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입양인 서류에 적힌 ‘케이 넘버’를 찾아서
해외 입양인의 입양 관련 서류에는 고유 번호가 적혀 있다. 미오카 밀러 씨(한국명 김미옥)의 서류에는 723915, 케일린 바우어 씨(방소희)는 85c-3128, 선희 엥겔스토프 씨(신선희)는 K82-2150, 메리 쉬라프만 씨(전경희)는 10846이 적혀 있다. 입양기관마다 아이들을 분류하기 위해 번호를 붙였는데, 어떤 기준인지 공개하지 않고 있다.
조세영 감독(46)은 이 숫자들을 ‘케이 넘버’라 부르고, 같은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영화는 해외 입양인들이 어렵게 서류를 구하고, 친생부모를 찾아 나서는 과정을 따라간다. 주인공 격인 ‘미오카’는 ‘미옥’이라는 이름 뒤에 a를 붙인 이름이다. 그는 네 번째 한국 방문에서 새로운 입양 관련 서류를 얻는다. 서류에 적힌 ‘독쟁이’를 단서로 인천으로 향한다. 과연 그는 부모를 만날 수 있을까. 배급사는 이 영화를 ‘K-추적멘터리’라고 소개했다. 입양 서류에 숨겨진 진실을 추적하는 작품이다.

영화의 첫 장면은 21년 전 촬영된 영상이다. 대학 시절 영화 동아리에서 활동한 조 감독은 이후 상업영화 편집실 등에서 일했다. 여성단체 등의 활동을 촬영하는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미혼모들의 삶을 접했고, 그 인연으로 2004년에 해외 입양을 다룬 23분짜리 단편 다큐멘터리 〈메이드 인 한국인〉을 제작했다. KBS 시청자 제작 프로그램을 통해 방송됐다.
그때 만난 한 해외 입양인이 ‘원본 기록을 찾으러 입양기관에 가는데 동행해달라’고 부탁했다. 카메라가 있으면 도움이 될 것 같다고. 함께 갔다가 조 감독은 입양기관 담당자와 입양인의 말다툼을 목격했다. 입양인은 자신의 기록을 복사해달라고 했고, 담당자는 ‘기관의 사유재산’이라며 완강히 거절했다. 알고 보니, 이런 충돌은 흔한 일이었다. 한 시간가량 촬영을 하면서도 그는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어딘가 물어보고 싶었지만 설명해줄 이가 없었다.
그 후 조 감독은 다양한 영상 작업을 이어갔다. 〈버라이어티 생존 토크쇼〉(2009), 〈자, 이제 댄스 타임〉(2014), 〈물물교환〉(2015) 등을 연출했다. 그러다 2018년, 미국 시민권이 없다는 이유로 추방당한 한국 출신 입양인의 기사를 읽고 의아함을 느꼈다. ‘해외로 입양을 갔는데, 왜 불법체류자인가?’ 그가 입양기관에서 느꼈던 답답함에 의문이 더해졌다. 조 감독은 “대략 14~15년 전에 경험한 일이 여전히 벌어지고 있고, 해외 입양인이 20만명을 넘는다는 걸 알고서 개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문제가 있겠구나 싶어 작업을 결심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입양 관련 도서를 읽고, 관련 포럼에 참여했다. 2019년부터 본격적으로 〈케이 넘버〉 작업을 시작했다.
다큐멘터리 작업은 예측 불가능했다. 주인공 미오카 씨의 여정을 따라가면서도 그 결말을 가늠하기 어려웠다. 어렵게 구한 서류 내용이 사실인지조차 불분명했다. 미오카 씨가 서류에 적힌 장소와 기관으로 가는 여정에 카메라가 함께했다.
‘상봉 위주의 다큐’ 배제한 까닭
작업에 들어가면서 조 감독은 원칙을 세웠다. 감정선을 건드리는, 상봉 위주의 다큐멘터리는 하지 않겠다고. “그건 마치 최루성 멜로드라마 보듯이, 불쌍하고 연약한 타자를 바라보는 방식이다. 관객이 ‘내 문제가 아니다’고 생각하게 만들고, 가장 편한 접근이다. 해외 입양은 구조적인 문제이고 국가가 인권침해를 한 것인데, 이런 사실은 빼놓고 상봉하는 모습을 보며 ‘저 사람들, 불쌍하네’ 하는 게 무척 난센스라고 생각했다.”

〈케이 넘버〉는 부모 찾기 여정 중간중간에 과거 영상으로 역대 정권의 입양 정책 문제를 짚어낸다. 그 과정에서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사실들이 드러난다. 한국은 콜롬비아, 우크라이나에 이어 해외 입양을 세 번째로 많이 보내는 나라다. 누적 숫자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다. 이들의 입양 관련 서류에는 ‘길에서 발견됐다’는 기록이 많다. 실제 사실과 맞는지는 의문이다. 고아나 기아(버려진 아이)여야 해외 입양이 가능했기에, 그 요건을 맞추기 위해 기록이 조작됐을 수 있다. 그마저도 입양 기록이 여러 곳에 흩어져 있어, 해외 입양인들은 자신의 정보를 찾는 데 큰 어려움을 겪는다. 훈훈한 ‘상봉 장면’만 봐서는 알 수 없는 사실들이다.
제작 과정에서 간단한 숫자 하나 얻기도 힘들었다. 조 감독은 4대 입양 기관에 ‘해외 입양인이 한국에 돌아와 정보 요청을 한 횟수’를 문의했다. 어느 기관도 숫자를 공개하지 않았다. ‘모른다. 우리는 그 수를 세지 않는다’는 말만 돌아왔다. 해외 입양 뒤 사후관리도 없었다. 미국으로 간 입양인 중 2만명 이상이 시민권이 없는 상태다. 양부모가 시민권 획득 절차를 밟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에 돌아오고 있는 해외 입양인들과 함께 살아가려면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처음 다큐를 제작하면서 조세영 감독이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은 이것이었다. 그래서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을 찾아 나섰고, 그 과정에서 해외 입양인들의 부모 찾기를 돕는 모임 ‘배냇’을 만났다. 하지만 촬영을 하면서 질문이 잘못됐다고 느꼈다. ‘준비’를 하려면 해외 입양인들이 돌아오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하는데, 많은 이들이 해외 입양인이 20만명이 넘는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한 입양인이 던진 질문을 조 감독은 잊지 못한다. ‘한국인들은 우리가 돌아오는 것을 어떻게 생각해?’라는 질문이었다. “그 질문을 받고 너무 당황스러웠다. ‘한국 사람들은 관심이 없다’고 답할 수도 없고···. ‘내가 그 질문을 받았을 때의 당황스러움, 그 충격감을 관객들에게 잘 전달해주자’고 마음먹었다.”

이 영화는 관객을 ‘목격자’의 자리에 세운다. 과거부터 쌓여온 입양 제도의 폐해로 인해 지금 입양인들이 돌아와 자기 정보를 찾는 과정에서 어떤 고통을 겪는지 보게 한다. 조세영 감독은 “사회적 참사가 일어났을 때, 그 자리에 없었다고 해서 ‘나와 무관하다’고 느끼진 않는다. 해외 입양도 마찬가지다. 관객이 당사자의 곁에서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체험’하고, 우리 역사, 우리의 삶과 연결된 문제라는 점을 알았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케이 넘버〉의 조세영 감독은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다큐멘터리 관객상’을 받았다. 관객들의 직접 투표로 선정하는 상이다. 또 서울독립영화제에서는 대상을 받았다. 영화는 5월14일에 개봉한다.
차형석 기자 ch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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