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582] 오늘은 세계 벌의 날

우정아 포스텍 교수·서양미술사 2025. 5. 20.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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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자 미상, ‘애버딘 베스티어리’ 중 ‘벌’에 대해서, 12세기 후반, 약 30.5×21cm, 양피지에 금박 및 안료, 영국 애버딘 대학교 도서관 소장.

둥근 벌집 세 군데로 벌들이 일사불란하게 날아 들어간다. 12세기 후반 잉글랜드 남부에서 제작해 17세기 중반 스코틀랜드의 애버딘 대학교 소장품이 된 ‘애버딘 베스티어리’의 한 페이지다. ‘베스티어리’란 중세 유럽에서 유행한 동물 우화집으로, 실재하는 동물과 상상 속 생물을 삽화와 함께 설명하고 교훈을 설파하는 기독교적 자연 도감이다.

‘애버딘 베스티어리’에서 3페이지에 걸쳐 설명한 벌의 세계는 모든 구성원이 자발적으로 왕을 선택하고 그에게 충성하면서도 자유를 누리는 이상 사회다. 타고난 품격, 우월한 외양, 자비로운 성정을 바탕으로 선출된 왕은 권력을 남용하지 않고, 결코 복수를 위해 침을 쓰지 않는 절제력이 있다. 한집에 모여 사는 벌들은 정찰, 경비, 수확, 저장, 양육 등 다양한 임무를 분담하고 각자 맡은 역할을 정확히 수행한다. 그들은 다른 종의 노동을 착취하거나 폭력을 사용하지 않고, 규율을 어긴 벌은 자발적으로 스스로를 처벌할 정도로 철저한 윤리의식을 가졌다. 게다가 중세인의 눈에 정확한 육각형 방들을 이어 붙여 완벽한 구조물을 만들고, 아름답고 향기로운 풍경 위를 날아다니며, 달콤한 꿀을 모아 인간에게 고루 선사하는 벌의 노동이란 신의 뜻에 부합하는 고귀함을 갖췄다.

5월 20일은 세계 벌의 날이다. 사실 벌의 개체 수는 급격히 줄고 있다. 선한 왕과 성실한 백성도 무차별 살포하는 농약과 급격한 기후변화에는 속수무책이다. 전 세계 주요 식량 식물의 약 70%가 벌의 수분(受粉)에 의존해 생장한다고 한다. 그러니 벌이 사라진 자리에 남는 건 텅 빈 꿀통만이 아니라 텅 빈 식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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