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쏙 들어가봤다] 하천 변 '검은 회오리'⋯생태계 경고 신호

이주이 2025. 5. 20.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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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소영

하천 위 검은 회오리, 정체는 하루살이 떼

지난 14일, 대전 유등천 일대에서 목격된 하루살이 떼 (자료출처: 신성재)

하천 변 곳곳에서 검은 회오리처럼 무언가가 동시에 피어오릅니다.

새 떼가 출몰한 듯 보이지만, 정체는 다름 아닌 하루살이 떼입니다.

이 장면은 지난 14일, 대전 유등천 일대에서 포착됐습니다.

예년보다 벌레 출몰이 눈에 띄게 늘면서, 인근 주민들 사이에선 "마스크와 안경 없이는 걷기조차 힘들다"는 말까지 나옵니다.

벌레 떼를 막기 위해 마스크와 안경을 착용한 주민
유등천 일대 주민
"벌레들이 얼굴에 스치고, 눈‧입‧코에 막 들어와요. 딱딱한 날파리들인데, 뭔가 진화된 것 같기도 하고요."

예기치 못한 벌레 떼 출몰에 자치구들도 긴급 방역에 나섰습니다.

특히 벌레 떼가 자주 목격된 대전 서구는 평소 주 1회 민간 용역을 통한 방역 외에도 보건소 인력을 투입해 민원 지역과 해충 취약지를 중심으로 추가 방역에 나설 계획입니다.

달라진 건 벌레 떼만이 아닙니다.

매일 아침 하천 변을 오가던 너구리 일가족은 어느샌가 자취를 감췄고, 잉어는 지느러미를 수면 위로 드러낸 채 제대로 헤엄치지 못하는 모습이 목격되고 있다는 게 주민들 설명입니다.

김기태/대전시 둔산동
"(너구리) 일가족이 다니기도 하고, 새벽엔 사람 옆에서 같이 걷는 모습도 봤어요. 그런데 정비사업을 하고 나선 그런 동물들이 싹 사라졌죠."

■ 생태계 중간 개체 실종⋯"원인은 하천 준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생태계 이상 징후의 배경으로 대전시의 하천 준설 사업을 지목합니다.

지난 4월, 대전천 일대 준설 현장

대전시는 지난해 12월부터 170억 원을 투입해 갑천, 유등천, 대전천 등 총 20.7km 구간에서 대대적인 준설 작업을 벌였습니다.

목적은 집중호우 시 하천 범람을 막기 위한 것이었지만, 전문가들은 대전시의 홍수량 산정이 정부 공식 수치보다 과도하게 부풀려졌다고 지적합니다.

좌: 정부보고서 우: 대전시 보고서

실제 대전시는 대덕구 원천교 상‧하류 구간인 '갑천 1구간'의 계획 홍수량을 초당 5,000㎥로 설정해 준설의 타당성을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정부 공식 보고서에 따르면 같은 구간의 계획 홍수량은 초당 3,323㎥로, 대전시가 제시한 수치보다 30% 이상 낮았습니다.

백경오 / 한경국립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
“(대전시가) 홍수량을 두 배 가까이 뻥튀기해서 보고서를 만들었더라고요. 그렇게 홍수량을 늘리면 홍수위도 올라가게 되죠. 결국 '준설이 필요하다'는 논리를 만드는 방식입니다."

■ 무너진 생태계, 원인 진단부터 차질

환경단체는 과장된 수치와 불분명한 효과에 기반한 준설이 결국 하천 생태계 붕괴로 이어졌다고 분석합니다.

임도훈 대전충남녹색연합 자연생태팀장은 "단계적인 구간 준설이 아닌 대규모로 획일적인 하천 준설을 진행하면서, 서식지를 옮기지 못한 어류나 조류, 양서류 등 생태계 중간자 역할을 하는 종들의 개체 수가 크게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대전시는 하루살이 떼 출몰은 준설과 무관하다는 입장입니다.

대전시 관계자는 "유속이 느린 하천 특성상, 퇴적물이 썩으면서 유충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크다"라며, "생태계 변화로 벌레 떼가 출몰했다는 주장은 상식적이지 않다"라고 밝혔습니다.

벌레 떼의 출몰과 사라진 동물들.
단순한 계절 현상으로 보기엔 생태계가 보내는 신호는 분명해 보이지만, 원인 진단과 과학적 검증은 여전히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Copyright © 대전MBC.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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