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도 광장과 멀어지시면 안 됩니다
[이슬기의 미다시]
[미디어오늘 이슬기 프리랜서 기자]
지난달 4일, 대통령 윤석열이 파면됐다. 그러나 이후에도 윤석열 퇴진 광장은 닫히지 않았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이동권 집회에서, 강남역 살인 9주기 추모 집회에서, 경북 구미의 한국옵티칼하이테크 고공 농성장에서 윤석열 퇴진 광장에서 터져 나왔던 목소리들이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다. 지난 광장을 계기로 '말벌 시민'들이 된 이들의 연대도 계속된다. 내란 국면을 거쳐 자신들과 비슷한 약자들의 사정을 알게 된 이들이다. 한 번 닿았던 발걸음은 멈출 수가 없었고, 모르던 시절로는 돌아갈 수 없었다.
그러나 6·3 조기대선 국면으로 넘어가며 언론 보도들에서는 광장의 목소리를 찾기가 쉽지 않다. 각 당의 대선 후보 경쟁에 이어 후보 선출 이후에는 지지율 경쟁 등을 보도하는 데 매몰된 탓이다. 사실 지금 나오는 정치 기사들은 철저히 관행대로다. 언론사들은 대통령 선거라는 대목에 맞춰 정치 기사에 화력을 집중하기 위해 정치부 기자들의 수를 확충했다. 온라인 부서들도 정치인들의 페이스북을 따라가는 데 더욱 열을 올린다. 물론 몇몇 진보 매체의 사회부 기자들은 요즘도 열심히 광장의 목소리를 전달한다. 그 보도량이 많지는 않지만.
문제는 광장과 제도권 정치를 잇는 기사가 드물다는 것이다. 광장에서 나온 정치적 요구들에 각 후보들의 생각은 어떠한지 묻는다거나, 혹은 정치권에서 광장의 목소리가 삭제된 것에 대한 시민들의 생각을 묻는다거나, 광장의 의제를 정치권에 전달하려는 움직임에 관한 기사가 드물다. 그 바람에 '광장 따로, 제도권 정치 따로' 였던 2016~2017년 박근혜 탄핵 광장 이후의 상황이 되풀이될까 하는 염려가 광장의 시민들을 엄습하고 있다.
'정치 기사 따로, 광장 기사 따로' 하는 식의 보도는 언론사 내부 구조도 원인이 있다. 정치부 따로, 사회부 따로 기사를 발제하는 현실 속에서 '정당 정치'라는 정치부의 출입처와 '광장'이라는 사회부의 출입처를 함께 다루는 기사는 나오기가 어렵다. 국장급 데스크가 정치부·사회부가 함께 기획 기사를 발제해보라고 하지 않는 이상 나올 수 없다. 정치부 기자들은 줄곧 유력 정치인들의 발언을 해설하고, 당내 기류를 감지하는 게 일이다. 사회부 기자들은 사회의 목소리를 좇는다. 각자의 일만도 버겁기 때문에 각 부서의 부장들이 나서 서로를 '링크'하는 일은 잘 없다.
사실 '광장이 정치가 되려면'이라는 의문은 퇴진 광장 내내 있었다. 나는 여기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광장부터가 정치이기 때문이다. 한겨울 혹한에 피켓을 들고, 저마다의 정체성을 적은 깃발을 들고, 자유 발언대에 올라 각자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전에는 존재 조차 몰랐던 농성 현장에 가서 연대하는 것은 그 자체로 정치적인 행위다. 그러나 이것이 선거와 정책이라는 제도권 정치로 포섭되는 것은 또 다른 영역이다.
그래서 당연히 광장과 제도권 정치를 이으려는 움직임이, 노력이 있어야 한다. 지난 16일 성소수자 인권단체 연대체인 무지개행동은 권영국 민주노동당 대선 후보와 정책 협약식을 가졌다. '찬탄' 광장에서 25개 청년 시민사회단체가 연대한 '윤석열 물어가는 범청년행동'은 지난달 25일 '불평등 물어가는 범청년행동'으로 단체명을 바꾸고, 청년 의제를 제도권 정치에 반영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풀뿌리 시민주권운동을 표방하는 국민주권전국회의도 부문별로 위원회를 창립해 광장의 의견을 취합 중이다.
문제는 이러한 움직임이 언론에는 포착이 잘 되지 않으며, 기사화되더라도 비중 있게 다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광장의 요구들이 어떻게 제도권 정치가 되는지가 언론에 의해 가시화되어야, 광장을 지켰던 시민들의 정치적 효능감이 생긴다. 더불어 광장의 의제가 정책이 되기까지의 경로를 투명하게 보고, 감시하며 정치적 압력을 행사할 수 있는 하나의 길이 열리는 일이다.
반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연일 보수 세력을 포섭하는 발언을 하는 것과, 이에 지지를 표명한 보수 세력이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실시간으로 기사화된다. 그러나 지난 내란 국면에 찬탄 집회와 반탄 집회로 나뉘어 살았던 시민들의 일상은 어떠한지에 대한 구조적 분석은 이뤄지지 않는다. 보수 세력 몇몇이 이 후보를 지지하는 것과, 서로 반대편 광장에 있던 이들이 현실에서 어떻게 '공존'하고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언론은 이들의 일상 속 공존과 함께, 정치권이 이들의 위태로운 공존에 어떤 해법을 지니고 있는지를 물어야 한다.
지난 18일, 경제 분야 대선 후보 TV 토론에서 권영국 민주노동당 후보는 이재명 후보에게 “이번 광장에서 2030 청년들이 가장 많이 요구한 것이 차별금지법 제정”이라며 “광장과 멀어지시면 안 됩니다”라고 했다. 그 말을 고스란히 언론에 돌려 주고 싶다. “광장과 멀어지시면 안 됩니다.” 그러기 위해 기성 언론이 이참에 부서 간 칸막이를 없앨 방법을, '따로 국밥' 보도를 없앨 방안에 관한 진지한 고민을 해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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