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워치] 트럼프가 맞는 역풍
(서울=연합뉴스) 김지훈 선임기자 = 개인이 금융회사에서 대출받을 때 신용점수에 따라 대출 조건이 달라지는 것처럼 국가도 신용등급이 있고 채권 발행으로 자금을 조달할 때 신용등급(Sovereign credit ratings)이 영향을 준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무디스(Moody's), 피치(Fitch) 등 국제 신용평가 회사들이 각 국가의 외화표시 장기국채에 신용등급을 부여하는데 그 신용등급에 따라 국채 금리가 달라질 수 있다. 국가신용등급을 평가할 땐 사회 안정성과 안보 등 경제외적인 다양한 요인들도 고려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부채를 제때 상환할 수 있는 능력을 평가하는 것이므로 거시경제 여건과 재정건전성 등에 무게가 실리게 마련이다.
세계 3대 신용평가회사 중 하나인 무디스가 지난 주말 미국의 국가 신용등급을 최고 등급인 'Aaa'에서 'Aa1'으로 한단계 낮췄다. 무디스는 "지난 10여년간 미국은 재정적자로 인해 연방정부 부채가 급격히 증가해왔다"는 이유를 들었다. 앞서 S&P가 2011년에 미국의 신용등급을 최고등급에서 한단계 내렸고 2023년에 피치도 강등했으니 무디스의 이번 강등이 새로운 충격은 아니며 금융시장에 미치는 타격도 과거보다 크지 않을 수도 있다. 더구나 무디스가 등급 강등의 원인으로 꼽은 미국의 부채도 사실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라 과거부터 지속돼온 사안이므로 트럼프 행정부가 바이든 정부 탓을 하며 반발하는 것도 모두 억지라 하긴 어렵다.
기축통화국인 미국이 최고등급에서 강등당했다는 굴욕보다 주목해서 볼 것은 미국 국채금리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다. 신용등급 하락은 국채를 발행해 조달한 부채의 원리금을 제때 갚을 능력이 전보다 떨어졌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개인 신용점수가 하락하면 대출금리가 오르듯 이번 등급 강등이 미국 국채금리의 상승을 불러올지가 관전 포인트다. 더구나 최근 국제금융시장에서 미국 국채와 주식 등을 매도하는 '셀 아메리카'(Sell America) 현상이 불거진 직후 트럼프가 관세전쟁을 유예하고 협상 국면으로 돌아선 것을 감안하면 신용등급 강등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또 하나의 역풍으로 작용할지 관심이 몰린다.
최근 미국 경제엔 트럼프가 취임 직후부터 몰아붙였던 강경일변도의 관세전쟁만큼이나 역풍도 거세게 일고 있다. 미국 내에선 관세부과 후 물가 상승과 경기침체 공포가 커졌고 금융시장에선 주요 기업들의 주가가 급락했다. 채권시장에선 이른바 '채권자경단'(Bond Vigilantes)의 미국 국채 매도 규모가 커지고 국채금리가 오르자 이로 인해 미국의 이자 부담이 급증할 것이란 경고가 나오면서 트럼프의 '폭주'에 제동이 걸렸다는 분석이 다수설이다. 미국의 올 1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속보치)은 -0.3%(직전분기 대비 연율기준)로 후퇴해 3년 만에 역성장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달 말 발표한 경제전망에서 올해 미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1.8%로 3개월 전보다 0.9%포인트나 낮춰잡았다.
트럼프가 호언장담했던 가자전쟁·우크라이나전쟁의 종식은 요원해 보이고 멕시코만이나 그린란드에 대한 탐욕도 거센 반발만 불러왔을 뿐이다. 물론 트럼프가 이런 역풍을 타개하고자 관세전쟁을 더 강하게 밀어붙이거나 무역적자 해소를 위해 환율 등 다른 무기를 꺼내 들어 국면전환을 시도할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트럼프가 촉발한 관세전쟁의 패턴과 전략은 1기 때부터 노출돼 교역상대국들에 학습효과가 쌓여있다. 또 내년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가 성과를 위해 무역 협상을 서두르는 점도 이용할 수 있으니 교역상대국들이 협상에서 반드시 불리한 입지라고만 할 것도 아니다. 역풍을 맞은 트럼프가 주춤하는 사이 상호관세 유예와 미중 무역전쟁의 휴전으로 생긴 여유와 공간을 지혜롭게 활용하는 나라가 글로벌 무역전쟁의 숨은 승자가 될 수 있다. 한국은 내달 초 새 정부가 출범한 뒤 관세 유예가 끝나는 7월 초까지 한 달여의 시간이 골든타임이 될 것이다.
hoon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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