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피니즘의 완성은 책…山書 지킴이가 돼주세요" [변기태 한국산악회 회장]

이재진 2025. 5. 19.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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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인터뷰

1963년 주한미군 한 명이 인수봉에 올랐다. 미답의 암벽 루트를 새로 열면서 그는 단 한 개의 인공 확보물도 쓰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가 개척한 루트를 '취나드 A' '취나드 B'로 불렀고 이 루트는 인수봉 등반을 상징하는 루트가 됐다.

이본 취나드를 키운 건 주한미군 도서관

환경운동가이면서 세계적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를 창업한 산악인 이본 취나드는 한국 복무 당시 근무가 끝나면 장서량이 국내 어느 도서관보다 압도적이었던 주한미군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냈다. 자연과 환경, 그리고 기업경영에 대한 취나드의 철학은 60년 전 극동의 빈곤한 나라에 있던 미군 도서관에서 움텄다. 세상 사람들이 취나드를 기억하는 건 그가 자연과 등반에 대한 '철학'을 지녔기 때문이지 '바위꾼'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본 취나드를 만든 건 암벽이 아닌 도서관이었다.

한국산악회 변기태 회장은 '산' 이름이 들어간 것이면 뭐든 수집하는 사람이다. 산 영화, 산의 식생과 동물에 관한 책, 산에 관한 오래된 문헌자료, 심지어 '산'소주병까지 모을 정도다. 고등학교 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월간산을 50년 가까이 한 호도 빼놓지 않고 구독하는 독자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모은 산서가 해외원서를 포함해 5,000여 권에 달하며, 한국산서회 창립 멤버이기도 하다.

산서山書에 대한 그의 애정은 2015년 산서 전문 출판사 '하루재클럽'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등반 관련 책을 내는 출판사들이 몇 군데 있었지만 대부분 문을 닫았고, 현재는 회원제 북클럽인 하루재클럽이 국내에서 유일하게 산서를 전문적으로 펴내고 있는 실정이다. 돈 안 되는 일이지만 산악문화 발전을 위해 변 회장은 뚝심으로 이끌어오고 있다. 그는 지난 10년간 하루재클럽을 통해 산서 40권을 펴냈다. 히말라야를 오르는 영웅들의 이야기를 그린 <폴른 자이언츠>, 에베레스트 초등 당시의 오리지널 사진집 <에베레스트 정복>, 등반의 역사를 새로 쓴 리카르도 캐신의 50년 등반 인생을 다룬 <리카르도 캐신>,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인이 오른 한국의 산들에 관한 <아득한 산들>, <일본 여성 등산사>, <중국 등산 운동사>… 등반뿐만 아니라 뛰어난 인류문화학 가치를 지닌 책들이 변 회장과 한국산악회원들의 짬짬이 자원봉사로 국내에 알려졌다. 하루재클럽의 책을 보면 책의 장정 또한 내용 못지않게 알차서 소유욕을 부른다. 하루재클럽이 펴낸 책들은 우수도서에 네 차례 선정됐다.

다달이 회원들이 내는 회비로 운영되는 하루재클럽의 운영방식은 일본과 대만 등 해외에도 소개돼 찬사를 받았다.

산을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안팎의 찬사와 다르게 10년째를 맞는 하루재클럽은 쉽지 않은 한 해를 보내고 있다. 상근직원 없이 회원들이 내는 회비로 기본적인 경비를 충당해 온 하루재클럽의 회원 수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산악문화의 빈곤함이 회원 수가 줄어드는 근본적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14좌를 오르고, 남북극점에 도달하고, 미답봉을 정복하는 것은 대단한 개인적 성취지만 우리의 산악문화는 그 지점에서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한다."

변 회장은 "국내 산악인들의 인문적 소양의 부족이 아쉽다"며 "산악계의 지도적 인사들이 책을 읽지 않고 글을 쓰지 않는다. 죽을 고생하며 해외 원정해도 변변한 탐험 일지조차 남기지 않는다. 이럴 때 원정은 개인과 특정단체의 성취감과 홍보효과는 기대할 수 있겠지만 산악계의 내실을 다지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산악인들이 산에 가고 암장에서 근육을 키우는 시간의 10분의 1이라도 산서를 읽는 데 썼으면 좋겠다"는 변 회장은 "진정한 알피니즘의 완성은 책"이라고 말했다.

월간산 5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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