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한 시대에 던진 화두…미륵 세상을 그리다

최명진 기자 2025. 5. 19.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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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순칠 개인전, 21-27일 서울 인사아트센터 G&J갤러리
오랜 세월의 흔적 품어낸 돌의 시간과 마주한 깊은 응시
13년 간 이어온 운주사 석불 관련 회화 40여 점 ‘한자리’


사진 위로부터 ‘푸른 절벽 아래 좌불’, ‘붉은佛(Red Buddha)-Dec. 3’, ‘장군불’


캔버스 위에 올려진 물감이 마치 실제 돌을 만지듯 거칠게 돋아나 있다. 수차례 덧입혀 쌓은 마티에르는 석불의 오돌토돌한 표면을 닮았고, 그 안에는 세월의 흔적과도 같은 침묵의 시간이 응축돼 있다. 10여 년 간 천착해온 ‘운주사’ 연작은 그렇게 돌의 시간과 마주한 작가의 깊은 응시에서 시작됐다.

서양화가 황순칠의 23번째 개인전 ‘운주사 천불천탑, 와불이 일어나다’가 오는 21일부터 27일까지 서울 인사아트센터 G&J갤러리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지난 13년 간 몰두해온 운주사 석불 작업을 소재로 한 작품들로, 대부분 100호가 넘는 대작 회화가 주를 이룬다. 총 40여 점이 출품될 예정이다.

황 화백은 그간 개인 작업실에만 머물러 있던 운주사 관련 작품들을 처음으로 대중에 공개한다. 애초 전시는 울산 반구대 암각화와 서예 작업을 선보이려는 자리였지만, 지난해 12월3일 발생한 이른바 ‘내란 사태’ 이후 전시 주제를 전면 수정했다.

그는 “나라가 위기일수록 예술가가 전할 수 있는 메시지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됐다”며 “새롭게 바로 서는 대한민국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뜻을 담아 이번 전시에 담아냈다”고 설명했다.

황 화백이 운주사의 석불과 처음 조우한 것은 2013년 봄이다. 40호 종이에 목탄으로 밑작업을 한 후 수채화물감으로 항아리탑을 완성해냈다.

다시 찾은 운주사 현장에서 작가는 목이 잘린 석불을 발견했다. 그 순간 그는 불현듯 광주 5·18의 상처를 떠올렸고, 이 돌부처를 화폭에 담아내며 자신의 상흔을 껴안고 스스로 위안을 받았다고 회고한다.

황 화백은 운주사 와불에 담긴 평등의 상징성에 주목하며, 불평등한 시대에 던지는 화두로서 미륵세상을 화폭에 펼쳐 보이고자 했다. 운주사 작업은 그렇게 시작돼 이후 10년 넘게 이어져 오고 있다. 특히 현장성을 중시해 제작된 운주사 그림들은 계절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풍경을 담고 있다.

낙엽이 지는 무상의 가을과 눈보라 이는 혹한의 겨울 등 계절감을 생생히 느낄 수 있는 작품들이다.

12.3 사태의 정치적 상황을 반영해 자화상 형식으로 그려낸 ‘붉은 불(佛)’, ‘검은 불(佛)’ 등 작품도 만나볼 수 있다.

정찬주 소설가는 작품 해설을 통해 “이번에 전시하는 작품들은 마치 토수(土手)가 미장하듯 나이프 기법을 대담하게 구사해 오돌토돌한 돌의 질감을 한층 강조했다”며 “미완의 인간적인 돌부처와 맺은 인연이 10여 년 이어지며 운주사 천불천탑을 그리는 작업은 그의 숙명이 됐다. 한국인의 정체성을 표현해낸 황 화백이야말로 남도에 사는 향토화가로서 세계성을 성취했다고 볼 수 있다”고 평했다.

/최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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