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숲길] 남자의 ‘가오’와 혁명
독서 모임에서 올해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작인 ‘그 개와 혁명’을 읽었다. 운동권이었던 아버지의 생을 반추하는 딸을 화자로 내세운 단편으로, 아버지의 투병 생활과 장례식을 개판으로 만드는 과정을 가독성 있는 서사로 펼쳐내고 있다. 딸 수민은 아버지 세대를 비판하고 풍자하는데, 이유는 언행일치가 안 된다는 것이다. 젊은 시절 화염병을 던지고 공장에 위장 취업하고 삐라를 뿌리던 아버지는 노동문제에 관심이 많지만, 집 안에서 이루어지는 가사 노동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사회가 조리 있게 굴러가야 한다고 말하지만, 가족이라는 제도 안의 조리는 다른 문제라는 식이다. 사회운동은 사회운동이고 일상은 일상으로 차원을 달리해 받아들이는 것이다.
인권과 민주 이념에 대한 신념으로 운동에 투신했던 사람들이 실생활에서 보여주는 의식의 편향성이 이 정도이니 사회관습을 충실히 따르며 살아온 사람들의 의식은 말해 뭐하겠는가. 이들에게 ‘첫딸은 살림 밑천’이라는 말이 사어가 아니다. 내가 십수 년간 논술 과외선생으로 가정방문을 해봤기에 하는 말이다. 과외가 알음알음으로 들어왔기에 학부모의 평균 연령이 40대로 비슷했고, 교사 부부가 많았다. 말하자면 다들 맞벌이였는데 저녁 시간에 방문했을 때 백이면 백 학생 어머니가 나를 맞아주었고, 과일이며 음료수를 준비해 가져왔다. 수업하고 있을 때 현관문이 벌컥 열리고 출근복을 입은 채 부리나케 주방으로 들어가는 사람도 100% 학생 어머니였다. 학생 아버지가 주방에 있는 모습을 본 기억은 없다.
학년이 몇 번 바뀌도록 논술 수업을 계속하면서 허물이 없어진 터라 어머니들과 술잔을 기울이는 회식도 했는데, 그런 자리에서 종종 오지랖을 부렸다. 똑같이 일하고 와서 왜 살림 독박을 쓰느냐고, 나 같으면 억울하고 신경질 나서 청소든 요리든 세탁이든 한두 개는 남편에게 맡길 거라고 했다. 내가 던진 말에 대한 반응을 지금도 기억한다. 하나같이 초탈하고 허탈한 표정으로 피곤한 웃음을 짧게 흘렸다. 설득과 애원과 실패의 과정을 언급하는 것조차 지겹다는 듯, 길게도 아니고 짧게. 남자가 ‘가오’가 있지, 집안일은 결단코 하지 않겠노라는 남편이 생각보다 훨씬 많을 거라는 말을 듣고서 퍼뜩 머리에 떠오른 게 ‘앞으로 남자들 장가들기 힘들겠구나’였다. 보고 배운 게 어디 가나.
요즘은 세상이 변해서 남편이 가사를 돕는 가정이 늘었다고 하지만 실상은 크게 달라진 것도 없다. 나와 친하게 지내는 H는 아이를 출산해 양육에 몰두한 2, 3년을 빼고는 환갑을 앞둔 지금까지 직장을 다니고 있다. 그들 부부가 집을 사고 안정된 생활을 하는 데 H의 역할이 컸으면 컸지 모자라지 않았다. 집안일은 그러나 전적으로 H의 몫이었다. 부부가 출근하는 평일에는 아침저녁으로 남편과 아들의 식사를 챙기고, 주말에는 대청소와 빨래를 하면서 일주일간 먹을 밑반찬을 해놓는다고 했다. 가사 노동 어디에도 남편이나 아들의 역할은 찾아볼 수 없었다.
H의 경우가 특별한 게 아닌 건 통계가 말해준다. 통계청이 발표한 ‘저출산과 우리 사회 변화’에 따르면 맞벌이 부부의 경우 여성의 가사 노동 시간(2019년 기준)은 3시간 7분이고 남성은 54분이다. 여성이 외벌이하는데도 여성의 가사 노동 시간은 2시간 36분이었고 남성은 1시간 59분으로 오히려 37분이 더 길었다. 남성이 외벌이하는 경우는, 그냥 말을 말자.

누군가는 해야 하는 가사 노동의 몫을 관습의 압력으로 여성에게 지우는 건 무책임을 넘은 폭력에 가깝다. 남자에게는 쉼터이고 여자에게는 일터인 가정의 분위기가 민주적일 가능성은 매우 낮다. 한 명의 헌신으로 행복한 가족이 있다면 조용히 썩어가는 구멍 위에 철판을 깔아서이다. 마음의 싱크홀이라는 것도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그러니 남성들이여, 가사 노동을 돕지 말고 분담하자. ‘그 개와 혁명’으로 돌풍을 일으킨 등단 5년 차의 신예 작가처럼 그 ‘가오’로 혁명 한번 해보자. 가사 노동이 공평하게 이뤄지는 데서 가정의 민주주의, 일상의 민주주의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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