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번째 아침에는 이 땅을 딛고 서길, 노동자로서 [이순간]

“내려가고 싶은 거요. 하루빨리 내려가는 게 가장 하고 싶은 말인데… 닛토덴코와 교섭이 이뤄져야지만 내려갈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하고 이때까지 왔던 거라서… 저희 문제가 해결돼서 제가 집으로 돌아가길 바랍니다.” 경북 구미 한국옵티칼하이테크에서 해고 노동자 7명의 고용 승계를 촉구하며 고공농성 중인 박정혜씨에게 ‘가장 하고 싶은 말’을 물으니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답으로 돌아왔다. 9m 높이의 출하동 옥상, 작은 텐트 위로 차광막을 친 공간이 그의 쉼터다. 아침 7시에 일어나 간단한 스트레칭을 하고 식사는 점심·저녁 하루 두 끼, 해가 떠 있을 땐 천막 안에서 책을 읽고 해가 지면 밖으로 나와 간단한 운동을 한다. 이런 하루가 498번 지나갔다. 오는 21일이면 고공농성 500일을 맞는다.
일본 다국적기업 닛토덴코가 지분 100%를 가진 한국옵티칼하이테크는 엘시디(LCD)편광필름을 만드는 회사로 물품의 대부분을 대기업에 납품했다. 외국인투자촉진법에 근거해 50년 토지 무상임대, 법인세·취득세 감면 등의 혜택을 받으며 2021년까지 모두 7조7102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2022년 10월 공장에 불이 났고 한달 뒤 사쪽은 모든 직원을 일방적으로 해고했다. 경기도 평택에 같은 업무를 하는 닛토덴코 지분 100%의 쌍둥이 회사 ‘니토옵티칼’이 있었기에 해고 노동자들은 고용 승계를 요구했지만 사쪽은 법인이 다르다며 거부했다. ‘불에 탄 공장을 강제 철거한다’는 소식이 들리자 2024년 1월8일 박씨는 동료 소현숙씨와 함께 출하동 옥상에 올랐다. 지난 2년 동안 해고 노동자들은 구미시와 평택 니토옵티칼, 일본 닛토덴코 본사 등을 가리지 않고 찾아가 투쟁했고, 시민사회단체들은 희망버스, 희망뚜벅이 등으로 힘을 보탰다. 그사이 닛토덴코는 화재보험금 1300억원을 챙겼고, 니토옵티칼은 2024년 직원 87명을 신규 채용했다. 해고 노동자 7명의 고용 승계 외침은 철저히 무시한 채였다. 외국인투자촉진법의 이점을 살뜰하게 챙기고 열심히 일한 노동자들은 헌신짝처럼 버린 것이다. 외국인 기업을 유치하기 위한 법만 존재할 뿐, 그 안에서 일하는 한국인 노동자들을 보호하는 장치는 어디에도 없었다.
지난 13일 박씨는 자신의 엑스(옛 트위터)에 땅 위에서 투쟁을 외치던 옛날 사진과 함께 이런 글을 적어 올렸다. “고공은 버티기 위한 공간이 아니다. 내려와 일터로 돌아가기 위해 오른 자리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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