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 스칼라, 처음부터 사랑한 친구같아"
1989년 지휘자로 첫만남부터
나를 굉장히 잘 이해한 느낌
내년 12월 음악감독 첫 무대
'오텔로' 등 베르디 오페라 집중
부산오페라하우스 감독 겸임
좋은 씨앗 심어 시너지 낼 것

"서로 가장 사랑하고 친하게 지내던 친구와 이제 가족이 됐습니다. 사랑하는 이유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죠."
일본 연주 일정을 마치고 막 귀국했는데도, 정명훈(72)의 얼굴에 피곤한 기색이라곤 없었다. 오히려 웃음꽃이 피었다. 세계 최고의 오페라 극장 '라 스칼라'의 음악감독으로 공식 위촉됐다는 발표가 나온 뒤 일주일 만인 19일 부산콘서트홀에서 취재진과 대면한 그는 "라 스칼라의 제안만큼은 거절할 수 없었다"고 선임 소회를 밝혔다.
이탈리아 밀라노의 라 스칼라 극장은 1778년 개관한 이래 베르디의 '나부코', 푸치니의 '나비부인' '투란도트' 등이 초연된 유서 깊은 오페라의 산실이다. 당대 최고의 음악가만이 음악감독직에 올랐는데, 동양인 음악감독은 247년 역사에서 정명훈이 처음이다. 정명훈은 이 극장과 1989년 지휘로 첫 인연을 맺은 이래 총 84회의 오페라, 141회의 콘서트를 함께했으며, 2023년 최초의 명예지휘자로도 위촉됐다.
이날 정명훈은 '이탈리아 사랑 43년사(史)'로 말문을 열었다. 소문난 요리 애호가답게, 음악보다 음식을 통해 이탈리아에 먼저 빠졌단다. 지휘 공부를 위해 1975년 이탈리아 소도시 시에나에 갔다가 파스타에 빠져 "매일 먹어야 했을 정도"였다는 거다. 그는 "주로 미국에서 공연할 때라 유럽에 연주가 없었는데도 1982년 1년 동안 로마에서 살았다. 파스타 요리를 배우면서 이탈리아를 사랑하기 시작했다"며 "나라(영토) 모양, 사람들의 감정 표현, 노래를 좋아하는 성향 등 이탈리아와 한국은 비슷한 점도 많았다"고 했다.
유럽 오페라 무대를 본격 누비게 되면서는 거주지를 파리나 로마로 택해 계속해서 이탈리아에 뿌리를 내렸다. 라 스칼라에서의 첫 연주가 1989년이었으니 올해로 36년 인연이다. 정명훈은 "라 스칼라의 음악가들과는 처음부터 잘 맞았다. 이들이 나를 굉장히 잘 이해해 준다고 느꼈다"고 회고했다. "전 세계를 돌며 연주해 보지 않은 악단이 없을 정도인데, 이젠 서로 통하고 이해할 수 있는 사이가 아니면 하기가 싫어졌어요. 사실 책임을 맡기에도 너무 늦은 나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라 스칼라만큼은 거절할 수 없었죠."
라 스칼라 극장을 이끄는 포르투나토 오르톰비나 총감독과의 상호 무한 신뢰도 선임 배경으로 꼽았다. 특히 이탈리아 작곡가 베르디를 가장 좋아한다는 점이 두 사람의 공통점이다. 오르톰비나는 이탈리아 만토바 태생으로, 앞서 2007~2024년 베니스 라 페니체 극장에서 예술감독과 총감독을 맡으며 정명훈과 인연을 이어 왔다. 정명훈은 "라 스칼라에서도 둘이 함께 좋은 베르디 프로젝트를 만들겠다"고 했다. 내년 12월 7일 라 스칼라 시즌 개막 공연 때 베르디 오페라 '오텔로'를 선보이겠다는 구상도 귀띔했다.
그는 "베르디를 사랑하는 만큼 베르디를 더 잘 연주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오텔로'는 이미 30년 전 파리 오페라,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와 녹음한 바 있어요. 이제는 그때보다 훨씬 더 잘해야죠. 일평생 해온 게 이건데도 더 공부합니다. 이만큼(조금)이라도 더 잘하고, 더 깊이 음악을 파고들어 가는 게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국내에선 다음달 22일 개관 예정인 부산콘서트홀, 2027년 개관 예정인 부산오페라하우스의 예술감독도 겸한다. 라 스칼라 감독직과 임기가 겹치며 두 극장 사이의 연계·협력에도 관심이 쏠린다. 정명훈은 "부산오페라하우스의 오프닝을 라 스칼라와 하겠다"며 "(부산에) 제일 높은 수준의 사례를 보여줄 수 있으니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아시아에서 특히 부산이 이탈리아 오페라의 대표가 되길 바란다"고도 덧붙였다. "내가 부산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관객 저변을 키우고 좋은 씨앗을 심어놓는 것이죠. 그 결과를 살아서 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오래 걸릴 일이지만, 방향성을 잘 잡아주는 것이 지휘자의 가장 큰 책임입니다."
[부산 정주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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