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용지가 투표지가 되기까지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있었던 1995년 필자는 군복무 중이었다. 당시 집이 이사간 줄 모르고 예전 주소를 적었다가 부재자투표를 할 수 없었다. 주소도 모른다고 중대장한테 혼나고 완전군장으로 연병장 20바퀴를 도는 체벌을 받은 뒤 ‘특별휴가’를 받아 집에 와서 투표를 할 수 있었다. 힘든 여정이었지만, 첫 민선단체장을 내 손으로 선택했다는 자부심에 나름 뿌듯함을 느꼈다.
그런데 이토록 소중한 한 표 행사에 쓰이는, 투표용지와 투표지는 엄밀히 말해 용어가 구분된다. 투표용지에 유권자가 기표하는 순간 투표지가 되는 것이다. 투표는 용지를 받아 기표 후 투표함에 넣기만 하면 되지만, 투표용지가 투표지까지 귀중한 한 표가 되는 과정에는 수 없는 엄격한 절차가 따른다.
우선, 투표용지 인쇄 원고부터 이중삼중 확인을 거친다. 단 한 자라도 오류가 있으면 안되니 정당추천위원과 선관위 관계자의 거듭된 확인을 거쳐 상급위원회 승인을 받은 후에야 인쇄에 들어간다. 형광등 불빛에 비춰가며 하나 하나 문구를 확인하고 또 확인했던 기억이 새롭다.
인쇄는 삼엄한 보안 속에 이루어진다. 인쇄가 끝나고 나면 원판은 더 이상 쓸 수 없도록 물리적 조치를 한다. 이 모든 과정은 경찰 경비 하에 진행되고, 투표용지작성관리록에 세세히 기록된다.
인쇄된 투표용지는 철통 같은 보안 아래 보관된다. 비가 새거나 불이 날 위험은 없는지, 잠금 장치는 튼튼한지 철저히 살펴 만일의 사고에 대비한다. 투표일이 임박하면 투표관리관이 재차 확인·봉인 후 투표소에 인계, 투표용지는 비로소 선거일에 유권자를 만나게 된다.
투표 과정은 각 정당이 신고한 많은 참관인이 지켜본다. 투표가 끝나면 투표함을 참관인 참여 하에 봉쇄·봉인한 후 경찰과 참관인, 투표관리관이 함께 개표소로 이송한다. 개표소에 가서도 참관인이 이상 유무를 또다시 확인한 후 투표함을 열고 개표를 시작한다.
한 장의 투표지가 유효표로 되기 위해서는 먼저 투표지분류기로 구분하고, 이것을 다시 수작업으로 한번 더 보고, 이어 심사계수기로 세면서 한번 더 확인하는 절차를 거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정당추천위원을 비롯한 선관위원들이 또다시 검열을 한데 이어 최종적으로 선관위원장이 전반적으로 확인한 후 공표하면 진정한 한 표로서 투표지가 완성된다.
우리나라의 투·개표는 전국 32만명 이상의 공무원등이 참여하는 거대한 시스템이다. 선거 때마다 수고를 마다 않고 선거사무에 종사하는 공무원 및 공공기관 직원들께 이 자리를 빌어 감사드린다. 철통 같은 경비를 담당하는 경찰에도 고마움을 전한다.
천금 같은 한 표 한 표가 오롯이 선거결과로 나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관리하겠다고 국민께 약속드린다. 국민들도 선거공보를 꼭 살펴보고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해 주기 바란다. 다양한 개성의 댄서들이 모여 하나의 멋진 공연이 되듯이 한 표 한 표가 모여 대한민국의 미래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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