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에서 인간으로 내려온 ‘이혜영표 헤다 가블러’

히스테리와 카리스마를 내뿜던 배우 이혜영이 13년 만에 같은 배역을 연기하며 힘을 빼고 한결 나긋해진 모습으로 돌아왔다. 국립극단이 2012년에 이어 다시 무대에 올린 연극 ‘헤다 가블러’에서다. 어느덧 60대에 접어든 이혜영은 지난 19일 간담회에서 “작품을 조금 쉽게 풀어보고 싶었다”며 “20~30대 젊은 관객이 공감할 수 있는 연극을 만들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노르웨이 극작가 헨리크 입센(1828~1906) 원작의 주인공 헤다 가블러는 흔히 ‘우울의 심연을 지닌 강렬하고 모순적이며 불가해한 여성’으로 그려진다. 6개월 동안의 긴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지 36시간 만에 파국으로 치닫는 이야기다. 초연 당시 이혜영은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로 각종 연극상을 휩쓸었지만, 다른 배우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평도 나왔다. 이혜영은 당시를 떠올리면서 “제 카리스마 때문이 아니라 원래 대본이 그렇다. 저는 정말 억울하다”며 웃었다.
이번 무대에서 이혜영의 강렬한 존재감은 옅어진 대신, 다른 배우들의 연기가 눈에 들어온다. 이혜영의 연륜이 쌓여서만은 아니다. 제작진이 작품을 해석하는 관점 자체가 달라졌다. “헤다 가블러를 흔히 여성 서사, 여성의 해방이나 자유 의지를 나타내는 작품으로 해석하는데, 21세기엔 젠더를 초월한 한 존재, 한 인간의 이야기로 보는 해석이 많아요.” 2012년에 이어 이번에도 연출을 맡은 박정희 국립극단 예술감독은 “초연 때는 신이 되려고 했던 헤다였다면, 이번엔 인간에 가까운 헤다”라고 설명했다.

이혜영은 여전히 바쁜 배우다. 지난달 개봉한 액션 영화 ‘파과’에서 반백 머리 킬러를 연기하며 갈비뼈 3개가 부서지는 상처까지 입었다. 다음달 1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연극도 단일 캐스트로 출연한다. “늙어서 연기가 안 되면 어떡하겠어요. 연습도 공연이라고 생각하며 ‘잘 버텨야 한다’는 생각으로 하고 있어요.” 그는 “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들면서 체력적으로도 어려움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도 “보컬 훈련도 하고 링거 주사도 맞으면서 하고 있다”고 근황을 전했다.
이번 공연은 원래 지난 8일 개막 예정이었으나 하루 전날 브라크 검사 역을 맡은 배우 윤상화의 갑작스러운 건강 문제로 배우가 교체되고 개막이 1주일 미뤄지는 곡절을 겪었다. 긴급히 대타로 투입된 배우 홍선우는 비중 높은 배역의 대사를 이틀 만에 외우며 무리 없이 소화했다.
이번 공연은 공교롭게도 배우 이영애가 출연하는 엘지(LG)아트센터 제작 ‘헤다 가블러’와 공연 시기가 겹친다. 두 공연은 대본부터 다르다. 국립극단이 비교적 원작에 충실하다면, 엘지아트센터는 영국 연출가 리처드 이어의 현대적 각색본을 사용했다. 연기 스타일과 개성이 확연히 다른 이영애와 이혜영의 간접 연기 대결도 자연스럽게 화제에 오른다. 이혜영은 “배우가 다르고 프로덕션 전체가 다르기 때문에 비교는 불가한 것 같다”고 말했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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