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포럼] 하이라이트만 보는 시대, 숏폼 콘텐츠의 범람- 장민지(경남대 미디어영상학과 학과장)

최근 콘텐츠 시장은 전례 없이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그 변화의 중심에는 ‘짧고 강렬한 콘텐츠’가 있다. 이제는 드라마도, 예능도, 심지어 뉴스조차도 짧고 빠르게 소비되는 시대다. 이 흐름 속에서 단연 눈에 띄는 형식이 바로 숏폼 드라마다.
숏폼 드라마는 보통 한 편의 길이가 1~3분 이내로 구성된 초단편 콘텐츠로, 스마트폰 세로 화면에 최적화된 형식으로 제공된다. 짧은 시간 안에 몰입과 반전을 유도하며, 감정의 핵심만을 간결하게 전달하는 데 중점을 둔다.
오늘날 시청자들은 더 이상 60분짜리 정규 드라마에 긴 시간을 투자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인상적인 장면, 감정의 폭발, 반전의 순간만을 추려서 소비하는 하이라이트 중심의 시청 습관이 보편화되고 있다. 이른바 ‘시간이 아닌 장면을 소비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에 가장 빠르게 반응한 건 OTT 플랫폼이다. 2023년 국내 최초의 숏폼 드라마 플랫폼인 ‘탑릴스’가 등장한 데 이어, 왓챠도 ‘숏차’를 론칭하며 숏폼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입했다. 티빙 역시 전용 섹션을 마련하고, 올해 안으로 자체 숏폼 드라마와 예능을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플랫폼뿐만 아니라 독립 제작사들의 실험도 활발하다. 이들은 기존 방송 문법으로는 시도하기 어려운 주제나 장르를 숏폼 드라마를 통해 자유롭게 풀어내고 있다. 숏폼의 강점은 단지 ‘짧다’는 데 있지 않다. 웹툰이나 웹소설처럼 빠른 전개와 강렬한 클리셰를 통해 시청자와 즉각적으로 연결되며, 대부분 세로 화면으로 제작되어 모바일 시청에 적합하다. 등장인물이 적어 이야기의 밀도가 높아지고, 신인 배우나 연출자의 실험 공간으로도 이용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된다. 제작 부담이 적은 만큼 새로운 이야기 구조, 새로운 얼굴, 새로운 스타일이 계속해서 등장하는 창작의 실험장이 되고 있다는 건 분명 강점이다.
이뿐만 아니라 숏폼 드라마는 국내를 넘어 글로벌 시장까지 겨냥하고 있다. 대형 게임사 크래프톤으로부터 투자를 유치한 숏폼 플랫폼 ‘비글루’는 자사 콘텐츠를 영어, 일본어, 중국어 등 총 8개 언어로 서비스하며 해외 시청자와의 접점을 넓히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정부와 기업도 이 흐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025년까지 총 700억 원 규모의 영상 콘텐츠 제작지원을 집행하겠다고 발표했으며, 네이버는 AI 기반의 자동 편집 시스템과 버추얼 프로덕션 기술을 통해 숏폼 제작의 효율을 높이고 있다. 아울러 숏폼 콘텐츠 유통 플랫폼 ‘클립’을 통해 광고 수익을 창작자와 공유하는 구조도 실험 중이다. 이는 단기 지원에 머무르지 않고, 장기적인 숏폼 생태계를 구축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그러나 분명 숏폼 드라마가 가진 한계도 있다. 서사의 소멸이 바로 그것이다. 짧은 시간 안에 임팩트를 전달해야 하다 보니 이야기 구조가 단순화될 위험이 있으며, 기-승-전-결의 전통적인 서사보다 반전과 클라이맥스를 중시하는 단선적 구조가 주를 이룰 수 있다. 이에 따라 시청자들의 서사 수용 방식에도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존재한다. 1분 이내의 영상에서 서사는 사라지고, 이미지나 영상의 순간적인 잔상들만 남는다. 이는 완결성이라는 기존 용어의 정의를 변화시킨다.
무엇보다 숏폼 드라마는 더 이상 젊은 세대의 취향에 국한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짧은 형식을 중심으로 창작과 소비, 기술과 플랫폼, 예술과 광고가 유기적으로 결합된 새로운 콘텐츠 생태계가 형성되고 있다. 누가 더 짧게, 더 강하게 감정을 건드릴 수 있는가. 이 짧은 질문이, 지금 콘텐츠 산업이 마주한 가장 긴 고민이자 도전이다. 전개의 기다림, 혹은 배경의 설명, 인물의 내면보다 결말과 하이라이트를 우선하는 방식이 자리 잡아가고 있는 이때, 우리의 일상은 어떻게 재편될까. 분명 이 변화의 끝을 그 누구도 확신하지는 못할 것이다.
장민지(경남대 미디어영상학과 학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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