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영='헤다 가블러', 위기 속에도 '고전의 꽃'은 핀다 [TD현장 종합]

황서연 기자 2025. 5. 19.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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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헤다 가블러

[티브이데일리 황서연 기자] 배우 이혜영의 '헤다 가블러'가 13년 만에 돌아왔다. 예상치 못한 난관을 뚫고 개막 연기 끝에 오른 소중한 무대, 이혜영은 자신만이 그려낼 수 있는 헤다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19일 오후 연극 '헤다 가블러'(연출 박정희) 기자간담회가 서울 중구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에서 열렸다. 현장에는 배우 이혜영, 박정희 연출이 참석해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헤다 가블러'는 근대 연극의 아버지 헨리크 입센이 1890년 발간한 희곡이다. 남편의 성인 '테스만'을 거부하고 아버지의 성이자 자신의 성인 '가블러'를 붙인 채 살아가는 여주인공 헤다의 이야기로 17세기 남성 중심적 사회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이 극은 2012년 국립극단에서 초연할 당시 전석 매진을 기록한 바 있는 입지전적인 작품이었다. 당시 헤다를 연기헸던 이혜영이 다시 한 번 무대에 서고, 취임 1주년을 맞은 박정희 국립극단 단장 겸 예술감독이 연출을 맡아 호흡을 맞췄다. 이혜영 외에도 고수희 송인성 홍선우 김은우 박은호가 무대에 선다.

◆ "요즘 세대에게 보여주고픈 고전", '헤다 가블러'

이혜영은 13년 만에 '헤다 가블러'와 만난 이유를 "초연에 부족했던 지점을 완성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모든 것을 버리고 해체하고 새롭게 만들었다"라며 개막 소회를 전했다. 박정희 연출가는 "연출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배우들은 많지 않다. 하지만 이혜영이 바로 그런 배우다. 대사를 삭제하자는 과감한 제안을 해도 그 이상의 것을 연기로 풀어내 준다"라며 "독보적인 배우이자 '넘사벽'이다. 지적으로 성숙했고, 연출이나 창작진의 상상을 뛰어넘는 배우라는 것을 이번에 깨달았다"라며 그를 극찬했다.

박 연출은 이런 이혜영이라는 비장의 무기를 들고 '헤다 가블러'를 새롭게 재창조 했다고 밝혔다. 훨씬 모던한 세트와 의상으로 접근성을 높였고, 사이키델릭한 조명으로 관객들의 신경을 조금은 건드리는 실험적인 시도를 했다. 대도구를 움직이기 보다는 인물들의 밀도 있는 관계를 펼쳐 내는데 집중했고, 이 관계가 함축적이고 아름답게 그려지는가에 초점을 맞췄다고 기획 의도를 설명했다.

연극 헤다 가블러


또한 박 연출은 "'헤다 가블러'는 알게 모르게 계급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하고 있다. 가난한 부르주아, 귀족, 전문직인 검사, 하녀라는 배역이 시사하는 바도 크다"라며 "'헤다 가블러'라는 인물을 통해, 이 작품이 관객들에게 거울이 되기를 바란다. 관객들의 자신의 어떤 내면은 성찰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라고 밝혔다.

이혜영은 "요즘은 관객들 수준이 나보다 더 높다. 입센에 대해 정말 잘 알고, 많은 것을 찾아보고 그저 우리가 어떻게 극을 만들었나 감상을 하러 오시는 거다"라며 "그래서 이번 프러덕션은 창조인끼리 모여서 우리끼리 영감을 주고 받으며 만들었다. 소위 '요즘 친구들'에게 고전, 클래식이 뭔지 알려주고 싶었다. 그런데 막 드레스 입고 나와서 멀어 보이게 연기하면 재미 없지 않느냐. 새로운 방식으로 클래식하게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라며 이번 '헤다 가블러'의 관전 포인트를 짚었다.

◆ "헤다가 곧 이혜영, 비교는 불가능"

이혜영은 13년 전 헤다 가블러를 통해 평단의 호평을 받았고, 제5회 대한민국연극대상 여자 연기상, 제49회 동아연극상 여자 연기상을 수상하며 연극계 거목으로 우뚝 섰다. 그에게도 '헤다 가블러'는 남다른 의미인 작품이라고.

이혜영은 초연 당시를 회상하며 "처음으로 나를 오디션에서 뽑아주셨던 김의선 극작가님의 부름으로 '헤다 가블러'를 만났다. 이렇게 세련되면서도 아무 사건 없이 충격적인 작품이 왜 무대에 안 올랐나 싶었다. '그동안 왜 안 했을까요?' 물었더니 '이혜영이라는 배우가 없어서'라고 답해주셨다"라고 말했다. 그는 "헤다는 유니크하고, 내가 있어서 공연할 수 있다는 큰 착각을 하고 무대에 올랐다. 착각 속에 초연을 치렀고, 지금도 그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박 선생님이 다시 공연하자고 하시니 부족한 것 같더라"라며 "완성을 위해 재도전했다. 착각을 깨는 요소는 적어도 극이 끝나기 전까지는 전혀 만나려 하지 않느나"라고 말했다.

이혜영은 "'헤다 가블러'와 이혜영을 동일시하지는 않는다"라며 "연극이 좋은 것은 일회성 때문이다. 결국 연극의 완성은 관객들 아니냐. 관객들이 오면 우리는 지겹게 연습햤지만 어제와는 다른, 늘 새로운 관객과 함께 만드는 극을 올리는 거다. 관객들도 우리와 더불어 창조해 단 한 번의 완성을 하는거다. 그 순수함과 노련함이 같이 있어야 하기에 나는 무대를 좋아한다"라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같은 시기 LG아트센터가 개관 25주년을 맞아 '헤다 가블러'(연출 전인철)을 올리게 됐다. 당초 개막일이 단 하루 차이였을 정도로 같은 시기에 공연을 펼쳐 세간의 이목이 집중된 상황. 이혜영은 LG아트센터의 '헤다 가블러', 그리고 주연을 맡은 이영애와의 차이점을 묻는 질문에 "배우가 다르고 프러덕션 전체가 다르기 때문에 비교는 불가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어 "물론 카메라에 담기는 제 모습은 있는 그대로 일거다. 하지만 무대 위에서 '헤다 가블러'라는 공연을 관객들과 함께 만들어나갈 때 내 나이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냥 여기까지(만 말하겠다)"라고 말하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연극 헤다 가블러


◆ 개막 연기, 중단 위기…눈물 딛고 꽃핀 이혜영의 '헤다 가블러'

하지만 다시 만난 '헤다 가블러'를 향한 이혜영의 여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영화 '파과'의 개봉 일정과 겹쳐 체력적으로 어려움이 많았다. '링거 투혼'을 펼치며 힘겹게 준비를 펼쳤지만, 브라크 역의 배우 윤상화가 개막을 단 하루 앞두고 응급수술을 받는 일이 생겨 공연이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 다행히 국립극단 측에서 이틀 만에 홍선우 배우의 합류를 결정, 급박한 연습 끝에 지난 16일 막이 올랐지만, 이혜영은 지난 일주일을 회상하며 눈물을 보였다.

이혜영은 윤상화에 대해 "너무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특별하게 아름다운 배우였다"라며 "소식을 듣고 우리는 전의를 상실한 패잔병들처럼 있었다. 고통과 죄의식이 동시에 들어 정말 힘들었고, 이렇게 공연을 하고 있다는 것이 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그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들었음에도 새로운 배우를 찾아야 한다는 현실 속에서 힘들었다"라고 털어놨다. 동료에 대해 이야기하던 중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이혜영은 "극장을 찾아주는 관객들에게 어쨌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약속들이 있었다. 쉽지 않은 일이었고 극에도 많은 변화가 있게 됐다"라고 말했다. 이혜영은 "드라마라면 급하게 대본을 한 번 외워서 연기를 해내면 된다. 하지만 연극은 뒤로 갈수록 어렵다"라며 "무대를 거듭할수록 연습했던 것들이 나온다. 홍선우도 정말 많이 고생하고 있다. 매일 일찍 나와서 연습하고 있고 폐막까지 고생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직업 배우인이 아니라 창조인이라, 서로 영감을 주고 영향을 받고 있다"라고 말하며 관객들의 기대를 당부했다.

자신 또한 무대 위에 굳건히 서있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이어갈 것이라고도 밝혔다. 이혜영은 "다들 나보다 한참 나이가 아래인 배우들인데, 내가 늙어서 그들의 연기가 안 되면 어떡하나 싶었다. 연습에서부터 나는 공연이라고 생각하고 임했다. 그들이 내가 헤다라고 믿게 하기 위해서, 항상 긴장하고 있었고 동료들에게 헤다로서 신뢰를 주려고 노력했다"라고 밝혔다. 박 연출은 이혜영의 이런 각고의 노력, 후배들을 끌어 안는 부드러움 덕에 프러덕션이 완성됐다며 관람을 당부했다.

'헤다 가블러'는 6월 1일까지 명동예술극단에서 공연한다.

[티브이데일리 황서연 기자 news@tvdaily.co.kr / 사진=국립극단]

이혜영 | 헤다 가블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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