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오랜 연인 관계였던 라 스칼라와 결혼한 기분… 책임감 막중” 정명훈 라 스칼라 극장 차기 음악감독
30여 년간 라 스칼라와 깊은 인연 강조
247년 극장 역사상 첫 아시아인 감독
부산오페라하우스 개관에도 긍정 작용
이탈리아와 폭넓은 예술 교류 등 기대
“36년간 사랑해 오던 ‘라 스칼라’와 결혼하는 기분이 듭니다.”
클래식부산 정명훈 초대 예술감독은 이탈리아 밀라노 라 스칼라 오페라극장 차기 음악감독에 선임된 소감을 사랑과 결혼에 빗대 얘기했다. 그는 라 스칼라 극장의 현 음악감독인 리카르도 샤이의 임기가 끝나는 내년 말부터 음악감독을 맡게 된다.
정명훈은 19일 부산진구 부산시민공원 내 부산콘서트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라 스칼라 음악감독 선임에 대한 소감과 포부 등을 밝혔다. 그는 이 자리에서 “36년 전 처음 객원 지휘자로 라 스칼라 오케스트라와 공연을 할 때부터 호흡이 너무 잘 맞았다”며 “친한 친구에서 가족, 혹은 부부 관계로까지 발전하게 돼 책임감도 크게 느낀다”고 말했다.
그의 이력을 더듬어 보면 라 스칼라의 차기 선택이 결코 우연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정명훈은 1980년대부터 파리 바스티유 오페라 음악감독을 비롯해 유럽 주요 오페라극장과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 상임지휘자를 역임하며 실력과 명성을 쌓아왔다. 라 스칼라와도 1989년 이후 30여 년간 84회의 오페라와 141회의 콘서트를 이끌며, 극장 최초의 명예지휘자로 임명될 만큼 두터운 음악적 교류를 해왔다.
그의 라 스칼라 음악감독 선임은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큰 화제가 됐다. 그도 그럴 것이 1778년 밀라노에서 문을 연 라 스칼라는 오페라의 본고장인 이탈리아에서도 종갓집으로 손꼽힐 만큼 최고 공연장으로 인정받는 극장이다. 이곳에서 베르디의 ‘나부코’, 푸치니의 ‘나비부인’과 ‘투란도트’ 같은 걸작들이 초연되기도 했다. 라 스칼라에서 외국인이 음악감독을 맡은 경우는 247년 역사 동안 아르헨티나 출신의 다니엘 바렌보임 단 한 명뿐이다. 아시아인으로는 그가 최초다.
그는 라 스칼라 음악감독 선임이 2년 뒤 첫발을 내딛는 부산오페라하우스의 안정적 출발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2027년 개관할 부산오페라하우스 예술감독으로서 자신의 역할에 대해 “부산에 좋은 씨를 뿌리는 것”이라고 정의한 뒤 “라 스칼라의 앞선 오페라 인프라를 자양분으로 부산에 씨를 뿌리고 안정적으로 자랄 수 있도록 방향을 잡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밝혔다.
정 감독은 “오페라 작곡가 중 베르디를 제일 좋아하고 사랑한다”며 내년 12월 7일로 예정된 라 스칼라 취임 연주회를 베르디 작품으로 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어 2027년 9월 부산오페라하우스 개관 공연 역시 베르디의 ‘오텔로’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클래식부산 관계자는 “라 스칼라와 부산오페라하우스의 개관 작품 기획이 동시에 진행된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작품과 지휘자, 연출, 성악가까지 여러 요소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오페라 무대를 기획하고 준비하는 데에는 통상 1년 반에서 2년 정도 소요된다”며 “247년 역사의 라 스칼라 극장과 부산의 접점이 생기는 건 단순히 공연 하나를 넘어 양국 간 예술가, 작품, 오케스트라, 관객까지 폭넓은 교류를 기대할 수 있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덧붙였다.
한편, 정명훈이 지휘하는 라 스칼라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오는 9월 18일 부산콘서트홀에서 공연을 열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