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결제 뉴스 보고 저게 ‘주먹밥’이구나 했지” [1980년 광주가 2025년 광장에게]
12·3 비상계엄 이후 첫 5·18이 다가온다. 〈시사IN〉은 2024년 12월3일을 겪은 광장의 시민과 1980년 5월 광주의 시민 6인의 이야기를 교차해 소개한다. 12·3 세대는 45년 전 광주민주화운동의 주역들에게 편지를 썼다. 편지에는 감사와 다짐의 마음이 빼곡했다. 그 시간에 기대 내일을 그려볼 수 있었다고, 역사의 가르침을 이어가겠다고, 덕분에 살아남았다고. 5·18 세대도 지난겨울의 광장에서 ‘광주 정신’을 부활시킨 12·3 세대에게 자랑스러움과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그렇게 과거가 현재를 구했고, 현재가 과거를 되살렸다.

“용감한 시민들이야말로 광주의 유산이지. 젊은이들이 아주 자랑스러워.” 45년 전 양동시장 노점 상인으로 시위대를 위해 주먹밥을 만들었던 오옥순씨(80)는 여전히 양동시장 한편을 지키고 있다. 사탕과 과자 같은 주전부리를 판다. 평생 일한 몸은 휴식을 낯설어했다. “집에 있으니까 아주 울적하고 온몸이 다 아파서” 다시 좌판을 펼쳤다. 한 평 남짓한 공간에 기대 과일도 팔고 떡도 팔면서 자식 셋을 키운 곳이었다. 오씨의 인생 전부가 양동시장에 고여 있다. 스물일곱, 처음 좌판을 펼쳤을 때와 달리 53년이 지난 지금은 출근도 퇴근도 하고 싶을 때 한다. “난 이제 한량이거든(웃음).”
양동시장에는 오씨와 함께 1980년 5월 주먹밥을 만들던 ‘동지’들이 여전히 있다. 대개는 죽거나 떠났다. 남은 이들은 별말 안 해도 눈짓만으로 의지가 되는 얼굴들이다. 45년 전 봄, 이유 없이 죽어간 수많은 목숨의 목격자들이기도 하다. “5월27일 항쟁 마지막 날, 상무관(현 5·18민주평화기념관 5관)에 갔더니 관이 끝도 없이 늘어서 있어. 사람들이랑 관마다 소주병이랑 잔이랑 놓고··· 그런 건 잊을 수가 없지. 눈 없는 사람, 입 없는 사람··· 얼굴들이 하나같이 어찌나 상했는지 내가 가족이라고 해도 못 알아볼 거 같더라고. 그런 역사를 또 되풀이하는 게, 그게 계엄이야. 그래서 나는 윤석열을 윤석열이라고도 안 해. 이름 부르기 싫고 욕도 아까워. 나는 그냥 ‘철판’이라고 불러. 전두환 때는 슬그머니 넘어갔지만 이번엔 절대 그러면 안 돼. 그건 정치 보복이 아니야. 그래야 역사가 반복이 안 돼.”
‘어머니 밥 좀 주세요.’ 그렇게 말했던 어떤 얼굴은 지금도 오씨의 꿈에 나온다. 시민들은 트럭을 타고 다니면서 머리띠를 두른 채 밥과 물을 구했다. “그게 남의 자식일 수가 있나. 다 내 자식 같은데···.” 노점 상인들은 500원이며 1000원씩 형편껏 돈을 걷었다. 양동시장 길 건너에 양동방앗간(현재 양동행정복지센터 자리)이 있었다. 그 집에 세들어 살던 또 다른 노점 상인이 방앗간 사장에게 사정사정해 밥을 쪄왔다. 찐 밥을 ‘구루마’에 실어 골목을 이용해 옛 보성상회로 옮겼다.

보성상회가 있던 자리는 현재 재개발구역이다. 어수선한 골목골목을, 오씨는 익숙하게 걸었다. “요 가게에 지하가 있어서 숨어서 하기 좋으니까 여기까지 왔어. 소금밖에 못 넣는 주먹밥을 숨어서 만들었지. 주먹밥 만든 게 알려지면 우리도 총 맞아 죽을 거라는 얘기가 많았으니까. 이번에 광장에서 집회 참가자들 위해 선결제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뉴스로 보는데 ‘저게 주먹밥’이구나 했어. 나눔도 용기야.”
‘그 시절’로 돌아갈까 봐 123일을 하루같이 전전긍긍했다. 1980년 5월의 거리에서 만났던 얼굴이 유독 많이 생각나는 날들이었다. “목숨 내놓은 사람들이 있어서 우리가 지금 평화롭게 사는 거야. 그 말을 잊지 말고 자꾸 해야 해. 서울에서 인터뷰 온다고 하면 귀찮아. 그래도 잊어버리면 안 되니까, 와주는 게 고마워서··· 내가 올해 또 이렇게 말이 많네.”
윤석열 탄핵이 인용되던 4월4일 오씨는 멸치 가게 좌판에서 함께 TV 중계를 보다가 선고 결과를 듣고 양동시장 골목을 춤추며 다녔다. “내가 이래이래 팔을 양쪽으로 흔들면서 ‘이겼다! 이겼다!’ 했지(웃음).” 그날 양동시장 곳곳에서 작은 잔치가 벌어졌다. 막걸리와 닭튀김을 사이에 두고 오씨를 비롯한 상인들이 오랜만에 웃었다. 오씨는 여러 차례 당부했다. “요만큼도 반성 없는 윤석열, 절대 용서해서는 안 된다”라고.

광주/글 장일호 기자·사진 이명익 기자 ilhosty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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