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 동업 삼천리, 3세 체제 시동…이씨·유씨家, 계열 분리 가능성 ‘솔솔’
삼천리그룹, “분리 문제 논의된 적 없어…공통경영 체제 굳건”
(시사저널=이석 기자)
국내 1위 도시가스 업체인 삼천리그룹은 독특한 지배구조로 유명하다. 이씨와 유씨 가문이 70년간 잡음 없이 동업 체제를 유지해 왔기 때문이다. 고(故) 이장균·유성연 창업주가 1955년 서울 을지로에 설립한 삼천리연탄기업사(현 (주)삼천리)가 모태다. 이때까지만 해도 삼천리그룹은 조그만 연탄공장에 불과했다. 삼천리는 1970년 탄광 회사인 삼척탄좌(현 ST인터내셔널)를 인수하면서 성장의 날개를 달았다. 원료인 석탄 생산에서 완제품인 연탄을 제조·판매하는 수직계열화에 성공하면서 매출이 크게 증가했다. 창업주의 역할도 바뀌었다. 이장균 선대회장은 연탄의 제조·판매를 담당하는 (주)삼천리를, 유성연 선대회장은 탄광을 개발하는 ST인터내셔널의 경영을 맡았다.

창업주의 동업각서 별도 보관, 왜?
창업주의 경영철학은 2대 회장인 이만득 삼천리 명예회장과 유상덕 ST인터내셔널 회장 때도 이어졌다. 이들 역시 독자 경영을 하되 지분은 공유하는 '한 지붕 두 가족' 체제를 유지해 왔다. 모든 계열사의 지분뿐 아니라 수익을 절반씩 나누기로 합의한 선대회장의 동업각서를 금고에 보관했을 정도였다.
2세 경영 체제에 돌입하면서 삼천리그룹은 사업 체질 개선에 나섰다. 연탄을 대체할 새로운 연료로 도시가스를 주목하고 대대적인 투자를 단행했다. 그 결과 (주)삼천리는 경기도 13개 시, 인천 5개 구에 배관망을 구축하면서 국내 최대 도시가스 업체로 성장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에너지 기기(삼천리ES)와 엔지니어링(삼천리ENG), 집단에너지 공급(휴세스), LNG 복합화력발전소(에스파워), 자동차 판매(삼천리모터스), 투자(삼천리인베스트먼트) 등의 사업에도 진출했다. 외형이 커진 삼천리그룹은 2014년 공정위가 지정한 대기업(공시대상 기업집단)에 포함됐다. 재계 서열은 현재 53위다.
창립 70주년을 맞은 올해 삼천리그룹은 3세들을 통해 또 한번의 변신을 준비 중이다. 이장균 창업주의 장손인 이은백 사장과 2세인 이만득 명예회장의 삼녀인 이은선 부사장이 지난해 말 나란히 승진한 상태다. 이은백 사장은 2004년 삼천리 기획본부 경영총괄로 그룹 경영에 합류했다. 이후 해외사업 담당 임원을 거쳐 미주본부 총괄 사장을 맡으며 해외사업을 진두지휘해 왔다. 일정 부분 성과도 있었다. 삼천리그룹의 해외 부동산 및 투자 지주사 격인 SIM, a California Corp의 매출과 영업이익이 최근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사촌 동생인 이은선 부사장은 외식 사업에 집중해 왔다. 중식당 '차이(Chai)797'과 홍콩 음식점 '호우섬', 한식 브랜드인 '바른고기 정육점' 및 '서리재' 등을 잇달아 론칭했다. 삼천리ENG를 통해 밀키트 시장에도 진출했다. 덕분에 삼천리ENG의 공사 매출액은 최근 몇 년간 주춤했지만, 외식 사업 매출액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풀어야 할 숙제도 적지 않다. 호텔이나 외식 사업이 연탄이나 가스를 이을 신성장동력으로 평가받기에는 아직 부족한 게 많기 때문이다. 삼천리그룹은 가스나 LNG발전 사업이 전체 매출의 90% 가까이를 차지하지만, 최근 성장 정체기에 빠졌다. (주)삼천리의 연결 기준 매출은 2022년 4조원대로 정점을 찍은 후 2년 연속 역성장했다. 한때 900억원을 오르내리던 영업이익도 지난해 200억원대로 쪼그라들었다. 3세 경영 체제의 닻을 올린 이들이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낼지 우선 주목된다.

오너 3세로 성공 DNA 이어질지 주목
삼천리그룹의 또 다른 경영 축인 ST인터내셔널의 행보도 주목된다. 이 회사는 그동안 유씨 집안이 독자적으로 경영을 맡아왔다. 종합에너지 기업인 삼천리와 달리 ST인터내셔널은 에너지 인프라와 부동산 등의 투자에 공을 들였다. 특히 알짜 부동산을 대거 보유하고 있다. 현재 서울 청담동의 ST송은빌딩과 대치동 삼탄빌딩, 신아빌딩 등을 이 회사가 보유하고 있다.
눈에 띄는 사실은 ST인터내셔널이 최근 잇달아 M&A(인수합병)에 나서고 있다는 점이다. ST인터내셔널은 2022년 말 벤처캐피털인 서울기술투자(현 블루코너)를 품에 안았다. 지난해 말에는 웰컴금융그룹 계열사인 웰컴캐피탈(현 블루코너캐피탈)과 조미김 제조회사인 성경식품 인수전에도 뛰어들었다. 재계 안팎에서는 3세 경영 체제를 앞두고 계열 분리를 준비하는 게 아니겠냐는 말이 나오고 있다.
물론 삼천리그룹 측은 여러 차례 언론을 통해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 그룹 관계자는 "삼천리그룹의 공동경영 체제는 두 가문의 보유 주식 수에서 나타나듯 굳건히 유지되고 있다"면서 "일각에서 제기되는 계열 분리설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3세 승계 역시 내부적으로 논의된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재계 안팎에서는 여전히 의문의 시각이 일고 있다. LG의 구씨와 GS의 허씨家, 영풍의 장씨와 고려아연의 최씨家의 사례처럼 삼천리그룹 역시 계열 분리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집안 사이의 유대는 세대가 거듭될수록 약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최근 계속된 ST인터내셔널의 M&A 행보 역시 그 연장선상에서 보고 있다. (주)삼천리와 ST인터내셔널의 자산이나 매출 격차가 현재 상당하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주)삼천리의 자산은 4조5182억원, 매출은 5조1205억원을 기록했다. ST인터내셔널은 반대였다. 자산은 3조8394억원으로 큰 차이가 없지만, 매출은 6977억원으로 삼천리에 크게 못 미친다. 계열 분리를 위한 매출 격차 해소 차원에서 유씨 일가가 M&A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룹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주)삼천리가 2016년부터 전문경영인 체제를 이어오고 있는 것과 달리, ST인터내셔널은 유상덕 회장과 장남인 유용욱(미국명 Yoo Robert Yong Wook) 부사장이 모두 등기임원"이라면서 "외부 간섭 없이 유씨 집안이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에 독자 행보도 가능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이씨와 유씨 가문의 계열 분리를 위해서는 실타래처럼 얽힌 지분 문제를 풀어야 한다. 이씨와 유씨 가문은 현재 상장회사인 (주)삼천리와 ST인터내셔널의 지분을 각각 19.5%와 50%씩 보유하고 있다. 그동안 재계에 횡행했던 일감 몰아주기나 편법 승계 사례도 없었다. 오너 1세에서 2세로, 다시 3세로 경영권이 넘어갈 때마다 증여세를 내고 지분을 자녀에게 승계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삼천리그룹은 현재 오너 3세에게 지분이 상당 부분 넘어간 상태다. 이만득 명예회장(8.34%)과 유상덕 회장(6.46%) 대신 3세인 이은백 사장(9.18%)과 유용욱 부사장(9.18%)이 현재 (주)삼천리의 최대주주다. ST인터내셔널 역시 이만득 명예회장과 이은백 사장이 각각 23.43%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개인 최대주주는 43.14%를 보유한 유상덕 회장이지만, 전례를 감안할 때 이 지분도 조만간 3세인 유 부사장에게 넘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계열 분리를 위해 남은 절차는 두 가문의 지분을 교통정리하는 것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주)삼천리와 ST인터내셔널은 2009년과 2010년 보유 중이던 양사 지분을 모두 처분했다. 동업의 징표로 양가를 이어줬던 상호출자 관계가 모두 해소된 것"이라면서 "현재 (주)삼천리와 ST인터내셔널은 서로 출자관계가 전혀 없는 수직적인 지배구조 상태다. 두 가문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계열 분리가 가능한 상태"라고 말했다.

동업의 징표였던 상호출자는 모두 해소
하지만 재계 일각에서는 다른 시각도 나온다. 이씨 일가가 알짜 회사인 ST인터내셔널의 지분을 포기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요컨대 ST인터내셔널의 매출은 (주)삼천리의 7분의 1 수준이다. 하지만 배당은 3배 가까이 높다. 1982년 ST인터내셔널이 인도네시아 파시르 유연탄광 개발에 성공하면서 천문학적인 이익을 거둔 게 결정적이었다. ST인터내셔널은 2017년 이 광산의 지분을 모두 매각하면서 실적이 하락했음에도 고배당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실제로 삼천리는 최근 3년간 103억원씩 309억원을 현금으로 배당했다. 이 회사 지분 19.2%씩을 보유한 오너 일가는 각각 59억원씩을 배당받았다. 하지만 ST인터내셔널의 3년간 배당액은 671억원이다. 이씨와 유씨 가문이 각각 이 회사 지분 50%씩을 보유하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가문당 현금 배당액은 300억원이 넘는다. 계열 분리 과정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풀지가 쟁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관련해 재계의 한 관계자는 "과거 LG와 GS 가문의 계열 분리 모델이 모범답안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계열 분리 당시 GS그룹은 정유와 건설, 홈쇼핑 등 당장 현금성이 높은 계열사를 가져가고, LG그룹은 장기간 투자가 필요한 전자와 화학, 이차전지 사업 등을 맡았다"면서 "재계에서도 가장 모범적인 계열 분리 모델로 삼천리그룹 상황에 맞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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