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조용” “용기 없었던” 국무위원 회동을 보며 [편집국장의 편지]

변진경 편집국장 2025. 5. 19. 08:22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매주 〈시사IN〉 제작을 진두지휘하는 편집국장이 독자들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우리 시대를 정직하게 기록하려는 편집국장의 고민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권력이란 참으로 서늘한 것이다. 아무리 ‘알량한’ 자리라고 해도 거기에 앉아 있으면 남의 눈에 잘 보이는 게 내 눈엔 보이지 않는다.

12·3 계엄 날 밤 윤석열이 ‘국무회의’라고 부르던 회동에서 벌어진 장면을 전해 듣고 이해가 안 갔다. ‘어떻게 국무위원이 한 명도 윤석열을 막지 못했을까.’ 검찰 조사 진술에 따르면 이들은 비상계엄을 선포하겠다는 윤석열 앞에서 “다들 침묵하고 조용했고(홍철호 정무수석)” “용기가 없었고(오영주 장관)” “합심해서 대통령의 행동을 막자고 말한 사람도 없었다(조태열 장관)”.

〈시사IN〉 편집국에서 편집국장은 대통령, 각 팀 팀장은 국무위원이라 할 수 있다. 직선제로 뽑힌 편집국장이 팀장들을 임명한다. 대부분의 편집국 방침과 매호 기사 아이템이 팀장회의 단위에서 결정된다. 나는 매우 민주적이고 합리적으로 회의를 주재하고 안건들을 판단한다(고 생각한다). 나와 다른 의견도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2024년 10월29일 당시 대통령이었던 윤석열이 주재한 국무회의.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비상계엄 당시 국무위원들의 태도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한 팀장에게 물었다. “저게 말이 돼? 예를 들어 내가 말도 안 되는 결정, 이를테면 ‘윤석열이 너무 미우니 이번 호는 지면을 다 털어서 몽땅 윤석열에 대한 육두문자로 채우자’라는 결정을 내렸어. 그러면 팀장들이 날 묶어서 창고에 집어넣고서라도 막아내지 않을까?” 잠시 곤란한 표정을 짓던 그 팀장은 말했다. “글쎄요··· 막상 쉽지 않죠. ‘국장이 무슨 생각이 있겠지’라고 생각할 것도 같은데요.”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순간 ‘답정너’처럼 물어보는 질문에 침묵이 흐르던 순간들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그럼 그렇게(내가 말한 대로) 결정할게요”라는 말에 가만히 눈을 피하던 팀장들의 모습도 떠올랐다. 고백하자면, 정계와 재계의 볼썽사나운 리더들 모습을 보면서 ‘나는 저 정도는 아닌데’라며 혼자 근거 없이 자부했다. 문득 불안해질 때면 다른 이의 허물을 애써 들추며 상대적으로 나의 못남을 잊어버리려 바둥댔다. 내가 내리는 결정이 얼마나 바보 같고 어리석은 것인지 가르쳐주려는 사람을 만난다면 학창 시절 운동회 달리기 시합 때처럼 신발을 벗고 전력을 다해 내달리고 싶었다.

그래서 권력은 무서운 것이다. 그리고 견제받아야 하는 것이다. 끊임없이 평가받아야 하고, 선을 넘었을 땐 물러나게 해야 한다.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권력에 대해 대한민국 민주공화국 국민들이 수행해온 고통스럽고도 자랑스러운 작업이기도 하다. 앞으로도 멈추지 말아야 한다.

〈시사IN〉 편집국장은 임기 절반을 지나면 ‘중간평가’를 받는다. 〈시사IN〉 단체협약서 제4장(편집국 독립과 개혁 언론 실천) 제20조 8항에 따라 편집국 구성원 3분의 2가 불신임하면 파면된다. 내일(5월16일) 간담회(청문회 비슷한 자리다)가 열리고 일주일간 투표가 진행된다. 이 지면에서 그럴싸하게 보였던 것과 달리 실제로는 형편없는 국장이라면, 아마도 이번 편지가 명분 있는 책임자로서 독자들께 드리는 마지막 편지일지도 모르겠다.

변진경 편집국장 alm242@sisain.co.kr

▶읽기근육을 키우는 가장 좋은 습관 [시사IN 구독]
▶좋은 뉴스는 독자가 만듭니다 [시사IN 후원]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