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년 사이 단 세 번만 열렸다... '말러 페스티벌'을 가다

김소연 2025. 5. 1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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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콘세르트헤바우
1920년·1995년 이어 올해 3번째 열려
RCO 등 말러 교향곡 11곡 전곡 연주
마리나 말러(첫 줄 왼쪽 네 번째)가 9일 클라우스 메켈레와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가 말러 교향곡 1번을 연주한 후 감격에 겨운 듯 양손을 맞잡고 있다. 콘세르트헤바우 제공 ⓒEduardus Lee

"(이 곡을 듣는 동안) 나는 여러 단계의 천국을 경험했습니다."

13일(현지시간) 탁월한 음향으로 유명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공연장 콘세르트헤바우의 메인홀. 지휘자 이반 피셔와 헝가리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BFO)가 말러 교향곡 5번 연주를 마치자 객석 1,950석을 빈틈없이 채운 청중의 기립박수와 함성이 이어졌다. 2층 발코니석 첫 줄 정중앙의 마리나 말러(81)는 두 손을 가슴에 포개며 감격스러워했다.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1860~1911)의 손녀인 마리나는 8일부터 11일간 매일 이 공연장을 찾았다. 말러 교향곡 11개 전곡('대지의 노래'·미완성 10번 포함)을 연주하는 '말러 페스티벌'이 열렸기 때문이다. 콘세르트헤바우 상주 단체인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RCO)와 BFO, 베를린 필하모닉 등 유럽 악단뿐 아니라 미국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CSO)와 일본 NHK교향악단이 연주에 참여했다. 마리나는 "할아버지는 세계를 아우르는 작곡가였기 때문에 아시아 악단이 참여한 게 특히 의미가 있다"며 "이 축제가 계속 열려 한국 오케스트라도 함께하는 날이 오면 좋겠다"고 말했다.

9일 클라우스 메켈레가 지휘하는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가 말러 교향곡 1번을 연주하고 있다. 콘세르트헤바우 제공 ⓒEduardus Lee

오스트리아 제국 칼리슈테(지금의 체코)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말러는 오스트리아·체코가 자랑하는 문화 유산이지만 암스테르담과도 인연이 깊다. 19세기 말~20세기 초 전 세계적으로 외면받던 말러의 음악을 알아본 눈 밝은 이는 RCO의 2대 수석 지휘자 빌럼 멩엘베르흐(1871~1951)였다. 말러는 멩엘베르흐의 제안으로 콘세르트헤바우에서 1903년 직접 지휘를 맡아 RCO와 교향곡 3번을 연주했고 청중은 열광했다. 말러는 멩엘베르흐에게 보낸 편지에서 '암스테르담에서 제2의 음악적 고향을 찾은 것 같다'고 적었다. 멩엘베르흐는 말러가 50세를 일기로 사망한 지 9년 만인 1920년 5월 말러에 대한 마지막 경의를 표하는 말러 페스티벌을 열었다. 마르타인 산더스 전 콘세르트헤바우 대표가 75주년이 되는 1995년 이 축제를 되살렸고, 100주년을 맞아 기획된 2020년 행사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취소돼 준비된 프로그램은 온라인으로만 중계됐다. 이번 행사는 105년 사이에 열린 세 번째 말러 페스티벌이다.


서울시향 음악감독 얍 판 츠베덴도 참여

14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폰델파크의 야외 무대를 찾은 관객들이 얍 판 츠베덴이 지휘하는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말러 교향곡 6번 실황을 스크린을 통해 감상하고 있다. 콘세르트헤바우 제공 ⓒMilagro Elstak

9일 무대에 오른 시몬 레이닝크 콘세르트헤바우 대표가 멩엘베르흐 등에 대한 감사의 뜻을 표하며 본격적 개막을 알렸다. 1번 교향곡 연주는 RCO와 2027년부터 이 악단의 수석 지휘자를 맡게 될 클라우스 메켈레의 몫이었다. 이후 BFO의 2·5번 연주, 파비오 루이지가 지휘하는 NHK교향악단의 3·4번 등이 교향곡 번호 순서대로 연주됐다. RCO 악장 출신으로 서울시향의 음악감독인 얍 판 츠베덴도 CSO와 함께 6·7번을 들려줬다. 교향곡 6번은 츠베덴 특유의 속도감과 CSO의 일사불란한 합이 보여주는 기술적 완벽함에서 오는 쾌감이 있었다. 수석 퍼커셔니스트 신시아 예가 온몸을 던져 내려치는 두 번의 해머가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천인 교향곡'으로 불리는 RCO의 8번 교향곡 연주는 메켈레의 첫 8번 지휘였음에도 환호를 받았다. 베를린 필은 키릴 페트렌코와의 9번에 이어 건강상 이유로 불참한 다니엘 바렌보임을 대신한 사카리 오라모와 함께 10번을 연주했다.

14일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수셕 퍼커셔니스트 신시아 예가 말러 교향곡 6번 연주 중 해머를 내려치고 있다. CSO 제공 ©Todd Rosenberg

말러 "암스테르담은 제2의 음악적 고향"

구스타프 말러의 암스테르담과의 인연을 잘 보여주는 사진. 왼쪽부터 빌럼 멩엘베르흐, 말러, 작곡가 알폰스 디펜브록. 암스테르담 시립 기록 보관소 제공 ©Hendrik de Booy

객석에서는 네덜란드어와 영어는 물론 독일어, 불어, 중국어, 일본어 등 다양한 언어의 대화가 오갔다. 세계 각지 관객이 모이면서 대부분의 공연 티켓은 개막 한참 전에 매진됐다. 레이닝크 대표에 따르면 관객 절반이 네덜란드 밖 유럽과 북미, 점점 늘고 있는 아시아 관객이다. 관객들은 말러에 집중한 축제 취지에 열광했다. 미국 뉴욕에 거주하는 중국인 관객 슈예(35)는 "뉴욕 카네기홀에서도 말러 교향곡 1·5·6번은 종종 연주되지만 8·10번은 들을 기회가 흔치 않고, 단기간에 여러 오케스트라를 비교해 볼 수 있는 점도 만족스럽다"고 소감을 밝혔다. 특정 작곡가를 주제로 한 축제는 준비 과정부터 특별했다. 충북 청주시에서 온 신동순(62)씨는 "2년 전 치열한 예매 경쟁 속에 티켓을 구해 이번 여행을 준비해 왔다"며 "악단별 개성을 느낄 수 있는 점뿐 아니라 말러라는 작곡가를 공부하는 확실한 동기 부여가 된 점도 좋았다"고 말했다. 레이닝크 대표는 "관객들은 한 세기 동안 단 세 번 열린 말러 페스티벌의 역사적 여운의 독특함을 직접 경험하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콘세르트헤바우. 콘세르트헤바우 제공 ©Jessie Kamp

교향곡뿐 아니라 리사이틀홀에서는 말러의 가곡과 실내악 공연이 이어졌다. 부대행사도 다양하게 준비됐다. 공연장에서 도보 10분 거리에 있는 폰델파크에 대형 스크린을 갖춘 1,500석 규모의 야외 무대를 세워 무료로 연주 실황을 중계했다. RCO 퍼커셔니스트 헤르만 리켄이 안내하는 도보 투어, 관객과의 대화 등도 연일 만원이었다. 레이닝크 대표는 "관객 연령과 배경, 취향이 다양해지는 상황에서 음악을 듣는 것뿐 아니라 관객을 이끄는 법을 함께 배우고 있다"며 "새로운 관객을 초대할 야외 공연과 학술 강연 등을 프로그램에 포함시킨 이유"라고 말했다.

말러는 자연의 위대함과 삶과 죽음, 운명을 그린 작곡가였다. 전쟁과 혐오의 시대를 사는 페스티벌 관객들은 "교향곡은 세상과 같다. 모든 것을 담아내야 한다"고 말한 말러의 음악에서 희망을 찾으려는 듯 매 공연 기립박수를 보냈다. 레이닝크 대표는 2025년에 왜 말러인가를 묻는 질문에 "말러는 진실을 말하려 노력한 시대를 앞서간 작곡가"라며 "말러의 음악이 분열되고 무질서한 오늘날 세계에 명료한 답을 제공하지는 않지만 해법을 향한 탐구 과정의 동반자가 될 수 있다"고 답했다.

콘세르트헤바우 메인홀 발코니석 난간에 새겨진 작곡가 말러의 이름. 말러는 공연장 상단에 적힌 여러 작곡가의 이름 중 무대에서 보기에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새겨져 있다. 콘세르트헤바우 제공 ©Hans Roggen

암스테르담= 김소연 기자 jollylif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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