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작은 씨앗에 담긴 우주

김명수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장 2025. 5. 19.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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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수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원장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로 유채밭마다 상춘객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기름을 짜거나 나물로 먹고 경관용으로도 가치가 큰 유채는 농업적으로 중요한 식물이다.

우리나라 대표 유전·육종학자이자,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초대 원장인 우장춘 박사는 1935년 '배추속 식물에 대한 게놈분석'이라는 박사학위 청구 논문에서 배추와 양배추를 교배한 자손의 염색체가 19개로 이미 존재하는 유채와 똑같다는 것을 실험으로 증명했다.

이는 다윈의 진화론과 달리 서로 종이 달라도 교배가 되고 이를 통해 새로운 종을 만들 수 있음을 밝힌 것으로 그 의미가 크다. 또, 이 이론을 도식화해 '우의 삼각형'을 완성했다. 일본에 머물다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일제강점기와 전쟁 폐허 속에서 우리 농업의 자립과 종자 주권을 꿈꾸며 수많은 품종을 개발했다.

당시 채소 육종 방법을 전혀 모르고 있던 한국의 후학들에게 재래종 선발과 일대잡종 품종 개발이라는 혁신적 기술을 전수했다. 지금 우리가 먹는 속잎이 꽉 찬 결구배추도 이때부터 활발하게 보급됐다.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연구자들은 우장춘 박사의 업적을 기리고자 해마다 5월 개원 기념일에 맞춰 추모식을 열고 있다. 박사는 생전에 "씨앗은 그 자체가 하나의 우주다"라고 강조했다. 하나의 종자 안에는 인간이 수천 년에 걸쳐 다듬어 온 유전 정보가 응축돼 있다.

또, 종자는 기후와 병해충, 소비자의 취향을 반영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우 박사는 종자가 농업의 미래를 가늠하는 핵심 자원임을 일찌감치 내다본 듯하다.

과거 우리나라는 원예작물 종자 상당량을 외국에 의존했다. 그러나, 지금은 품종 국산화율이 눈에 띄게 향상됐다. 농촌진흥청은 종자 주권 확보를 위해 전략적으로 품종을 육성·보급하면서 농산업 확대를 위해 노력해 왔다. 덕분에 배추, 고추, 무, 딸기 등 주요 채소와 과채류의 품종 국산화율은 100%에 육박하고 있다.

한 알의 종자가 좋은 열매를 맺기까지는 수 년에서 수십 년이 걸릴 뿐 아니라, 넓은 면적의 땅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미래시장에 대한 선견지명, 즉 끊임없는 관찰과 최대로 끌어올린 육종가의 감각이 중요했다.

품종 육성을 향한 기나긴 여정을 단축하고 좁은 면적에서도 효율적으로 선발할 수 있게끔 이제는 정밀하게 분석한 결과를 디지털화하는 노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종자 개발의 효율성과 예측 가능성을 높이기 위함이다.

농촌진흥청은 딸기를 비롯해 배, 복숭아, 도라지 등의 표준 유전체 해독을 완료했다. 유전적으로 고정된 재료의 정확한 유전체 정보 구축 덕분에 다양한 작목의 디지털 육종이 속도를 내고 있다. 여기에 민간과의 협력이 더해진다면 육종 소재와 기술 개발은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현재 세계 종자 시장은 68조 원 규모이다. 반면 국내 종자 시장은 2022년 기준 약 7,800억 원에 머물고 있다. 종자산업의 부가가치나 종자 독립을 논하기는 아직 부족하지만, 같은 이유로 우리만의 경쟁력을 갖추는 일이 시급하다.

작물에 특화된 빅데이터를 구축하고 이를 분석할 수 있는 플랫폼을 개발하는 등 보다 빠르고 효율적으로 품종을 개발할 수 있는 기술 개발에 더 많은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오늘날처럼 기후변화와 식량 위기가 심화되는 시대에는 환경에 잘 적응하고 생산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품종 개발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안정적인 농산물 생산의 시작이 종자이며, 그 주권을 확보하는 것이 곧 식량안보이다. 국립원예특작과학원은 국가적 사명을 갖고 종자 연구와 육종 기술 역량을 갖추는 데 더욱 노력할 계획이다.

김명수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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