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은 위험하다, 수다 떨지 않으면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

황지윤 기자 2025. 5. 20. 0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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獨서 활동하는 다와다 요코 내한
가장 유력한 노벨문학상 日후보
다와다 요코는 소설 ‘눈 속의 에튀드’에서 동물 3대를 화자로 삼았다. 작가는 “만약 제가 한국에서 창작 활동을 했다면 한국 동물의 눈에 비친 남북 분단의 모습에 대해 썼을 것”이라고 했다. /장경식 기자

“문학 작품을 쓸 때 저는 ‘제로(0)’에서 출발합니다. 지금까지 내가 써온 것이 있으니 거기서 조금만 더 발전시키면 되겠다고 하는 건 문학(文學)이 아니라 기술(技術)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어와 독일어를 넘나들며 쓰는 세계적인 작가 다와다 요코(65)가 한국을 찾았다.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에서 19일 열린 간담회에서 그는 이중 언어로 작품을 쓰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다. “독일어로 창작 활동을 하다가 다시 일본어로 넘어올 때, 제 일본어가 텅 비어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일종의 기억 상실 상태에 빠지는 듯한 경험을 합니다. 단점일 수도 있지만, 이것 자체가 갖는 의미도 있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다시 출발하는 마음가짐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1960년 도쿄에서 태어나 1982년 독일로 이주, 현재 베를린에 산다. ‘언어와 언어 사이를 항해하는 글쓰기’ 즉 모어(母語) 밖으로 벗어나는 ‘엑소포니(exophony)’를 지향하며 독보적인 작품 세계를 일구고 있다. 최근 일본 작가 중에서는 가장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된다. ‘목욕탕’ ‘개 신랑 들이기’ ‘용의자의 야간열차’ ‘헌등사’ 등 그의 주요작 다수가 국내에 번역·출간돼 팬층이 두껍다.

그는 “제 책이 전 세계 30국에 소개된 걸로 아는데, 가장 많이 소개된 나라가 한국”이라고 했다. 대산문화재단 초청으로 19~22일 한국에 머무는 동안 서울대 독일어문화권연구소 주관 낭독회, 출판사(은행나무·민음사) 북토크, 김혜순 시인과 비공개 대담 등 빼곡한 일정을 앞두고 있다. “서울에 오면 일이 너무 많아서 이방인이나 여행자의 기분을 못 느끼는 것 같습니다.”

19일 기자 간담회장에 놓인 다와다 요코의 책들. /연합뉴스

다와다 요코가 그리는 세계는 대체로 디스토피아다. 2018년 전미도서상(번역 부문)을 받은 ‘헌등사’(2014)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에 쓴 작품. 방사능 피해를 본 일본 열도에는 죽지 못하는 튼튼한 노인과 픽픽 쓰러지는 허약한 젊은 사람들이 살아간다. 가장 최근작 ‘지구에 아로새겨진’ ‘별에 어른거리는’ ‘태양제도’ 등 ‘Hiruko 3부작’에선 아예 일본을 없애버린다.

이런 참담한 세계. 그러나 작품 속 인물은 시종일관 유쾌하고 이야기는 유유자적 흐른다. 어떻게 가능할까? 작가는 “일본이 사라지건 말건 일단 세계는 비관적 상황에 처한 것이 맞다”면서도 “제2차 세계대전 이후보다는 낫지 않을까요?” 되물었다.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평화·민주주의·평등을 위해서 무언가 열심히 해왔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제 작품에서) 낙관적인 면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와다 요코식 낙관은 ‘대화’ 혹은 ‘수다’에서 싹튼다. ‘Hiruko 3부작’은 여러 문화권에서 모인 무국적 유랑자들이 나누는 수다의 향연이다. 오고 가는 말들 속에서 서로에게 온기가 스민다.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수다의 힘’에 대해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침묵은 굉장히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대화하지 않고, 수다 떨지 않으면 어떻게 의견 수렴을 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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