伊 라 스칼라 감독 된 정명훈 “36년 사랑해 온 친구와 결혼하는 기분”

“라 스칼라는 36년간 가장 친한 친구들이었는데 이제는 가족이 됐으니 책임이 더 커졌죠.”
이탈리아 밀라노의 오페라 명가 라 스칼라 극장의 차기 음악 감독으로 선임된 지휘자 정명훈(72)의 기자회견이 19일 부산콘서트홀에서 열렸다. 1778년 개관한 라 스칼라 극장은 작곡가 베르디와 벨리니, 로시니와 푸치니의 걸작 오페라들이 초연된 곳이다. 247년 역사의 ‘이탈리아 오페라 종갓집’을 이끄는 수장이 된 셈이다. 아시아 지휘자로는 처음이다. 일본 미야자키 국제 음악제에 참가한 그는 이날 오전 귀국했다. 다음 달 개관하는 부산콘서트홀의 예술 감독도 맡고 있다.
-라 스칼라 역사상 첫 동양인 감독인데 소감은.
“라 스칼라에서 처음 연주한 것이 1989년이다. 지난 36년 동안 서로 사랑하면서 지내다가 갑자기 결혼하게 된 것 같다. 라 스칼라 극장의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처음부터 놀라울 만큼 저를 잘 이해해준다고 느꼈다. 라 스칼라 극장에서 지금까지 200여 회 지휘했는데 상임 지휘자나 음악 감독 말고는 제가 가장 많이 지휘했다고 한다.” (정명훈은 라 스칼라에서 오페라 84차례와 음악회 141회를 지휘했다. 역대 음악 감독들을 제외하면 가장 많은 출연 횟수다.)
-단원 투표에서도 지지가 높았다고 하는데, 언제 처음 알게 됐나.
“전체 극장의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은 물론, 현장 스태프 인력까지 저를 많이 원했다는 사실에 마음이 기뻤다. 이탈리아 정치는 자세히 모르지만, 현재 라 스칼라의 극장장인 포르투나토 오르톰비나(65)와 굉장히 가까운 사이다.”(극장 행정을 책임지는 오르톰비나 극장장은 베네치아의 라 페니체 극장장 시절부터 정명훈과 각별한 인연을 이어 왔고 지난해 라 스칼라로 자리를 옮겼다.)
-언제 임기가 시작인가.
“공식적으로 음악 감독으로 취임 연주를 하는 날짜는 내년 12월 7일이다.”(라 스칼라는 밀라노의 수호 성인인 암브로시우스 주교의 날인 12월 7일에 개막한다.)
-취임 이후 계획은 잡혔는가.
“제가 가장 사랑하는 오페라 작곡가가 베르디다. 라 스칼라에서도 베르디의 작품들을 꽤 많이 할 것이다. 내년 시즌 개막에서도 베르디의 ‘오텔로’를 지휘할 것이다.”
-‘오텔로’를 취임 작품으로 고른 이유는.
“30여 년 전에 프랑스 파리 바스티유 오페라의 연주로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와 음반 녹음까지 했던 작품이다. 그때보다는 잘해야 하는 것 아닌가.”(당시 정명훈의 ‘오텔로’ 음반은 세계 음악 전문지의 극찬을 받을 만큼 정평이 있다.)
-1989년 프랑스 파리 바스티유 오페라극장 이후 다시 유럽 명문 오페라극장을 이끌게 됐는데.
“타이밍(timing)이라는 건 우리가 조절할 수 없다. 36년 전에는 프랑스어도 못 했고 프랑스 오페라도 지휘한 경험이 없었다. 젊고 경험도 부족했지만, 극장에서 살다시피 하면서 하루 24시간이라도 할 수 있는 에너지가 있었다. 자정쯤 공연이 끝나고 다음 날 연습이 잡혀 있으면 극장 방에서 잤다. 지금은 그렇게는 못 하겠지만 라 스칼라를 도울 수 있을 만큼 돕겠다.”
-이탈리아와의 첫 인연은.
“50년 전인 1975년 유명한 지휘 선생님인 프랑코 페라라(1911~1985)와 공부하기 위해 이탈리아의 시에나라는 도시에 간 것이 시작이었다. (페라라는 라 스칼라의 전현직 감독인 리카르도 무티와 리카르도 샤이의 스승으로도 유명하다.) 그 뒤에 1982년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의 부지휘자를 마친 뒤에도 유럽으로 가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로마에서 1년간 살았는데, 음악 연주는 없었지만 파스타 요리를 배우면서 이탈리아와 사랑에 빠졌다(웃음).”
-라 스칼라 극장과 한국의 교류도 구상 중인가.
“2027년 하반기에 부산에 오페라 극장이 새롭게 문을 열면, 그때도 개관 연주회는 라 스칼라 극장과 함께할 것 같다. 나라가 생긴 모습부터 감정 표현과 노래를 좋아하는 것까지 구라파(유럽)에서 한국과 가장 닮은 나라가 이탈리아다.”
-한국이나 음악계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이미지가 제 뜻대로 될 수 있다면, 노래를 통해서 한국인들의 성격이 덜 날카로워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함께 노래를 하면 싸우기 힘들다. 한국이 싸우기를 좋아하는 나라가 아니라 노래를 사랑하는 나라가 됐으면 좋겠다.”
☞정명훈(72)
냉전 시절인 1974년 구(舊)소련의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2위에 입상하며 피아니스트로 먼저 이름을 알렸다. 귀국 당시 서울시청까지 카퍼레이드 행사가 열렸던 건 유명한 일화다. 그 뒤 지휘자로 전업해 1989년 프랑스 파리의 바스티유 오페라극장 감독으로 취임하면서 세계 음악계의 주목을 받았다.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이탈리아 로마 산타 체칠리아 오케스트라, 서울시향 등을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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