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된 노 화백의 역동적 예술세계 속으로

어태희 2025. 5. 18.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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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에서 향토적인 서양화로 고집스럽게 자신만의 길을 걸어 왔던 노 화백의 그림은 어떤 모습일까. 고(故) 배창노 화백(1941~2024) 초대전이 경남교육청 제2청사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에는 싸우는 싸움소, 닭 무리, 새 등의 역동적인 모습을 담은 유화 작품과 인물화 등 20여점이 걸렸다.

배 화백의 작품에는 사실주의적 묘사가 돋보인다. 배 화백은 특히 소 싸움 그림을 자주 그렸는데, 소 두 마리가 머리를 부딪히는 역동적인 모습을 담아낸 작품에는 날카롭게 선 소의 핏대와 주름, 털의 질감과 서슬 퍼런 안광까지 섬세하게 묘사했다. 그런 반면 피사체의 역동성을 더해주는 과감한 색감과 표현법도 돋보인다.
고 배창노 화백 作

고 배창노 화백 作

배 화백의 그림에 담긴 개성은 그가 가진 경험에서 기인한다. 배 화백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진해경화극장, 마산 3·15회관, 태양극장, 강남극장 등 지역에서 극장 간판에 그림을 그리는 일을 해왔다. 배 화백의 아내인 김신지(81)씨는 “남편은 어릴 때부터 그림에 소질이 있어 지역에서도 손꼽히는 간판 부장이었다. 영화배우들의 특징을 포착해 간판에 생생히 담아내는 재능을 가졌다”고 회상했다.

가정을 꾸린 뒤 ‘제일용역사’라는 간판 회사를 운영하기도 했으나, 1979년 사업을 정리하고 본격 화업에 전념했다. 처음 10년간은 동양화를 그려 오다 1996년부터는 서양화로 전환했다. 그림을 그리는 남편 대신 생업을 책임지던 김씨는 배 화백이 대구대학교 미술교육원에서 서양화의 기초를 배울 수 있도록 지원해주기도 했다. 이후 2024년 1월 암으로 타계하기 전까지 배 화백은 붓을 놓지 않았다. 그를 아는 가족과 지인들은 “배 화백이 그림에 대한 열정이 상당했고, 여든의 나이까지도 그림을 그리기 위해 운동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지난 16일 고 배창노 화백 초대전이 열린 창원시 성산구 경남교육청 제2청사 갤러리에서 배 화백의 아내 김신지씨 등 유족들이 작품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김승권 기자/

지난 16일 고 배창노 화백 초대전이 열린 창원시 성산구 경남교육청 제2청사 갤러리에서 배 화백의 아내 김신지씨 등 유족들이 작품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김승권 기자/

마산에 위치한 그의 작업실에는 2023년 말까지도 그려왔던 작품들이 있다. 풍경화와 인물화도 많이 그렸지만 토속적인 정서와 맞닿아 있는, 특히 싸움소와 호랑이처럼 강한 기운을 가진 피사체를 선호해 왔다.

4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개인전은 단 세 번 열었다. 2018년 창동에서 연 개인전이 마지막이었다. 7년 만에 열리는 네 번째 개인전은 그의 유고전이기도 하다. 전시는 오는 30일까지.

어태희 기자 ttotto@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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