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하는 대통령을 보고 싶다 [2030의 정치학]

2025. 5. 20. 18:00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편집자주
88년생 이동수 세대정치연구소 대표와 93년생 곽민해 젊치인 에이전시 뉴웨이즈 이사가 2030의 시선으로 한국정치, 한국사회를 이야기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국회 탄핵안 표결일인 7일 오전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윤 대통령의 대국민 비상계엄 관련 담화를 시청하고 있다. 뉴스1

윤석열 전 대통령의 사과에는 패턴이 있다. 처음엔 부인하거나 모르쇠로 일관한다. 상황이 심상치 않다 싶으면 국무위원이나 대통령실 관계자 등의 전언을 통해 유감을 표명한다. 직접 나서는 건 이 정도 선에서 매듭지을 수 없을 정도로 여론이 악화했을 경우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군사쿠데타와 5·18만 빼면 정치는 잘했다"는 발언으로 논란을 키운 후보 시절(2021년 10월)이나, '명태균 게이트' 의혹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한 지난해 말(2024년 11월)에도 그는 밀리고 밀린 끝에야 고개를 숙였다.

이제는 물러났으니, 억지로 사과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 걸까. 지난 17일 공개된 윤 전 대통령의 탈당 선언문에는 비상계엄이 초래한 국가적 혼란에 대한 형식적 사과조차 담기지 않았다. 대신 그는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존속될 것이냐, 붕괴하느냐 하는 절체절명의 갈림길에 서 있다"며 "자유와 주권 수호를 위해 백의종군하겠다"고 했다. 지지층에 감사의 마음도 "거듭 거듭" 전했다.

대통령은 사과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국민의 매를 벌기도 하지만 분노를 누그러뜨리기도 한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서울 성수대교가 무너진 1994년 10월 21일 이원종 서울시장(관선)을 즉각 경질하고 사흘 뒤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대통령으로서 저의 부덕함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며, "국무총리의 사표를 반려한 것도 무엇보다 저 자신의 책임을 통감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역시 2005년 11월 시위 진압 과정에서 두 명의 농민이 사망한 사건을 두고 국민에 사과했다. 참모들이 "아직 책임 규명이 안 됐다"고 말리는 데도 그렇게 했다. 격렬한 시위 현장에 투입되는 경찰들의 사기를 북돋고, 아들을 전경으로 보낸 부모들의 우려를 잠재우는 말도 잊지 않았다. 책임론은 오래가지 않았다.

정치권은 '사과하면 밀린다'라는 이상한 불문율을 공유한다. 김건희 여사도 명품백 수수 의혹이 한창이던 당시 "사과하면 야당의 공격을 받아 총선이 불리해진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지인에게 보냈다. 실제론 제대로 사과하지 않아 논란을 키운 게 더 문제였지 않을까. 채상병 순직 사건만 해도 진즉 사과하고 책임자를 처벌했더라면 일이 그렇게 커지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윤석열 전 대통령은 끝까지 버팀으로써 총선 참패를 자초했다. 이것이 나비효과를 일으켜 탄핵으로 이어졌다.

대통령 보고 사과하라는 건 혼자 모든 잘못을 뒤집어쓰라는 의미가 아니다. 대통령이 참사를 예방하고 수많은 측근을 단속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대통령에게 사과를 요구하는 건 그 자체가 민의에 귀 기울이고 있다는 증거요, 국민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퍼포먼스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사과는 국민을 향한 일종의 성의 표시이기도 하다. 이번 대선에서는 부디 사소한 논란에도 사과할 줄 아는, 염치 있는 사람이 당선되길 바란다.

이동수 세대정치연구소 대표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