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미수호통상조약의 시말

기호일보 2025. 5. 19.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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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덕우 인천개항장연구소 대표
강덕우 인천개항장연구소 대표

1882년 5월 22일(음력 4월 6일)에 체결된 조미수호통상조약은 슈펠트조약이라고도 할 만큼 군인 외교관이었던 슈펠트의 공적이 지대했다. 슈펠트는 일본을 개국시킨 페리 제독과 함께 19세기 미국 해외 팽창의 선봉에서 새로운 시장을 개척했던 해군 제독이었고, 국가의 번영은 곧 해외 통상의 확대가 관건이라는 신념의 소유자였다. 슈펠트의 구상은 1878년 말 미국의 통상시장 확대를 위한 아프리카와 아시아 순항함의 지휘관으로 임명됨으로써 실천에 옮겨지게 됐다. 아시아 시장의 교두보로 주목한 국가는 조선이었다.

1880년 5월 일본을 중개자로 하는 슈펠트와 조선과의 통상 교섭이 실패하자 청국은 곧바로 슈펠트를 이홍장이 있는 천진으로 초대하는 조처를 취했고, 8월의 천진회담에서 조미조약 체결의 후원을 적극 알선하겠다고 약속했다. 연미국, 결일본, 친중국하는 조선 책략은 이러한 배경에서 탄생했지만 이해 말 복사 유포된 「조선책략」은 조선 정가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를 반대하는 신사척사운동이 일어났고, 급기야는 반정부 쿠데타 모의로까지 진전되고 있었다.

약 2년 동안의 대항해를 마친 슈펠트는 미국 귀국 후 1881년 11월 '조선특명전권공사'에 임명돼 스와타라호 편으로 다시 천진에 도착했다. 김윤식을 단장으로 하는 영선사(領選使)는 1882년 1월 중국에 도착했다. 청의 근대식 병기 제조 및 사용법을 익히자고 한 것 외에도 미국과 조약 체결을 위한 교섭 임무를 함께 부여받고 있었다. 청국은 조선 대표로 중국에 와 있던 김윤식, 어윤중과의 협상에서 조선이 중국의 '속방(속국)'임을 조약에 명문화한다는 것에 동의를 얻어냈고, 미국과의 협상을 이홍장에게 위임한다는 데 합의했다. 조약문은 조선 전권대표를 배제한 채 슈펠트와 이홍장 간 협상으로 진행됐지만, 조약문에 그간 조선 정부의 숙원이었던 관세 부과 내용도 포함하는 성과도 있었다.

청국이 만든 조미조약문 제1조는 조선이 청국의 속방(屬邦)이었다. 형식적인 종속관계를 실질화시키려는 의도였으나 이 건은 슈펠트가 조선이 독립국임을 강하게 강조함에 따라 결렬됐다. 회담은 차후 조미조약 체결 후 조선 국왕이 미국 대통령에게 보내는 별도의 공문(속방조회)에 청국의 종속관계임을 밝히기로 하는 것으로 최종 타결을 봤다. 슈펠트는 공식 조약문 외의 문건은 미국에 아무런 구속력이 없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조미조약 체결은 비밀리에 진행됐다. 그것이 정부 관원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882년 5월 초순께로, 이들 사신을 맞이하는 반접관(伴接官)을 임명하면서였다. 5월 8일 마건충과 정여창이 인천에 도착하고 5월 12일 슈펠트가 도착했다. 마건충은 13일 슈펠트와 회담을 하고 제1조 '속방' 조항을 '속방조회'(공문)로 대체한다는 것을 재확인했다. 청국은 조미조약을 체결하기 전에 그 일자를 조인 전으로 한다면 속방과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다고 판단해 조인 전인 5월 15일 체결했다. 조미조약에 중국인 관리가 조선에 파송된 이유가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조인식에 앞서 슈펠트는 조약 당일 조선이 청국의 용기(龍旗)를 사용한다면 스스로 청의 속국임을 인정하는 것이므로 국기를 제정해 조인식에 사용할 것을 촉구했다. 이에 고종은 역관 이응준에게 지시해 태극도형기를 제작하게 했다. 조미조약은 5월 22일 오전 제물포의 임시막사에서 체결됐다. 천막 전면에는 미국기와 조선의 태극기가 게양됐는데, 조인 장소에 도착한 슈펠트는 청국의 마건충과 정여창을 별실로 퇴장시키고 조선 전권대표 신헌, 김홍집과 역사적인 조미조약 조인식을 거행했다. 미국 군가인 'Yankee Doodle'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스와타라호에서 축하 예포 21발을 발사했고, 청국 군함 위원호는 15발만 발사했다.

1882년 5월 22일 체결된 조미수호조약은 서양과 맺은 최초의 조약, 조선 국기로서의 최초의 태극기 게양, 최초의 관세 부과, 최초의 서양음악 연주 등 많은 기록을 남겼다. 하지만 이면에는 조약문의 내용을 청국이 초안했던 오명도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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