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1976 노벨평화상 수상자의 엇갈린 선택

(이어서)사실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1976년 평화상 수상자를 발표하지 않았다. 북아일랜드 ‘평화의 공동체’ 설립자인 베티 윌리엄스와 머레이드 코리건이 유력 후보였지만, 노벨위원회는 그들의 평화운동이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해야 했다. 후보가 없으면 한 해 유보할 수 있다는 재단 규정에 따라, 노벨위원회는 77년에야 둘의 76년 평화상 수상 소식을 발표했고 시상식도 그해 12월 열렸다.
노벨상 상금을 둘러싼 논란이 시작됐다. 둘은 상금 약 56만 파운드(근년 기준 약 67억 원)를 나눴는데, 코리건은 상금 전액을 ‘평화의 공동체’에 기부한 반면 윌리엄스는 그 돈을 자신이 갖겠다고, 세계 평화를 위해 알아서 쓰겠다고 밝힌 거였다. 그가 북아일랜드 평화운동을 개인의 명성과 축재의 수단으로 이용하려 한다는 비난이 빗발쳤다. 노벨상 수상 직후 윌리엄스는 코리건과도, ‘평화의 공동체’와도 결별했고, 81년 남편과 이혼한 뒤 미국인 사업가와 재혼해 미국 플로리다에 정착했다.
코리건은 줄곧 단체를 이끌며 지금도 단체 명예회장으로 활약하고 있고, 81년 종파를 초월한 사법 인권단체인 ‘사법행정위원회’를 설립했다. 2006년 출범한 노벨 평화상 여성 수상자 모임인 ‘노벨 여성 이니셔티브’ 회원으로서 국제 사회의 다양한 평화-인권 이슈에 대해서도 발언해왔다.
당연히 윌리엄스도 ‘노벨 여성 이니셔티브’ 회원이지만 코리건과는 77년 이후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저명 평화운동가로서의 명성과 화려한 라이프 스타일을 추구했던 윌리엄스는 세계 각지를 누비며 정치인과 배우 등 저명 인사들과 교유했고, 여러 상과 명예학위를 받았고 15개 국제 평화 관련 단체 이사회에도 이름을 올렸다. 윌리엄스는 2004년 고향 벨파스트로 되돌아와 여생을 보냈다. 늘 그런 건 아니지만, 현재의 자리는 생애의 많은 진실을 품고 있다.
최윤필 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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