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470> 도산서원에 들러 시 읊은 하동의 계남 최숙민
- 百感悠悠寓瓣香·백감유유우판향
평생 도산기를 부러워하며 외웠는데(平生豔誦陶山記·평생염송도산기)/오늘에야 친히 완패당에 올랐다네.(今日親升玩珮堂·금일친승완패당)/사문을 집대성한 그 원본이 있고(一統斯文有源本·일통사문유원본)/천년의 가을달은 여전히 빛나는도다.(千年秋月尙光輝·천년추월상광휘)/나라 안 말발굽 지금이 어느 세상인가(國中蹄跡今何世·국중제적금하세)/온갖 감회 아득히 향불에 부친다네.(百感悠悠寓瓣香·백감유유우판향)
위 시는 계남(溪南) 최숙민(崔琡民·1837~1905)의 ‘상계에 이르러 퇴계선생 옛집에 유숙하며 사당을 알현하고’(至上溪, 宿退溪先生舊宅, 仍謁廟·지상계, 숙퇴계선생구택, 잉알묘)로, 그의 문집인 ‘계남집(溪南集)’ 권 2에 수록돼 있다. 태백산 지맥인 용두산(龍頭山)과 안동 도산면 태자리에서 근원한 냇물이 온혜(溫惠)를 거쳐 퇴계 종택이 있는 상계(上溪)마을과 하계(下溪)의 퇴계 묘소 앞을 지나 낙동강에 흘러든다. 최숙민은 평소 퇴계를 간절히 기렸는데 오늘에야 찾은 감회를 표현하였다. 특히 사문(斯文)을 집대성한 퇴계의 학자로서의 위대함과 사화기(士禍期)에 보여주었던 처세와 정신이 여전히 빛나고 있음을 칭송하였다.
위 시를 지은 최숙민은 1837년 현 경남 하동군 북천면(옛 대야천)에서 출생한 것으로 학계에서는 보고 있다. 20세 무렵 과거를 보기 위해 서울에 갔다가 과거시험이 오염돼 있다고 판단한 후 고향으로 돌아와 이후로는 학문에만 전념했다. 그의 부친이 1866년에 현 하동군 옥종면 안계마을로 이주한다. 1869년 무렵 최숙민은 전라도의 큰 학자였던 노사 기정진 문하에 들어간다. 그는 1891년 3월 초 3일에 아들 제립(濟立), 조카 제욱(濟勖)만을 동반하고서 유람에 나섰다. 우암 송시열의 강학처가 있던 충청도 화양동에 들렀다. 또 한양과 개성에 들른 후 경기도 영평(永平)과 포천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곳은 화서학파의 중심지였다. 이어 금강산을 유람한 후 강릉 오죽헌을 거쳐 안동으로 길을 잡았다.
어제 오후에 고교 동창에게서 전화가 왔다. “가족과 안동 도산서원에 놀러왔네. 여기 오니 다헌(茶軒) 자네 생각이 나 전화해 봤다”고 했다. 전화를 받은 후 도산서원에 대해 여러 생각을 하다 최숙민의 위 시를 찾아 읽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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