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주하는 '삶의 배치' 바꿀 때 인생도 바뀌죠

하영란 기자 2025. 5. 19.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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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창] 이수경 박사(부산 '문화사랑 백년어' 대표)

글쓰기 공동체, 나눔과 연대 통해
지속적인 인문 가치 실현하고
사회 미래·대안 모색 집중

꼭대기로 향하는 '나무' 아닌
평평한 고원 '리좀'식 삶 지향
서로 침투 새로운 사유 만들어

질 들뢰즈 유목민적 삶
이동하는 삶 아닌 제자리 여행
떠나길 거부 죽을 때까지 정복
이수경 박사가 이끄는 글쓰기 공동체 모임에서 참여자들이 인문학 읽기에 열중하고 있다.

지난 3월, '문화사랑 백년어'가 새로운 출발을 했다. '문화사랑 백년어'의 대표를 맡고 있는 이수경 철학박사를 오랫동안 지켜봤다. '문화사랑 백년어'는 글쓰기 공동체로 나눔과 연대를 통해 지속적인 인문 가치를 실현하는 공간을 추구하고 있다. 바람직한 우리 사회의 미래와 대안을 모색하는 공간으로 활용될 수 있는 방안도 모색하고 있다. 부산 원도심에서 16년간 인문학 운동을 전개해온 백년어서원(김수우 대표)은 영도로 이전하고, 비영리단체 '문화사랑 백년어'는 중앙동에 남아 시민들에게 인문 정신을 실천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문화사랑 백년어'는 계간지 발행, 독서 소모임, 글쓰기 강좌 등 원도심의 장소성을 회복하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특히 인문계간지 '백년어'는 62호 발간을 앞두고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독서 소모임 활동은 장편(전집)읽기, 현대철학 강독, 비문학 읽기, 동화창작, 시집 읽기, 스마트폰으로 사진작가 되기, 철학입문반 등이 있다.

늘 지역민들과 부산과 김해를 오가며 공부하고 연구하며 인문 강독을 해오고 있는, 이 사회를 촉촉한 감성으로 인문학으로 문화의 공간을 만들고 있는 이수경 박사의 들뢰즈에 관한 이야기와 유목민적 삶, 삶의 자세 등을 들어봤다.

■ 질 들뢰즈 연구자로 알고 있다. 들뢰즈의 매력은 무엇인가?

들뢰즈는 살아가기를 즐기고 삶을 긍정하라는 메시지를 계속 준 철학자라는 점에서 무척 매력적이다. 만물(기계, 즉 모든 것)이 다른 구조로 '되기(생성변화하기)'를 그치지 않고 접속한다는 것을 존재론의 수준에서 정립했다. 그러나 생성의 철학은 끝없는 변화 속에 있지 않다. 신중함을 요청한다. 기관 없는 신체를 너무 폭주시키지 않고 삶을 꾸려나갈 수 있어야 한다. 생성의 철학은 우리네 삶도 세계 창조도 절제하는 것에 있다.

■ 우리의 삶에 천 개의 고원이 있는가

들뢰즈가 가타리와 함께 한 대표적 저작 '천 개의 고원'은 어느 장에서 읽어도 된다. 우리네 삶 같다. 비록 실패하고 무너져도 어느 지점에서든 다시 일어서서 시작하면 된다. 우린 꼭 저 높은 꼭대기에 도착할 필요가 없다. 꼭대기로 향하는 '나무'가 아니라 평평한 고원 '리좀'식 삶의 지향, 그러나 이는 이원론식 방법이 아니다. 나무뿌리에 리좀의 발아가 있고, 리좀에 나무의 마디가 있듯이 서로 침투해서 새로운 사유를 생성하는 것이다. 하나의 점으로 수축시키고 고착화하는 것들에 대항하는 삶의 추구가 들뢰즈가 우리에게 던진 숙제다. 그러기 위해서 중심에 있기보다 가장자리에서 시작하면 된다. 다시 어디로든 언제든 갈 수 있게. 그래서 삶에는 다방향으로 리좀적(비의미적) 접속을 할 수 있는 천 개의 선이 있고 천 개의 고원이 있다.

■ 유목민적 삶의 태도는 어떤 것인가?

또 하나 들뢰즈 철학의 매력이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노마디즘은 한마디로 '제자리 여행'이다. 들뢰즈의 유목민적 삶은 현재 나의 삶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삶이 아니다. 이주하지 않는다. 떠나기를 거부하면서 정복하고 죽을 때에야 그곳을 벗어나기 때문에 유목민이다. 홈패인(로고스적)이 아닌 매끈한(노모스적) 것 속에서 여행하는 것(사유하는 것)이 생성이다. 그것이 어렵고 불확실하더라도.

■ 무엇이 끝없이 공부하게 만드는가

공부밖에 할 게 없다. 먹고 살 만큼의 경제활동은 해야 하니 어쩔 수 없이 하고 있고, 다른 건 영 재주가 없다. 어려운 책을 읽고 탐독하다 보면 묘한 즐거움이 있다. 가끔 책 속에서 길을 발견한다. 그 매력에 공부하고 있다. 아직 못 읽은 책도 너무 많기도 하고.

■ 우리는 어떤 자세일 때 가장 그 다운 삶을 유지한다고 생각하는가

들뢰즈는 진드기 같은 가난한 세계에 집착하며 자연사를 무관계 다발로 생성 변화시킨다. 타자를 향한 삶의 지향은 편안하고 안주하고 싶은 삶의 배치를 바꿀 때 가능하다. 손가락으로 클릭만 하면 책이 집으로 오지만 그 한 권을 사기 위해 작은 수고를 마다하지 않을 때(삶의 배치를 바꿀 때), 나의 삶은 바뀐다. 삶의 배치를 바꿔라.

■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기후위기, 생태위기의 시대에 살고 있다. 영화 '모아나'에서 모아나의 할머니 탈라(Tala)의 당부가 생각난다. 테피티(테카)에게서 빼앗은 심장을 쥐어주며 마우이를 찾아 테피티의 심장을 돌려주라고. 테피티는 심장을 뺏긴 상실감으로 인해 파괴와 분노의 화신으로 변해버렸다. 우리는 지구에서 심장을 훔친 것이다. 그 심장을 돌려주어야 한다. 들뢰즈 연구자 지바 마사야의 표현을 빌려 대답하면 "우리는 이미 천상의 조명을 잃어버렸다. 이젠 우리가 재해시의 손전등처럼 세계 곳곳에 작은 손전등을 켜야 한다. 그것밖에는 우리가 할 수 없다."

이수경 박사는?
이수경 철학박사

문화사랑 백년어 대표, 철학박사, 문학평론가, 책 '들뢰즈의 안드로메다'가 있고, 공저로 '들뢰즈와 탈주하기', '사십계단 위의 카프카', '울프의 오래뜰' 외 다수가 있다. 2025년 부산문화재단 예술비평부문 수혜를 받아 평론집 '외부성의 언어'(가제) 발간을 준비 중이다. 김해도립도서관에서 '천개의 고원'을 10주 강독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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