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지말고 건강하렴”···고향사랑 2114명이 모여 만든 곡성 ‘기적의 소아과’

인구수 2만7000여명 중 절반 이상이 농사를 짓는 평온한 시골마을인 전남 곡성군 주민들에게 아이들의 병치레는 가장 큰 걱정거리다. 지역 내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없어 아이가 아플 때면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당혹감과 두려움이 먼저 엄습한다.
주민들은 아픈 아이를 안고 차량으로 1시간 이상 거리 떨어져 있는 광주 도심까지 ‘원정 진료’를 다녀야 했다. 이동부터 접수, 대기시간까지 하면 아이 진료를 위해선 평균 3시간 가량 소요됐다.
그런 곡성군에 최근 변화가 찾아왔다. 지난 2일 곡성에 소아과 전문의가 진료하는 소아과가 처음 문을 열었다. 곡성이 고향인 전국 각지 2000여명이 십시일반으로 ‘고향사랑기부제’를 통해 힘을 보탠 결과다.
지난 14일 오전 곡성군보건의료원에 있는 ‘매일 만나는 소아과’ 진료실 앞은 10여명의 어린아이와 보호자들로 붐볐다. 부모나 조부모의 품에 안긴 아이들은 마스크를 낀 채 차분히 진료 순서를 기다렸다. 2살배기 아이를 안고 소아과를 찾은 주민 박희연씨는 “아이 몸에 갑작스럽게 열이나 이곳을 찾게 됐다”며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전문 소아과가 생겨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고 말했다.
진료를 마치고 나온 보호자와 아이들은 안도하듯 대부분 입가에 환한 미소를 띠었다. 두 아이와 함께 소아과를 찾은 김미경씨(37)는 “집은 인천인데 부모님 집을 찾았다가 아이에게 장염 증상이 있어 급하게 이곳을 오게 됐다”며 “의사 선생님 너무 친절하고 꼼꼼한 것 같아 아이들 걱정을 한시름 덜고 자주 부모님 집을 찾게 될 것 같다”고 웃었다.

곡성 주민들은 그동안 아이가 아프면 약 50㎞ 이상 거리에 떨어져 있는 광주나 순천 등으로 원정 진료를 다녀야 했다. 곡성 전체 주민 2만7000여명의 약 10%인 2400여명은 소아·청소년이다. 지역에 소아과를 갖는 게 주민들의 숙원이었다. 곡성군이 2023년 주민 1000여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주민 4명 중 1명은 지역에 가장 필요한 편의시설로 ‘보건의료 시설’을 꼽았다.
곡성에 소아과를 마련해 준 원동력은 ‘고향사랑기부제’다. 곡성군은 지난해 7월 24일 ‘곡성에 소아과를 선물해주세요’라는 주제로 모금을 시작했다. 5개월 만인 작년 12월 말 2114명이 기부에 참여해 3억4010만원이 모였다.
주민들은 그래서 곡성에 처음 생긴 이 소아과를 “기적의 소아과”라고 부른다. 주민들은 기쁨을 감추지 않고 있다. 곡성군에서 운영하는 ‘소아과 응원하기’ SNS에는 ‘꿈만 같아요’ ‘희망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등 주민으로 추정되는 글 수십여개가 적혀있다. ‘아프지 말고 건강해야 해’ ‘항상 웃길 바랄게’ 등 응원 댓글도 잇따르고 있다.
이곳 소아과에서 아이를 진료하는 전문의는 최용준씨(42)다. 인하대 의대를 졸업한 그는는 서울 아산병원에서 전공의 과정을 거친 뒤 경기도 안산병원과 한림대 동탄성심병원 등에서 근무한 이력이 있다. 곡성과 연고가 없는 그는 우연히 ‘곡성에 소아과가 없다’는 언론 보도를 접하고 “힘을 보태야겠다”는 생각에 곡성군에 먼저 연락을 취했다고 한다.
곡성군은 소아과의 안정적 운영에 집중할 계획이다. 의대 졸업 후 5년간 곡성에서 근무하는 조건으로 의대생에게 장학금을 지원하는 후속 사업을 계획 중이다.
곡성군 관계자는 “곡성군을 응원해 주시고 기부해 주신 많은 분 덕분에 지역의 열악한 의료 현실을 타개할 수 있었다”며 “앞으로도 아이 낳기 좋은 곳, 아이 키우기 좋은 곳을 만들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고귀한 기자 g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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