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왜 대한민국 제1호 안중근 동상이 장성에 있을까.
한 때 서울역 등 거론…4.19 혁명 후 이승만 동상 철거 후 그 자리로 재이전
남산 동상 철거 때 "안 의사 군인정신 숭상 광주 상무대로 옮기자 "제안 수용
김영삼 정부 때 장성 상무대로 이전… 광주 옛 자리에 ‘참모중장’ 동상 새로 만들어

안중근 의사.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동상과 기념비가 세워진 항일독립운동가이다. 지난 2018년 국가보훈처가 최근 5년간의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우리 국민들이 가장 관심을 갖는 독립운동가를 조사했다. 조선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안중근 의사가 105만건으로 압도적 1위를 기록했다. 다음으로 김구(64만건), 윤동주(56만건), 유관순(38만건), 윤봉길(24만건) 순이었다.
광주·전남지역에도 안 의사 동상, 기념비, 사당 등이 존재한다. 그가 한번도 전라도 땅을 밟은적이 없었지만, 광주, 장성, 장흥, 함평 등 전국에서 가장 많은 기념시설이 조성돼 있다. 그냥 많은 게 아니라, 전국 최초이거나, 전국에서 유일한 기념물들이다. 왜 지역민들은 안중근을 특별하게 추앙한 것일까. 남도의 안중근 의사를 만나러 간다.
#육군의 요람 상무대 보병학교에 우뚝
전라남도 장성군 삼서면 상무대. 육군교육사령부 예하 부대로 아시아 최대 규모의 대한민국 육군 군사교육 시설이다. 육군보병학교, 육군포병학교, 육군기계화학교, 육군화생방학교, 육군공병학교 등 5개 육군 병과 학교와 근무지원단, 기타 부대들로 구성되어 있다. 면적은 무려 1천24만㎡ (309만평)이며 연 교육인원은 3만3천여 명이다.
상무대(尙武臺)는 '무(武)를 숭상하는 배움의 터전'이라는 뜻이다. 1952년 1월, 당시 대통령인 이승만이 광주광역시 서구 치평동 일대에 위치한 보병학교, 포병학교, 통신학교 등을 상무대라고 이름 붙이면서 출범했다. 이후 기갑학교, 화학학교가 이전해왔다. 광주에 있던 상무대는 1994년 김영삼정부의 5·18 기념사업 및 상무대 부지 광주시 기증으로 장성으로 옮기게 된다. 지금의 상무지구인 상무대 자리에는 광주광역시청을 비롯한 행정기관과 아파트 단지, 체육시설이 들어섰다.
장성 상무대 보병학교 입구에 안중근 동상이 서 있다. 의사 안중근이란 표지석에 태극기를 오른손으로 들고 있는 모습이다. 안 의사 얼굴은 콧수염을 기른 상태이며, 머리를 짧지만 넘긴 스타일이다. 양복 슈트와 코트를 걸치고 있다. 이 동상이 대한민국에서 처음으로 세워진 안중근 동상이다. 안중근 제1호 동상인 셈이다.
왜 제1호 안 의사 동상이 장성 상무대에 있는 것일까. 80여년 전 해방공간으로 돌아가 보자.

#해방 후 민족정기 선양 사업으로 추진
1945년 해방 후 시급한 시대 과제는 일제 잔재 청산과 민족정기 수립이었다. 청산은 반민특위로, 선양은 안중근 의사 기념사업으로 집약됐다. 그해 12월 11일 '장충단 재건 및 의사 안중근 동상 건립 기성회'가 서울에서 조직됐다. 장충단은 고종이 명성황후 시해 사건 때 숨진 인물들을 추모하기 위한 만든 추념공간이었다. 모두 일제와 항일의 의미를 담았다.
하지만 해방 공간의 정치적 혼란과 한국전쟁으로 안 의사 동상 건립은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한국전쟁이 종결되고 정치적 안정을 되찾자 다시금 동상 건립 문제가 떠올랐다. 1956년 6월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가 발족해 동상 건립을 재추진하기로 결의했다. 이듬해 8월 서울역 광장에서 안 의사 동상 기공식을 개최했다. 조각가 김경승 씨에게 동상 제작을 의뢰했다.
그러다 1959년 5월23일 안중근기념사업회 주관으로 서울역 광장이 아닌, 남산 기슭 왜성대 옛터에 안중근 동상이 세워졌다. 동상건립비는 전국의 학생, 군인, 공무원, 은행원 등이 낸 성금 2천300여 만 환으로 충당했다.
동상 제막식은 정부 3부 요인이 참석한 국민적 행사로 치러졌다. 동상은 상무대에 있는 그대로 모습으로, 안 의사가 오른손에 태극기를 잡고 하늘을 응시하는 모습이다.

# 남산 안의사 동상을 광주로 이전
안 의사 동상은 4·19혁명 이후 이전에 직면한다. 당시 남산 노른 자리에 이승만 대통령 동상이 있었는데, 4월 혁명 직후 철거됐다. 독재자 이승만 동상이 무너지고, 1967년 4월 26일 그 자리에 안 의사 동상이 옮겨 세워졌다.
그런데 이번에는 안 의사 동상 자체를 둘러싸고 논란이 일었다. 남산 동상이 안 의사의 실제 모습과 차이가 많고, 조각가 김경승 씨가 친일 작가라는 주장이었다. 세월이 흐르다보니 동상 자체도 낡고 퇴색했다. 이래저래 남산 동상을 철거하고 다시 세우자는 목소리가 커졌다.
제1호 동상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이 때 누군가 제안을 했다고 한다. 제안자는 기록도 구전도 없어 알 수가 없다. 안 의사가 대한의군 참모중장인 만큼 안 의사 동상을 대한민국 육군의 최대 군사교육시설이 있는 광주 상무대로 옮기자는 것이었다. 모두 수긍했다.
안중근 의사는 하얼빈 의거 후 뤼순 감옥과 관동법원을 오가며 6차례에 걸쳐 공판을 받았다. 1910년 2월 7일부터 진행된 공판에서 마지막인 2월14일 사형이 선고된 재판까지 안 의사는 시종일관 '군인'임을 강조했다. 안 의사는 공판에서 자신이 군인으로 독립전쟁을 벌이다가 체포된 군인이니 포로 대우를 요구했다. 이런 주장을 펼치면서 자신의 직함을 '대한의군 참모중장 겸 독립 특파대장'이라고 밝혔다.
안 의사는 1908년 연해주 일대에서 활동한 '동의회' 라는 의병 무장 조직의 우영장으로 국내 진공작전을 펼친 바 있다. 아마도 안 의사는 동의회 우영장을 참모중장이라 주장한 듯 보인다. 당시 연해주 일대 무장세력 중 대한의군은 없었다.
1973년 3월5일 안 의사 동상이 광주 상무대 입구에 다시 세워졌다. 동상 뒤편에 부착된 '안 의사 동상 찬'을 보면 이은상이 짓고, 사령관 육군중장 송호림이 세움이라고 새겨져 있다. 동상은 서울에서 가져왔지만, 기단을 다시 세웠다. 이은상의 글은 이렇다.
조국이 기울어 갈제
정기를 세우신 이여
역사의 파도 위에
산같이 우뚝한 이여
해달도 길을 멈추고
다시 굽어 보도다

# 옛 상무대 터에 다시 세운 안 의사
1994년 상무대 안 의사 동상이 장성으로 이전하자 광주 시민들은 안 의사 동상을 상무지구에 다시 세우자는 운동을 펼친다.
2017년 3월 25일 안 의사 순국 107주기를 앞두고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광주지역 청년회가 중심이 되어 새 동상을 건립했다. 청동으로 만든 높이 3.3m 규모인데, 안 의사가 오른손으로 태극기를 움켜진 모습이다.
동상은 조각가 김숙빈 씨 작품이다. 동상 받침돌에는 '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이라 크게 쓰고, 그 아래에 안 의사의 유묵인 '見利思義 見危授命(견리사의 견위수명)'이라 썼다.이로움을 보거든 정의를 생각하고, 위급함을 보거든 목숨을 바쳐라는 뜻이다. 가장 밑단에는 '진정한 통일은 독립과 자주적 평화통일이다'라고 써넣어 새시대의 열망도 담았다.
해방된 조국의 민족 정기 수립을 위해 서울 남산에 세워졌던 안중근 의사 동상. 광주 상무대를 거쳐 지금은 장성 상무대에 올곧게 서 있다. 대한민국 제1호 안중근 동상이 거기에 있다.
글· 사진 /이건상 기자 lgs@namdonews.com
위치 : 전남 장성군 삼서면 상무대 육군보병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