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 불 꺼지는 '일상의 등대'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소설 ‘불편한 편의점’은 서울역 노숙인(독고)이 편의점 사장인 염 여사의 지갑을 찾아준 게 계기가 돼 야간 아르바이트로 채용되며 벌어지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염 여사는 점차 사내의 성실과 진심을 알게 되고 자신의 편견이 잘못됐다는 걸 깨닫는다. 손님들도 그의 사려 깊은 관심과 배려에 하나둘 마음의 문을 연다. 원플러스원만 사고 참참참(참치삼각김밥, 참깨라면, 참이슬) 세트를 즐기는 소시민 모습도 공감을 불렀다. 익명성이 보장돼야 할 편의점에서 서로 위로하는 인간적 관계를 맺는 건 자칫 불편할 수도 있지만 사람 사는 세상의 잔잔한 감동을 줬다. 이 책이 베스트셀러 이후에도 웹툰, 연극, 드라마 등으로 제작되며 사랑받는 이유다.
□ 편의점이 우리나라에 처음 등장한 건 1989년 5월이다. 이후 폭발적 성장세가 이어졌다. 2023년엔 점포 수가 5만4,880개까지 늘었다. 그러나 영원할 것 같았던 전성시대에도 빨간불이 들어왔다. 지난해 말 기준 점포 수가 전년보다 68개 감소, 처음으로 역성장을 기록했다. 올 1분기엔 전체 편의점 매출도 감소세로 돌아섰다. 이 역시 처음이다. 양대 강자인 씨유(CU)와 GS25의 1분기 영업이익은 30% 이상 줄었다.
□ 편의점 역성장은 치열한 경쟁 속에 서로 몸집만 불리다 수익성이 악화한 결과다. 실제로 세븐일레븐과 이마트24는 지난해 구조조정을 통해 부실 점포를 정리했다. 매출은 제자리인데 인건비 등 비용이 커진 영향도 적잖다. 아르바이트 직원 구하기가 힘들다는 하소연도 들린다. 경기 방어 업종으로 불황에도 끄떡없을 것 같았던 편의점의 위기는 내수 경기가 얼마나 안 좋은지 잘 보여준다.
□ ‘불편한 편의점’에서도 장사가 안되자 염 여사가 폐업을 고민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나 염 여사는 문을 닫으면 그나마 이곳에 의지해 온 이들의 삶이 무너질 것을 걱정해 가게를 계속 꾸려간다. 물론 염 여사 스스로 더 큰 도움을 받은 점도 상기한다. 사실 우리가 누리는 모든 편의는 누군가의 불편과 희생으로 가능하다. 이를 잊어선 곤란하다. '일상의 등대' 같은 존재가 된 편의점이 따뜻한 동네 사랑방으로 오래 남았으면 좋겠다.
박일근 수석논설위원 ik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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