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진씨 무슨 피아노 골랐어요?"... 무대 뒤 또 하나의 공연
편집자주
예술경영 현장을 20년 넘게 지켜 온 서고우니 예술의전당 공연예술본부장이 무대와 객석 사이의 생생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오늘 조성진씨 무슨 피아노 골랐어요?” 조성진 리사이틀이 있는 날 아침, 나는 음악당 무대감독실로 전화를 건다. 수화기 너머로 짧은 답이 돌아온다. “318이요.” 이 간단한 대화에는 공연장 무대 뒤의 특별한 이야기가 숨어 있다. 예술의전당 음악당에는 총 12대의 피아노가 있고, 그중 콘서트홀에는 4대가 준비되어 있다. 이 피아노들은 모두 항온·항습이 철저히 유지되는 별도 공간에 보관되며 연주자가 선택한 피아노는 공연 시간에 맞춰 무대로 옮겨진다.
공연장 무대 뒤에서는 관객이 잘 모르는 언어가 오간다. '318'이라는 숫자도 그중 하나다. 이는 그랜드피아노의 일련번호 끝자리로, 무대감독과 연주자들 사이에서는 공통의 약속 같은 암호가 된다. 이 피아노가 풍성한 저음을 지녔는지, 밝고 맑은 고음을 내는지에 대한 암묵적인 합의도 있다.
연주자들은 본인이 연주할 레퍼토리와 스타일을 고려해 피아노를 고른다. 공연 전날 혹은 당일 리허설 전에 여러 대의 피아노를 직접 연주해보며 손끝의 감각과 울림을 비교한다. 같은 구절을 반복해 연주하며 고음의 반응이나 저음의 깊이를 섬세하게 따져보는 모습은 일종의 조율된 탐색처럼 보인다. 그날의 컨디션, 곡의 분위기, 홀의 음향까지 종합적으로 판단해 선택이 이루어지고 나면 조율사는 그 악기를 정성껏 조율한 후 공연에 맞춰 무대 위로 옮긴다. 관객이 듣는 그 첫 음은 사실, 이미 무대 뒤에서부터 조심스럽게 빚어진 결과물인 셈이다.

공연장에서만 쓰는 또 다른 언어도 있다. 관객석에서 무대를 바라볼 때 오른쪽은 ‘상수(上手)’, 왼쪽은 ‘하수(下手)’라고 부른다.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지휘자와 연주자가 주로 등장하는 무대 왼쪽 출입구가 바로 ‘하수’다. 무대 하수는 연주자들이 공연 전 마지막으로 숨을 고르고, 연주 후 가장 먼저 긴 호흡을 내쉬는 곳이기도 하다. 오케스트라 공연에서는 단원들이 상수와 하수에서 동시에 입장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이 상·하수라는 용어는 공연장 근무자들에게는 자연스러운 언어다. “지금 어디 계세요?”라는 질문에 “콘서트홀 무대 상수 쪽에 있어요”라고 답하면 누구든 정확한 위치를 금세 짐작할 수 있다.
공연 시작 전, 하수 출입구 뒤 좁은 공간은 보이지 않는 분주함으로 가득하다. 무대감독은 연주자에게 조용히 시선을 보내고 출입문 앞에 서서 짧은 눈빛 교환으로 입장 시점을 정한다. 공연기획자는 그 뒤편에 서서 연주자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조용히 박수를 보낸다. 문이 열리고, 객석에서 박수가 터져 나온다.
연주가 끝나고 연주자가 퇴장할 때도 같은 곳을 향한다. 하수 출입구 너머에서는 무대감독과 공연 담당자가 먼저 연주자를 맞는다. 성공적인 공연 후라면 밝게 웃으며 “고생하셨습니다” 인사를 나누지만, 때론 미세한 표정 변화나 짧은 침묵으로 서로의 마음을 짐작하기도 한다. 연주자가 손을 꼭 쥔 채 미소를 짓거나 공연 담당과 축하의 눈빛을 나누는 그 순간, 이 모든 것이 무대 하수에서만 오가는 진솔한 마음이다.
그래서 공연장의 무대 하수는 단순한 출입구가 아니다. 연주자의 긴장과 안도, 성공과 아쉬움이 교차하는 작지만 특별한 공간이다. 무대 위 화려한 조명과 박수 뒤에서, 수많은 마음이 무대 하수를 지나며 흐르고 있는 셈이다. 예술의전당을 찾게 된다면 무대 왼편 하수 출입구 안쪽을 상상해보길 바란다. 그곳에는 무대 위의 모든 순간이 시작되고, 또 마무리되는 조용한 이야기가 흐르고 있다. 그리고 오늘도, 그 작은 공간 어딘가에서 조용한 목소리가 오간다. “아티스트 입장합니다.” 이렇게 우리는 무대 뒤에서 또 하나의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예술의전당 공연예술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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