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석의 건강수명 연장하기] 혈액형의 발견


오래 전부터 젊은 피 수혈이라는 개념이 있었다. 나이 든 사람이 젊은 사람의 피를 수혈받아 회춘할 수 있다는 믿음이었는데, 물론 근거는 없다. 일부 동물실험에서 젊은 피 수혈이 도움이 된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지만,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이에 대한 어떤 인정도 하고 있지 않다.
의학적인 면 외에도 혈액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고대 중국의 춘추전국 시대에는 지도자끼리 맹약을 맺을 때 동물을 죽여서 피를 입에 바른 후 나눠 마시는 의식을 치르기도 했다. 로마 시대에는 피 속에 생명의 정수가 들어 있다는 생각으로 검투사들이 자신이 죽인 상대방의 피를 마시기도 했다. 또 우리 몸 수액의 균형을 맞추거나 나쁜 피를 제거하기 위해 피를 빼내는 방식인 사혈(瀉血)은 비교적 최근인 1920년대까지도 지속됐다.
1800년대 초반 내과 의사이며 산부인과 의사인 영국인 데임스 블런델은 산모의 과도한 출혈을 막기 위해 수혈을 시도했다. 1829년 처음으로 사람의 피를 수혈하는 데 성공하여 과다출혈로 죽어가던 여성이 회복되는 새로운 경험을 했다. 이런 결과에 고무된 그는 모두 48건의 수혈을 시행했으나 환자가 사망하는 끔찍한 부작용을 경험해야만 했다.
수혈이라는 동일한 치료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은 좋아지고 어떤 사람은 사망에까지 이르게 된다는 점은 당시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미생물에 의한 감염인지 아니면 수혈 중에 들어간 공기 때문인지 원인조차 알 수 없었다. 오스트리아의 의사 란트슈타이너는 여러 사람들의 혈액을 채취해서 섞어보는, 당시로서는 매우 획기적인 실험을 했다.
그는 1900년 논문에서 사람에 따라 적혈구 응집 현상이 다르다는 것을 지적했다. 그는 사람의 혈액에서 적혈구만을 분리하여 생리식염수로 몇 차례 희석함으로써 순수한 적혈구를 4개의 시험관에 넣은 다음 각기 다른 사람의 혈청을 시험관에 넣었다. 그러자 1개의 시험관은 아무 변화도 없었지만 3개의 시험관은 적혈구가 뭉쳐서 덩어리가 되었다. 즉 응집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그 후 지속적인 연구로 현대적인 A형, B형, AB형, O형의 4가지 혈액형으로 분류하게 된다.
그런데 또 하나의 문제는 혈액형에 관계없이 채혈한 혈액이 몇 분 되지 않아 굳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혈액을 기증할 수 있는 기증자를 구했어도 혈액이 응고하기 전에 수혈하기 위해서 기증자의 동맥과 환자의 정맥을 연결하는 방법까지도 사용이 됐다. 그러다가 1913년 마운트 시나이 병원의 의사 리처드 루이손이 혈액에 구연산나트륨을 첨가하면 응고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하면서 채혈한 혈액을 용기에 담아 저장했다가 혈액형에 맞춰서 수혈할 수 있는 방법이 개발됐다.
그 후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출혈로 인한 혈액 부족 때문에 쇼크 상태에 빠졌다. 그렇지만 항응고제 덕분에 혈액을 용기에 보관할 수 있게 되었고, 또 혈액형에 맞춰 안전하게 수혈할 수 있게 됐다. 그 결과 제1차 세계대전 기간인 1913년부터 1918년까지 수만 건의 수혈이 대량 이뤄졌다.
그러나 당시에는 문제점도 있었다. 수혈이 보편화되면서 이를 통해서 매독과 같은 질병에 걸릴 위험이 있었다. 그러나 1906년 아우구스트 바서만이 매독 혈액 판별법을 개발하고 란트슈타이너가 개량함으로써 사전에 예방이 가능해졌다. 지금은 간염, 매독, AIDS(후천성면역결핍증)같이 혈액으로 전파되는 질환들은 철저하게 사전에 검사하여 매우 안전하다.
1923년 뉴욕으로 온 란트슈타이너는 계속 면역학에 관심을 갖고 백신 개발에 노력을 기울인다. 은퇴 후에도 28 편에 달하는 논문을 발표하는 등 완성한 활동을 벌이던 그는 1930년 어느 날 밤 제자가 집을 방문하여 노벨상 수상 소식을 알리자 무척 당황했다. 1923년부터 여러 번 노벨상 후보로 추천됐었지만, 정작 그는 자신이 실제로 노벨상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동료들에 진실되고 겸손하면서도 재미있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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