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의’ 다섯 글자 빠진 미완의 헌법 전문…이번엔 ‘5·18헌법’ 실현될까
지난 겨울 내란사태 이후 광장민주주의 거쳐 5·18민주화운동 재조명
국민인식조사 결과, 응답자 67.4%…5·18정신 헌법전문 수록 ‘찬성’
(시사저널=정성환 호남본부 기자)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와 (5·18의) 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개정한다.'
헌법 전문은 헌법의 서문(序文)이다. 헌법 전문은 341개의 글자와 93개의 단어로 이뤄진 하나의 문장이다. 헌법 조문 앞에 있는 전문은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기본 정신을 담고 있다. 특히 헌법의 이념적 기초이자 헌법을 총체적으로 지배하는 최상위 규범을 함축하는 것은 물론 국가 창설이나 국가의 변화와 발전에 영향을 미친 역사적 사건들을 언급해 공동체 정신을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현행 헌법 전문은 3·1운동에서 시작해 4·19혁명에서 끊긴 상황이다. 광주시민들이 애타게 40여년 동안 '5·18헌법'을 요구했지만 '5·18의' 다섯 글자가 빠져 '미완'에 그친 셈이다.

"물들어올 때 노 저어라" 여건 '성숙'…정치권, 개헌 합의가 관건
5·18민주화운동은 국가권력의 폭력적 지배에 맞서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수호하고, 헌정질서를 회복・유지하기 위한 정당한 행위로서 '민주주의'와 '저항'의 헌법적 가치를 지니고, 근대시민혁명을 경험하지 못한 우리 헌정사에서 이른바 '주권혁명'이라는 헌정사적 의미를 지닌다. 또 5・18항쟁은 한국 민주화운동의 원동력이라 할 수 있다. 5·18항쟁이 있었기에 1987년 6월 항쟁이 유혈사태를 수반하지 않은 민주화 이행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는 평가다.
이런 중요성 때문에 5·18단체와 학계를 중심으로 헌법 전문 수록을 줄기차게 요구해왔다. 하지만 5·18민주화운동이 일어난 지 45년이 지난 현재, 5·18정신 헌법 전문 수록에 대한 논의는 40여 년째 겉돌고 있다. 5·18광주민주화운동 정신(이하 5·18정신) 을 헌법 전문에 담자는 논의는 1987년부터 이어졌지만 번번이 좌절됐다. 권력구조 개편 같은 민감한 사안 때문에 여야 합의가 번번이 무산됐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겨울, 내란 사태를 진압한 광장 민주주의를 거치면서 5·18정신을 헌법 전문에 수록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5·18정신이 재조명되면서다. 80년 5월 총칼을 앞세운 전두환 신군부가 헌법을 짓밟고 국민을 겁박할 때 분연히 떨쳐 일어섰던 광주 시민의 저항과 희생이 민주주의를 지켰듯이 45년을 면면히 흘러 내려온 오월 정신이 지난해 12·3 비상계엄과 내란 준동을 막아 냈다는 것이다.
5·18기념재단이 최근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국민인식조사(95% 신뢰수준 ±3.1%p)에 따르면 응답자의 67.4%가 5·18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에 찬성했다. 찬성 비율이 높은 이유는 12·3 비상계엄을 계기로 5·18민주화운동의 가치가 재조명된 까닭으로 풀이된다.
또 5·18을 소재로 작품 활동을 펼친 한 강 작가가 지난해 노벨문학상을 받으면서 5·18에 대한 관심 또한 부쩍 높아졌다. 6·3대선을 통한 새정부가 수립되는 지금이야말로 개헌에 적기라는 사회적 공감대도 형성됐다. '물 들어올 때 노 젓자'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올만큼 그 어느 때보다 여건이 성숙했다는 얘기다.
광주시민들 또한 반복되는 5·18 폄훼·왜곡의 뿌리를 뽑고, '12·3 비상계엄 사태'와 같은 헌정 질서 파괴행위가 반복되지 않기 위해 5·18 정신을 대한민국 정체성으로 못 박아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5·18정신이 헌법 전문에 명문화돼야 5·18이 대한민국 역사 속에 깊이 뿌리 내리고 국가와 국민의 정신에 미치는 긍정적 기준으로 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헌법 전문에 5·18정신을 넣는 것은 광주의 오월 정신이 법률 해석의 새로운 기준이 된다는 걸 의미한다.

대선 후보들, 일제히 한 목소리…실현은 '글쎄'
이에 대해 정치권은 온도 차가 있지만 외형상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5·18민주화운동 기념일을 맞아 주요 대선 후보들은 '5·18정신 헌법 전문 수록'에 찬성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18일 페이스북에서 개헌을 제안하며 "민주당과 국민의힘 등 제 정당은 개헌의 일부 과제에 합의했다"며 "5·18 광주 민주화운동의 정신을 헌법에 수록하는 것과 계엄의 요건을 강화하는 데 사회적 합의를 이룬 것"이라고 썼다.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전날 광주 서구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광주선대위 현장회의에서 "1980년 5월, 저도 상당한 희생자 중의 한 사람"이라고 말했고, 함께 발표한 공약에도 "5·18정신의 헌법전문 수록을 통한 5·18민주화운동의 헌법적 위상을 정립하겠다"는 내용이 담았다. 같은 자리에서 김용태 당 비상대책위원장도 "국민의힘은 5·18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선 후보도 그동안 찬성 입장을 밝혔고, 조국혁신당도 찬성이다. 권영국 민주노동당 대선 후보는 이날 페이스북에서 "오월 정신을 헌법에 새겨 넣어야 한다"며 "그 일을 반드시 해 내겠다"고 적었다. 우원식 국회의장도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를 찾아 "'오월 정신'을 헌법 전문에 수록해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굳건히 하겠다"고 밝혔다.
강기정 시장·김영록 지사 "5·18정신 헌법 수록해야"
강기정 광주시장과 김영록 전남도지사도 5·18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 의지를 한목소리로 강조했다. 강 시장은 17일 "투표로 민주주의의 승리를 확정 짓고, 새로운 민주정부에서는 5·18정신 헌법전문 수록을 반드시 완성시켜야 한다"고 밝혔다. 김영록 지사도 '오월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에 대한 강한 의지를 표명했다. 김 지사는 18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빛의 혁명을 완수해 5·18 정신 헌법 전문 수록을 이뤄내자"며 "어느덧 반세기가 흘렀지만, 5·18 정신과 오월 영령들은 45년간 변함없이 우리를 지켜주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강 시장과 김 지사는 곧장 이주호 대통령 권한대행의 5·18민주화운동 기념사에 대해 실망감을 드러냈다. 강 시장은 18일 기념식을 마친 뒤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우리의 기대는 오늘도 여지없이 빗나갔다"고 비판했다. 강 시장은 "이 권한대행의 기념사는 아쉽다. 계엄에 대한 사과도, 재발 방지 약속도, 5·18 정신을 헌법전문에 담겠다는 다짐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김 지사도 이날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통해 "오늘 기념식장에서 이주호 대행은 정부 대표로 기념사를 하면서 5·18 정신의 헌법전문 수록에 대해 일말의 관심도, 언급도 없어서 유감"이라고 지적했다.

개헌 '옥신각신'하다 또 물건너 가나
하지만 오월 정신이 헌법 전문에 수록될지 여부는 여전히 미지수다. 민주당과 국민의힘 등 제 정당은 개헌의 일부 과제에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5·18정신을 헌법에 수록하는 것과 계엄의 요건을 강화하는 데 사회적 합의를 이룬 것이다. 하지만 정작 권력구조 개편 등 개헌을 둘러싼 입장 차이로 5·18정신 헌법 전문 수록이 또 다시 물 건너 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5·18정신 헌법 전문 명문화에 찬성하는 입장도 '5·18광주민주화운동을 헌법전문에 수록해야 한다'는 입장과 '모든 우리 민주주의 과정을 열거하는 것이 옳으냐'는 주장으로 나뉘고 있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국가적 과제라는 인식에 뜻을 같이 한다면 이제는 정치권이 행동으로 보여줘야 할 때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박강배 5·18기념재단 상임이사는 "5·18정신은 국민이 국가 폭력에 맞서 지켜 낸 민주주의로서 대한민국의 뿌리이자 우리 모두 함께 지켜가야 할 소중한 유산이다"며 "이제는 국가가 나서서 5·18 정신을 분명히 계승하고, 민주주의 가치를 헌법에 새겨 사회적 통합과 화해의 길로 나가야 할 때다"고 말했다.
헌법 전문 수록 노력이 5·18 기념일 전후의 메뚜기 널뛰기식 1회성 이벤트에 그치고 있다는 곱지 않은 시선과 함께 그에 대한 반작용도 일어나고 있다. 이와 관련 5·18정신을 헌법 전문에 수록하기 위한 국민청원 운동이 주목된다. 국민청원 운동은 등록 이틀 만에 사전 동의 목표 수를 채웠다.
5·18기념재단은 지난 14일 국회전자청원에 등록한 '5·18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 청원(https://m.site.naver.com/1HXTg)이 1차 목표 찬성 수인 100명을 돌파했다고 16일 밝혔다. 청원 목표 수를 달성함에 따라 국회는 7일 이내에 청원을 국회 누리집에 공개할지 여부를 검토해야 한다. 이에 청원은 오는 27일까지 공개 청원으로 전환될 것으로 보인다. 5·18기념재단은 공개 청원 전환 시 국회 청원 제출 조건인 '30일 이내 최소 5만명 이상 동의'를 목표로 청원운동을 벌일 방침이다.
헌법 전문 수록 절차인 개헌 요구도 학계를 중심으로 분출되고 있다. 학계에서도 여야가 손쉽게 합의할 수 있는 내년 지방선거 때 국민투표로 먼저 결정하고, 권력구조 개편 같은 민감한 사안은 다음 총선에서 다루는 2단계 개헌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학계는 이 같은 논의를 대선 이후 토론회 등을 통해 적극 제기할 예정이다.
광주시는 국민 통합을 위해 부마항쟁과 제주 4·3항쟁을 함께 수록하는 방안도 적극 추진하고 있다. 그동안 5·18정신 헌법 전문 수록 활동을 펼쳐온 민병로 전남대 교수는 "헌법 전문 수록은 여야가 쉽게 합의할 수 있는 사안"이라며 "차기 지방선거가 이를 담아낼 최적기"라고 말했다.
5·18기념재단이 정의한 5·18 정신은?
그렇다면 헌법전문에 수록될 5·18 정신은 뭘까. 원순석 5·18기념재단 이사장의 말이다.
"5·18 정신은 '민주·인권·평화' 등이다. 여기에 저는 '나눔과 자치' '희생과 봉사'를 더하고 싶다. 당시 자발적으로 거리로 나온 시민들이 다친 사람들을 함께 도우며 스스로 질서를 유지해 나갔다는 점에서다. 5·18민주화운동이 '폭동'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시민들의 비폭력적 항거였다는 사실은 이미 역대 정부에서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지 않나. 이는 평범한 시민들의 자발적인 동참이 민주주의를 지켜냈다는 점에서 세계사적으로도 매우 의미가 크다.
고무적인 건 최근 들어 '민주주의는 우리가 지켜내겠다'는 시민 의식이 한층 강고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민주화 이후 태어난 젊은 세대가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점도 긍정적인 신호다. 5·18 정신이 세대를 초월해 21세기 한국 민주주의의 자양분이 될 수 있도록 모두가 힘을 모을 때다."
원 이사장도 1980년 당시 상황의 생생한 목격자이자 증인이다. 전남대 농대 학생회장으로 5·18민주화운동에 직접 참여했다 구속됐다. 이후 광주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등을 맡으며 평생을 5·18민주화운동의 계승·발전에 헌신해 왔다.
Copyright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다음 대통령은 누구? 이재명 51%, 김문수 31%, 이준석 8% 지지율 [한국갤럽] - 시사저널
- 진중권 "김문수, 중도 확장·보수 결집 실패…이준석에게 최적의 상황” - 시사저널
- 청년 등에 살인적 이자 뜯어낸 대부업자…나체사진 유포까지 - 시사저널
- 젊다고 안심은 금물, 고혈압은 ‘조용한 시한폭탄’ - 시사저널
- ‘라임 술접대’ 받은 검사들이 받은 징계 수위는? - 시사저널
- 배두나 “관객들의 ‘몰입’ 위해 사생활 공개 지양한다” - 시사저널
- 돌아온 ‘국민엄마’ 김혜자는 지금도 진화 중 - 시사저널
- [단독]성우하이텍의 ‘옥상옥’ 지배구조...그 이면에 드리운 편법 승계 의혹 - 시사저널
- [단독] 통일교 고위 간부 “로비 잘 해야” 녹취 입수...수사기관 로비 의혹 재점화 - 시사저널
- 교복만 입었을 뿐, 그들은 이미 흉악범이었다 [정락인의 사건 속으로] - 시사저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