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일의 산림치유 일지] 공유자전거와 할머니

김상진 기자 2025. 5. 19.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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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산이 입산 통제되면서 자연스럽게 신천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대형 산불 이후 내려진 지자체의 불가피한 조치였지만, 도심에서의 새로운 일상도 나름의 매력이 있다.

며칠 전, 둔치에 세워진 공유자전거를 바라보며 대화를 나누던 할머니들의 이야기가 귀에 들어왔다.

그들에게 공유자전거는 '공유재산'이 아니라, '버려진 자전거' 혹은 '도심의 쓰레기'처럼 보였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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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 인식 차이 탓 ‘공유’ 개념 낯설어해
사람 뿐 아니라 문명의 기원 숲도 해당
미래 보고 싶다면 다시 숲으로 향해야
김태일 Story 산림치유연구소 소장 / 산림치유지도사

앞산이 입산 통제되면서 자연스럽게 신천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대형 산불 이후 내려진 지자체의 불가피한 조치였지만, 도심에서의 새로운 일상도 나름의 매력이 있다. 신천을 걷거나 달리는 동안 나는 도시의 리듬을 따라가며, 그 속에서 생각하지 못했던 장면들과 자주 마주하게 된다. 며칠 전, 둔치에 세워진 공유자전거를 바라보며 대화를 나누던 할머니들의 이야기가 귀에 들어왔다. "멀쩡한 자전거를 왜 저기에 버려뒀노?" 그 말에 친구도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그들에게 공유자전거는 '공유재산'이 아니라, '버려진 자전거' 혹은 '도심의 쓰레기'처럼 보였던 거다. 세대 간 인식 차이일 수도 있지만, '공유'라는 개념 자체가 여전히 낯선 이들도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비슷한 경험은 또 있다. 지역 언론에서 소개된 '공유서재' 칼럼을 읽었다. 내가 참여 중인 책 모임에서도 이 운동을 실천하고 있었기에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누구나 책을 기증하고, 또 자유롭게 가져가 읽을 수 있는 열린 서재. 대구에서 시작된 이 작은 움직임이 지역을 넘어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공유경제의 개념이 문화운동으로 확장되는 흐름은, 단순한 트렌드를 넘어 사회적 변화를 이끄는 씨앗처럼 느껴졌다. 또 한편으로는, 한 재미과학자의 인터뷰가 인상 깊었다. 그는 "이제 리더는 사람을 거느리는 존재가 아니라, 미래를 보는 사람"이라고 했다. 자기 삶을 성찰하고 통찰할 수 있다면 누구나 '1인 리더'가 될 수 있다는 말이었다. 직함이나 권한이 아닌, 비전과 사유가 리더의 핵심이라는 생각에 크게 공감됐다.

하지만 도심에서 걷는다는 건 의외로 깊은 생각을 방해한다. 주변 환경은 계속 바뀌고, 사람들의 움직임도 시시각각이라 생각의 흐름이 자꾸 끊긴다. 앞산이나 팔공산을 걸을 때 느낄 수 있었던 고요한 사고의 공간이, 신천에선 좀처럼 생기지 않는다. 하루도 빠짐없이 걸었지만, 생각을 깊게 할 수 없다는 게 요즘의 아쉬움이다. 도시를 산책하는 것과 숲을 걷는 것은 확실히 다른 것 같다. 왜 숲을 '철학자의 공간'이라고 하는 지 조금은 이해된다. 퇴계는 숲을 '독서하듯 즐겨라'며 '유산여독서((遊山如讀書)'를 강조했다. 자연을 관찰하며 천천히 생각을 쌓는 일, 그것이 곧 사유이고 성찰이며 통찰이다. 숲은 인간의 오랜 기억이 공유된 장소다. 신화와 전설, 이야기와 문화가 얽혀 있는 공간. 그런 의미에서 숲은 인류 최초의 '공유 플랫폼'이 아닐까 싶다.

공유경제가 점점 일상에 스며들고 있지만, 그것을 이해하는 감각은 아직도 미숙한 경우가 많다. 공유자전거를 쓰레기로 본 할머니처럼, 우리 역시 새로운 개념을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 숲도 마찬가지다. 지금 우리는 숲을 '등산하는 장소' 정도로 여기지만, 사실 숲은 인류의 고향이자 문명의 기원이기도 하다.

오스트리아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좋은 철학은 느린 철학"이라고 했다. 빠름이 미덕이 된 시대, 유투브가 대세인 세상은 불과 몇 초의 쇼츠(shorts) 영상으로 우리의 삶과 인생을 재단하고 판단한다. 멈춤과 느림은 오히려 불편한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사유는 멈춤에서 시작된다. 멈춰야만 인식할 수 있고, 느려야만 통찰이 가능하다. 미래를 보고 싶다면, 리더가 되고 싶다면, 우리는 다시 숲으로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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