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과 누적]시는 직업이 아니라 삶의 방식

“음악적 갈망보다 문학적 욕심으로 시작되었어요.” 새 앨범 <집중호우 사이>(사진)를 발표한 정태춘의 고백이다. 그의 말처럼 음반에는 12편의 시(詩)가 처연해서 더욱 아름다운 선율에 실려 흐른다. 미국 시인 메리 올리버의 정의 그대로다. “시는 직업이 아니라 삶의 방식입니다. 빈 바구니예요. 당신의 인생을 거기 집어넣고 그로부터 뭔가를 만들어낼 수 있는 거죠.” 마치 정태춘과 박은옥이 걸어온 세계를 대변하는 것처럼 읽힌다.
노래와 연주와 가사가 동등한 위치에서 작동하는 음악이 있다. 시적인 노랫말과 최소한의 소리만으로 정물적 고요함을 길어 올린 음악이 있다. 여기에는 도도한 외침도, 강렬하게 내리치는 악기도 없다. 정태춘은 탄식 같은 읊조림으로 그저 우리가 사는 세상을 노래한다. 이제 고백의 시간이다. 첫 곡 ‘기러기’를 감상하면서 울컥하는 심정을 감추려 애썼다. 버스 안에서 하마터면 눈물 흘릴 뻔했다. 과연 그렇다. 때로는 속삭임이 거대한 웅변보다 더 오래 귓전을 흔들 수 있다.
나도 안다. 정태춘이라는 거인의 그림자에서 벗어나기란 어렵다. 그럼에도 거장이라는 이유로 무조건적 경배나 주례사 비평을 획득할 수는 없다. 내 독후감은 이렇다. <집중호우 사이>가 2025년 최고 작품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이를 뛰어넘는 감동을 선사하는 앨범이 나올까 싶다. ‘기러기’와 더불어 섬세한 기타 선율 위로 가창과 독백을 오고 가는 ‘도리 강변에서’의 품격 있는 진행은 찬탄을 절로 부른다.
세월이 이끼처럼 누적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할 음악이다. 정태춘은 노랫말과 음악으로 누군가를 판단하거나 비난하지 않는다. 그저 삶의 진상을 기록할 뿐이다. 그리하여 어떤 진실에 다가선다. 세상이 아무리 시끄러워도 어딘가에 분명 그윽하고 깊은 것이 있으리라고 믿는 사람이라면 이 음악을 들어야 한다. <집중호우 사이>다.
배순탁 음악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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