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 역사 장편소설 죽창 [제9장] 영광·함평·나주·무안 동학농민군(146회)

정희윤 기자 2025. 5. 18.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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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짓재 전투에서 승리한 것도 잠시, 중앙군은 별동부대까지 동원하여 대대적인 보복전을 벌이기 위해 남진하고 있었다. 이 소식을 듣고 영광 출신 접주 김관서가 전의를 불태웠다.

"저들이 쳐들어온다면 이참에는 완전히 뽀사부러야제."

다른 농민군이 받았다.

"암만이오, 영광땅에서 동학군의 영광을 길이 보전해야지라우."

그들의 표정에는 비장감이 서렸다. 그러나 전봉준의 생각은 달랐다.

"영광을 비우겠소."

둘러 선 접주들이 모두 놀랐다. 그들은 멀리서 온 사람들이었다. 멀리서 왔으니 승리의 기쁨을 좀더 만끽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중 김재희는 경상도 하동에서 왔고, 김학식은 수접주로서 전라도 광양, 순천에서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한 사람이었다. 가까운 곳에서는 함평노씨 노인경, 봉윤홍도 끼어 있었다. 노인경은 쉽게 철수한다는 것이 납득이 되지 않아 이렇게 말했다.

"기껏 접수한 땅을 비워불면 또다시 관군 세상이 되고, 그러면 늘 걱정하듯이 그들은 동학 가담자를 색출하여 대대적인 보복을 벌일 것이오이다. 가담자가 아니라도 저들은 일반 백성도 연루자로 몰아 처벌할 것인디, 그렇게 되면 점령안한 것만도 못하단 말이요. 기왕에 점령했으면 사후 처리까지 책임져야 하는 것 아니오?"

전봉준이 무겁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평정했으면 후속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한다는 건의는 백번 옳은 말이오. 그렇다고 영광땅에 계속 머물러 있을 수 없소이다. 진격로를 함평, 무안으로 잡겠소. 대신 노인경 접주의 주장을 따라 동학군 일부를 영광땅에 잔류시키겠소. 보복전이 나오지 않도록 방비할 것이오. 군사들을 모두 산에 매복시키겠소. 관군이 백성들을 괴롭히면 그때 출동하여 뜨거운 맛을 보여주는 것이오. 대신 우리 군사의 주력은 관군이 두려워서 후퇴하는 모양새를 취할 것이오. 그렇게 해서 홍계훈 군사의 씩씩대는 김을 빼버리는 것이오. 저들이 허당을 치도록 유도하고 우리는 여유있게 함평으로 진격하는 것이오."

무안 접주 김응문이 나섰다.

"함평과 무안은 동학 교세가 강고한 지역이외다. 군사와 무기와 군량을 확충하는 텃밭이 될 것이오. 두 곳에서 힘을 비축하여 나주로 진격하여 나주성을 공략합시다. 그런 다음 월평으로 올라가야지요. 관군 병력이 황룡강에 진을 치고 있다고 하니 그들을 격퇴하고 전주성으로 진격해야 합니다. 우리의 목표는 한성이니 시간을 지체할 수가 없소이다."

일제히 박수가 터져나왔다.

날이 밝자 군사를 크게 세 개조로 나누어 편성하였다. 잔류 병사를 영광땅에 남기고, 두 개조의 주력이 함평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군사들이 깃발을 높이 들어 함평 땅에 들어가니 갑오년 4월 16일(음력)이었다. 무장과 고창, 영광에서 1만여 명에 이르렀던 군사는 함평 땅을 밟을 때는 칠천 명으로 줄어들었다. 영광 잔류 병력 때문이었지만 함평·무안에서 그 이상 군사가 충원될 것이기 때문에 걱정할 것이 없었다. 창계면의 배상옥 부대, 몽탄면의 김응문 부대, 해제면의 최장현 부대가 합류해오면 군사는 다시 일만을 헤아릴 것이다.

함평 땅으로 진격하면서 동학농민군은 공삼덕 풍물패를 앞세웠다. 풍물패의 길놀이는 연도에 수많은 사람들을 불러모았다. 주민들은 모두들 새 세상이 왔다고 가슴 부풀었다. 다른 한편으로 보복이 두려워 가슴 졸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동학농민군은 창검이나 조총으로 무장하고 100여 명의 기병이 마상에서 기를 잡고 앞서 나갔다. 그중에는 갑옷을 입고 전립을 쓴 기병도 있었다. 조총은 영광과 무장, 고부의 군기고에서 노획한 것들이었다. 비록 고물 총이었으나 죽창과 쇠스랑, 도끼에 비해서는 한결 우수한 병기였다.

동학농민군의 행군은 위세가 당당하였다. 절도있는 구보, 일정한 간격을 두어 대오를 갖춘 정확한 보폭, 일사불란한 이동 간격, 어떻게 지리멸렬한 농투성이들이 저런 조직적인 군사조직이 되었을까 할 정도로 정예군의 모습이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