팔아먹지 말자, 부하를 상대로 돈 벌이를 하지 말자, 내가 대장임을 자랑하지 말자 뭐 이런 것들이다. 대신 봉사하자, 행복하게 살자고 다짐했다. 지금까지 기업이나 군 부대를 대상으로 300회 정도 강연을 했다. 내 경험과 지식을 사회에 돌려주는 과정이다.”

- 숲 해설가로 또 다른 삶을 살고 있다.

“1985년 독일로 공부를 하러 갔다. 거기서 남효창 박사를 만났다. 나는 군사학을 공부했고 그는 산림정책학을 배우던 시기다. 그때까지만해도 ‘그런게 있구나’ 싶은 정도였다. 2013년 산림청 예산으로 남효창 박사와 함께 군 부대에서 산림 프로그램을 했는데 장병들 반응이 매우 좋았다. 3년 기한 사업이라 종료가 됐는데 이 예산을 지속적으로 마련하지 못하고 전역을 한 부분이 가장 아쉽다. 숲과의 인연은 그때부터 시작이 됐다.”

- 지금은 강촌에 실내수목원 마인바움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마인바움은 나의나무라는 뜻이다. 이 곳에서 이사를 맡고 있다. 전역 후 숲연구소에서 숲 해설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마인바움에서 군 장병들을 대상으로 그린캠프를 갖는다. 숲길도 걸어보고, 나무도 만져보고, 자기만의 나무도 가질 수 있다. 각자의 나무를 전해주면서 장병들에게 ‘(나무를)죽이지 말고 꼭 살려’라고 당부한다. 이 말은 ‘너도 죽지 말라’는 뜻과 같다. 육사에 썰프레아 360주를 기부하기도 했다.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나무가 있기를 바란다. 기후위기, 자연파괴 모두 숲이 사라지면서 일어난 일이다. 나무는 자연에 대한, 사람에 대한 사랑이다.”

- 그린캠프와 군부대와의 연관성이 궁금하다.

“당장 눈으로 드러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곧 큰 일을 낼 것 같은 얼굴로 있던 병사들의 표정이 달라진다. 죽을 것 같은 이들이 살아난다. 이를 수치로 표현을 하지 못해 와 닿지 않을 뿐이다. 사단장을 할 때 군에 들어오는 병사들을 보면 절반은 가정에 문제가 있는 이들이다. 결핍이 있는 친구들이다. 이런 병사들을 군대에서 끌어안고 있는 사실 자체가 모순이다. 전투력 자체를 만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싸울 수 있는 전사를 만들어야 하는데 이 친구들이 전사가 될 생각이 없다. 그런데 이런 친구들을 전사를 만들라고 지휘관에게 임무를 준다. 지휘관이 무슨 수로 이들을 전사로 만들 수 있겠나. 나라에서 관심을 가져야 할 문제다.”

- 군사력에 대한 이야기 인 듯하다.

“38만 정도의 병력 규모를 유지해야 하니 예전 같으면 군에 오지 않아야 할 이들까지 군에 들어온다.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비율이 높아진다는 뜻이다. 그 부담을 지휘관들이 지고 있다. 나처럼 밖에 있는 사람들이 이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을까라는 생각에 그린캠프를 진행하고 있다.”

- 새로운 군통수권자를 뽑는 선거가 2주 앞으로 다가왔다.

“분열돼 있는 대한민국을 하나로 합칠 수 있는 역량 있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길 바란다. 간디의 ‘마이 라이프 이즈 마이 메시지(My life is my message)’라는 말을 좋아한다. 말이 메시지가 아니다. 삶이 메시지여야 한다. 말이 ‘발’로 증명되길 바란다. 그 사람의 족적, 걸어온 길로 증명이 돼야 한다. 엄혹한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이 살아남을 수 있어야 한다. 군은 누가 통수권자가 되든 그가 갖고 있는 헌법적 권한을 존중하고 따를 것이다. 그렇게 배웠다. 다만, 헌법의 가치에 부합될 때만 가능하다. 몇 명의 장군에 의해 군이 움직이는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정당성이 없으면 지시가 먹히지 않는다.”

- 숲에서 배운 가치가 있다면.

“함께 산다는 것이다. 최재천 교수가 ‘손 잡지 않고 살아남는 생명은 없다’고 했다. 숲 속 미생물만 해도 5000가지 이상이다. 그들이 공존해야 숲이 건강하다. 숲의 가치를 사람들도 배워야 한다. 다양성을 인정하고 서로 도와야 한다. 다 같이 손잡고 살아가야 한다. 그래야 우리도 선진 강국이 될 수 있다.” 오세현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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