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르는 순간을 줍습니다"... 시인이 20년간 매년 여행하는 이유는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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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에서 저는 채집통을 가집니다. 여행이 끝나면 채집통은 불룩해져요. 영혼의 허기를, 마음의 추위를 채워주는 보석 같은 장면들 때문이지요."
대학 입학 때부터 올해까지 20년간 매년 여행을 해온 시인 안희연(39)은 "줍기 위해" 여행을 한다.
그는 "인간이 기계처럼 바뀌거나 무언가에 무관심해지고, 권태로워지는 순간 위험하다"며 "오래 생각하지 않거나 꽁꽁 숨겨뒀거나 놓치고 있던 기억과 감정을 끊임없이 마주하게 하는 게 문학의 쓸모"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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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2025년 매년 여행
"통각을 깨우는 게 문학 역할"

"여행지에서 저는 채집통을 가집니다. 여행이 끝나면 채집통은 불룩해져요. 영혼의 허기를, 마음의 추위를 채워주는 보석 같은 장면들 때문이지요."
대학 입학 때부터 올해까지 20년간 매년 여행을 해온 시인 안희연(39)은 "줍기 위해" 여행을 한다. "찌르는 순간들, 관통해가는 감정들"을 채집통에 주워 담는다. 이렇게 모은 감정으로 시를 썼다. 여행이 그를 시인으로 만든 셈이다. 지난 16일 만난 그는 "좋은 시를 쓰고 싶은데 내가 이 세계를 모른다, 너무 좁은 곳에 있다는 생각에 두려움도, 거리낌도 없이 여행을 떠날 수 있었다"며 "이 세상과 닿는 접촉면을 넓히고 싶었다"고 했다.
고여 있을 때 흐르기 위해 떠나
그는 고여 있다는 생각이 들면 항상 떠날 궁리부터 했다. 홀로 배낭을 둘러멘 채 한두 달씩 떠났다. 그는 "압정에 발이 닿는 것처럼 따끔하거나 아름답고 찬란한 장면들을 주로 줍는다"고 했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 나무 한 그루가 있는 풍경이 될 때도 있다. 여행에서 주워 올린 감정들과 장면들은 고인 그를 흐르게 했다. 그는 무언가를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흐르기' 위해 여행을 했다.

그가 흐르면서 주워 올린 순간을 담은 산문집 '줍는 순간'을 최근 펴냈다. 2017년 출간한 '흩어지는 마음에게, 안녕' 이후 8년간 여행의 기억을 더했다. 필름, DSLR, 토이 카메라까지 3대로 직접 찍은 사진들과 한 줄 설명도 함께. 렌즈가 포착한 순간이 외려 한 편의 시다. "혼자 여행을 하다보니 광장이나 공원, 카페에 가만히 앉아 이곳 사람들은 어떤 표정을 짓고 살아가고 있나 유심히 관찰하게 됐죠." 낯선 도시에 내리면 제일 먼저 통창이 있는 카페를 찾아가는 게 그의 여행 루틴 중 하나다. 현지 극장에서 영화를 보거나 서점에서 현지어로 쓰여진 책을 사기도 한다.
특정 장소와 짝꿍이 되는 책을 미리 준비해 떠나는 것도 입체적인 여행을 즐기는 그만의 팁. 체코에 갈 때는 '프라하의 봄'을 배경으로 하는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인도 벵골계 미국인 줌파 라히리가 이탈리아어로 쓴 소설 '로마 이야기'를 이탈리아 여행에 챙기는 식이다.
"통각 깨우는 게 문학 역할… 통점 건드리고파"
시인은 여행에서 문학 작가의 흔적을 좇는다. 독일 뮌헨의 슈바빙에서 전혜린의 흔적을 찾거나, 포르투갈에 있는 주제 사라마구와 페르난도 페소아의 집을 방문한다. 샤를 보들레르가 잠든 프랑스 파리의 몽파르나스 묘지에는 '제발 시인이 되게 해달라'는 편지까지 남긴다.

파리의 페르 라셰즈에서 오스카 와일드의 묘지에 헌화하고 돌아온 숙소에서 그는 와일드의 소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을 읽으며 밤새 홀로 고민한다. 초상화 속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을 영원히 간직할 수 있다면 영혼이라도 내주겠다는 소원을 비는 소설 속 주인공을 보며 '위대한 시인이 된다면 영혼을 팔 수 있을까' 자문한다. "작고 아름다운 장면들을 성실하게 주우면서 매일매일 기록하고 채집하면서 사는 게 저에게는 더 위대한 작가여서 영혼을 교환하는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안희연은 고통과 슬픔을 직시하는 시를 주로 짓는다. 그는 모든 사람 안에 있는 통각을 깨우는 게 문학의 역할이라 믿는다. 그는 "인간이 기계처럼 바뀌거나 무언가에 무관심해지고, 권태로워지는 순간 위험하다"며 "오래 생각하지 않거나 꽁꽁 숨겨뒀거나 놓치고 있던 기억과 감정을 끊임없이 마주하게 하는 게 문학의 쓸모"라고 강조했다. 여행에서 채집한 기억과 감정을 시를 통해 그는 "독자들의 통점을 계속 건드리고 싶은 사람이고 싶다"고 했다.
권영은 기자 you@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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