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업화로 사라져버린 '용잠초', 기억의 퍼즐 맞춘다
23회 졸업생 강영숙씨 팔 걷어
시험지·임명장·성적표 등 기증
이재만 전 교장 자서전 기증 이어져
졸업사진 등 다양한 자료 추가 확보

울산 공업화로 인해 사라져버린 용잠초등학교의 기록물 수집이 본격화한다.
19일 울산교육디지털박물관에 따르면 용잠초등학교는 1939년 이종만 씨의 기부로 울산 남구 용잠동 울산공업단지에 설립됐다. 용잠초는 울산공업센터 조성이 한창이던 울산에서 공해문제로 가장 먼저 문을 닫아야 했던 학교였다. 1967년 용잠초 앞에 울산화력발전소가 가동되면서 10년 동안 공해에 시달린 끝에 주민들이 집단 이주했고, 1977년에 34회 졸업생을 마지막으로 배출하고 폐교됐다.


자료 수집은 문수실버복지관 기자단으로 활동하고 있는 강영숙 씨의 영향이 컸다.
강영숙 씨는 용잠초 제23회 졸업생으로 지난해 12월 디지털박물관 개관 소식에 취재차 방문했다가 모교인 '용잠초' 기억을 떠올렸다.
강 씨는 할머니가 보관하고 있던 강 씨의 초등학교 학교 시험지와 임명장, 성적표 등을 기증하고, 옛 동문을 수소문해 자료 수집을 하며 적극적으로 활동에 동참했다.

자서전 '춘계만보'에는 이재만 전 용잠초 교장이 용잠초에 첫 부임하던 당시 상황이 생생하게 담겨있다. 학교 건물의 모습에 대한 상세한 묘사부터 해방 이후 동방요배를 위해 동쪽에 설치돼 있던 국기게양대를 북쪽으로 이전했던 일 등 학교의 중요한 순간들이 상세히 기록돼 있다.
특히, 이 책에는 용잠초 사택에서의 이 교장 가족사도 함께 담겼다. 1961년 이 사택에서 태어난 이재만 전 교장의 둘째 딸은 훗날 만 49세의 나이로 최연소 헌법재판소 재판관을 지낸 이정미 판사가 되었다. 이정미 판사는 아버지가 남긴 자서전 '춘계만보'에서 공직자로서의 바른 자세와 소명 의식을 깊이 배우게 됐다고 한다.
이어 디지털박물관은 지역사 연구자인 박채은 선생을 찾아가 당시 용잠초 학교 졸업사진, 1972년 학교 현황, 동문회 자료, 학교 연혁 등 다양한 자료를 추가로 확보했다.
용잠초의 경우처럼 '폐교 기록 수집 사업'은 현존하는 학교와 달리 자료 확보가 쉽지 않다. 실제 학교에는 학적부와 일부 행사 사진만 남아 있는 경우가 많아, 졸업사진과 같은 자료들은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소중한 기증과 참여로 기록의 빈틈을 채워가고 있다.
이에 울산교육청은 울산교육디지털박물관을 국내 최초로 '시민 참여형 교육박물관'으로 운영하고 있다. 자료 발굴부터 정리, 전산화 관리, 그리고 자료 개발 전 과정에 걸쳐 지역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도록 하고 있다. 이는 국내 교육박물관으로서는 처음 도입되는 시스템으로, 시민 스스로 지역의 역사 자료를 직접 다룬다는 점에서 매우 큰 의미를 갖는다.
지역 연구가와 전문가를 비롯해 학교 교사, 일반 시민들까지 다양한 분야와 연령대의 시민 24명을 공개 모집해 지원단으로 위촉했다. 이들은 역사 자료를 함께 확인하고 발굴 사업을 지원하고 있으며, 울산 교육의 역사를 더욱 풍부하게 복원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송명숙 관장은 "기록되지 않는 것은 기억되지 않는다"라며 "울산교육의 소중한 역사를 발굴하고 보존하는 일에 시민 여러분의 적극적인 참여와 관심을 부탁드린다"라고 말했다.
강은정 기자 kej@ius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