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덕의우리건축톺아보기] 밥 주는 아파트
좀 산다는 집엔 ‘식모방’이 필수
오늘날 고급단지선 삼시 세끼 줘
다음은 어떤 버전으로 진화할까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주거 형태는 아파트다. 이제 한국에서는 ‘집’ 하면 아파트를 떠올리게 되었고 예전의 ‘진짜’ 집은 ‘단독주택’이라 하여 별종으로 취급하는 분위기다. 누가 단독주택에 산다고 하면 별난 사람이라도 되는 양 관심을 표명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왜 이런 ‘기발한 발상’에 이르렀을까? 그 기원을 따져보면 ‘자신의 편안함을 위해 남을 부리고자 하는 욕망에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조선을 끝으로 전통적인 신분 사회가 해체되고 자본주의 사회로 바뀌면서 돈으로 남의 노동력을 ‘손쉽게 빌려’ 가사에서 ‘해방’될 수 있게 되었다. 그 변천을 살펴보면, 조선 후기부터 해방 전후까지 보편화되었던 ‘드난살이’부터 생각할 수 있다. ‘드난살이’는 남의 집에 살면서 숙식을 제공받는 대가로 청소와 빨래, 식사 준비 등 가사를 돕거나 전담하는 노동이었다. 드난살이하는 사람을 ‘드난’이라 했는데 시골 출신의 가난한 여성이 대부분이었다. 때로는 부부가 함께 ‘드난살이’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1924년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 1925년 나도향의 ‘물레방아’, 1936년 박태원의 ‘천변 풍경’ 등 이른바 근대기 소설에서 가난한 여성의 ‘드난살이’가 곧잘 묘사되었다. 그다음으로 등장한 것이 ‘식모살이’였다. ‘식모(食母)’는 말 그대로 밥 하는 여자를 일컬었으니 식사 준비를 비롯해 빨래와 청소 등 잡다한 가사를 담당했다. ‘드난살이’는 가사 노동의 대가로 숙식만 제공받았지만, ‘식모살이’는 적은 금액이지만 월급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1968년 조사에 의하면, 당시 성인 남자의 한 달 평균 담뱃값이 1500원이었는데 식모 월급이 그 정도였다니 식모를 두는 데 큰 부담이 없었다. 1950~70년대에는 서울은 두 집당 한 집꼴로 식모를 두었을 정도이니 웬만큼 사는 집이면 ‘식모’를 둘 만큼 전성기를 이루다가 1980년대 이후 점차 사라져 ‘가사 도우미’ 형태로 변했다.
‘식모살이’가 전성기를 이루던 70~80년대에 아파트 건설이 붐을 이루면서 자연스럽게 고급 아파트에는 ‘식모 방’이 ‘필수품’으로 여겨졌다. 예전처럼 마당 있는 집이면, 마당의 개방감이 완충작용을 해서 드난이나 식모가 거처하는 공간이 조금이나마 개방감과 독립성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아파트이면 문제가 달라진다. 마당이 있는 일반 주택과는 달리 닫힌 실내 공간만 있는 아파트의 특성상 ‘식모 방’을 두는 것은 만만치 않았다. 되도록 주인집 식구의 프라이버시를 침범하지 않아야 했기에 ‘식모 방’은 눈에 띄지 않는 구석이어야 했다. 그러므로 ‘식모 방’은 햇볕이 들지 않고 환기가 되지 않는 열악한 환경일 수밖에 없었다. ‘식모 방’은 대체로 부엌과 연결된 곳, 뒤 베란다 또는 다용도실 근처, 또는 욕실 근처에 위치한 한두 평 남짓한 작은 방이었으며 창문이 없는 경우도 많았다. 당시에 지어진 전용 면적이 44평인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의 경우, ‘식모 방’은 1.4평에 불과하고 주방 깊숙한 곳에 있어 현관으로 나가려면 주방과 식당, 그리고 거실을 거쳐야 했고 창문이 없었다.
건축적인 측면에서 해석하면, 아파트가 가지는 이러한 ‘식모 방’의 한계를 일거에 해결한 아파트가 ‘밥 주는 아파트’라고 볼 수도 있다. 각 세대에 있었던 ‘식모 방’이 아파트 단지 내 ‘입주자 전용 식당’으로 통합된 셈이다.
돈 많은 사람이 편하게 살기 위해 근대기에는 ‘드난’을 두다가 60~80년대 경제성장기에는 식모를 거느렸고 이제 ‘밥 주는 아파트’에 자리 잡았다고 ‘편안한 삶의 진화 단계’를 구분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까? 세탁기, 건조기, 식기 세척기, 로봇 청소기, 공기 청정기 등 각종 가전제품이 드난이나 식모를 대신해 주부의 일손을 덜어 주었고, 이제 ‘밥 주는 아파트’가 결정적으로 식모를 대신하는 꼴이 되고 있다. ‘밥 주는 아파트’가 진화된 아파트의 끝이 아니라면 다음 버전은 어떤 아파트일까?
최종덕 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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