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밖 청소년의 꿈’…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는다

한겨레 2025. 5. 19.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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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ㅣ 학교 밖의 빛과 그림자
게티이미지뱅크

송혜교 | 홈스쿨링생활백서 대표

10년 전쯤 그를 처음 만났다. 똑같은 학교 밖 청소년에다 나이도 비슷했지만, 삶의 모양새는 꽤 달랐다. 당시의 나는 마땅히 하고 싶은 직업도, 배우고 싶은 전공도 없어 아르바이트를 전전하고 있었다. 10대라면 응당 그래야 한다는 듯이 시간을 펑펑 써댔다.

반면 그에게는 아주 선명한 꿈이 있었다. 검정고시를 통해 고등학교 졸업 학력을 취득하고, 곧바로 경찰 시험에 응시해 최연소 경찰이 되겠다는 것. 그 이야기를 할 때 두 눈이 반짝거리던 것을 기억한다.

우리는 학교 밖 청소년 활동가로서 함께 일했다. 기획안을 수십 개씩 써내고 행사를 뚝딱 열었다. 그 무렵 그는 청소년들을 만나는 일에 푹 빠져서, 막연한 꿈이었던 ‘정의롭고 멋진 경찰’ 대신 ‘사회에 진정한 도움을 주는 경찰’이 되어야겠다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청소년지도사라는 새로운 꿈이 그의 마음속에 피어났다. 경찰 시험은 마음속에서 잠시 물러났다.

하루 종일 책상 앞에 머물기를 1년, 그는 보란 듯이 청소년 관련학과에 합격했다. 남들보다 이른 나이에 입시를 치르고, 성년이 되기도 전에 혈혈단신 상경한 그를 보면 박수가 절로 나왔다. 청소년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에 관해 이야기할 때 그의 눈은 또다시 빛났다. 청소년 분야가 이 사람의 천직이었구나, 싶었다.

그러나 그의 항해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졸업을 앞둔 해, 그는 책 만드는 일에 관심이 생겼다며 출판사 관련 대외 활동과 인턴십을 수료했다. 졸업하자마자 꽤 큰 출판사에 일자리를 구했다.

번듯한 청소년지도사 자격증을 두고 전혀 다른 업계에 뛰어들다니, 의외의 행보였다. 그는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자신이 편집자가 되어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며 웃었다. 아동 도서 편집자로 일하게 되어서, 청소년을 전공하며 배운 것들이 종종 업무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 편집자로서 수십 권의 책을 펼쳐낸 어느 날, 그는 돌연 회사를 그만두었다. 경찰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책상 앞에 앉아 책을 만들던 그가 팔을 연신 굽혔다가 펴고 모래주머니를 달고 뜀박질한다는 근황을 전해왔다. 이쯤 되면 모두가 다음 문장을 예상할 것이다. 두 번의 계절을 보내고 그는 정말로 경찰이 되었다.

그를 보고 있자면 ‘꿈’이라는 게 꼭 명사가 아니라 동사 같다. 전공을 잘못 택한 것 같다거나,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내쉬는 청소년을 만날 때면 그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지금 택한 전공이, 지금 다니는 회사가 인생의 마지막 계단이 아니라고. 다른 무언가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제자리를 찾는다는 말을 들으면,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는 모양새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제자리’란 본래 있던 자리나 위치의 변화가 없는 자리를 넘어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를 뜻한다.

마땅히 있어야 할 곳을 찾아내는 일. 원하는 곳을 향해 삶의 방향키를 과감하게 돌리고, 운전대를 단단히 쥐는 일. 고민하고 부딪히고 넘어지는 고된 여정 끝에 우리는 있어야 할 자리를 찾아간다. 결국에는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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