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신기단 청도 원광법사의 흔적을 찾아 스토리텔링

강시일 기자 2025. 5. 18.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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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신기단 33명 운문사, 풍류마을, 대비사, 박곡불상, 장연사지 역사 문화 현장 더듬어
신화속의역사기행단이 17일 청도 운문사 처진소나무 앞에서 기념촬영하고 있다.

대구일보가 주관해 운영하는 신화 속의 역사 현장을 찾아가는 기행단(이하 신기단) 33명이 17일 '원광법사의 길을 찾아'라는 제목으로 청도 운문사, 화랑풍류마을, 대비사, 박곡불상, 장연사지 등의 역사문화현장을 답사했다.

신기단은 이날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서 길게 소개하고 있는 원광법사의 흔적을 따라 운문사의 특이한 두 개의 대웅전, 대작갑사의 유일한 흔적으로 남은 석불좌상과 사대천왕의 석상 등을 김구석 경주남산연구소 소장의 해설로 둘러봤다.

신기단이 이날 가장 먼저 방문한 운문사는 신라 진흥왕 21년(560년경) 어떤 고승이 현재의 운문사 터에 작은 암자를 짓고 3년간 수도한 뒤 창건한 사찰이라 전한다. 창건 당시 중앙에 세운 절을 대작갑사라고 불렀으며, 동·서·남·북 네 방면에 가슬갑사·천문갑사·대비갑사·소보갑사 등 네 암자를 함께 세웠다. 이후 신라 진평왕 30년(608년)에 원광법사가 이 사찰을 다시 일으켰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신기단이 청도신화랑풍류마을에서 기념촬영하고 있다.

13세기 후반 운문사는 불교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하기도 했다. 1277년(고려 충렬왕 3년)부터 고승 일연대사가 5년간 운문사 주지로 머물면서 이곳에서 '삼국유사' 집필을 했다고 한다.

조선 초 불교 억압과 임진왜란 등의 영향으로 운문사는 한때 위축되었으나, 17세기 중엽 다시 재건되었고, 1655년경 운문사 경내에 크고 작은 27개 전각이 있었다는 상량문 기록이 발견되었다.

운문사는 과거 비로전으로 운영되었던 대웅보전을 비롯 최근에 건축된 대웅보전과 함께 두 개의 대웅전을 가지고 있다. 1954년 불교 정화운동을 계기로 운문사가 남성 승려 대신 비구니 스님들이 수행하는 도량으로 전환 한국 불교 최대 규모의 비구니 사찰로 성장했다.
김구석 경주남산연구소장이 운문사 대작갑사에 대한 해설을 하고 있다.

운문사에는 통일신라 시대부터 전해지는 대웅보전, 관음보살과 달마대사 등이 그려진 탱화, 동서 삼층석탑, 금당 앞의 석등, 석조여래좌상과 석조사천왕상 등이 보물로 지정 관리되고 있어 오랜 전통사찰의 면모를 보여준다. 고려시대 고승 원응국사비와 같은 석비도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또한 운문사 처진소나무는 수령 500년으로 추정되는 아름드리 적송으로 천연기념물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신라 화랑의 후예로 태어난 원광법사는 당나라 유학을 다녀온 이후 진평왕 시대에 운문사에서 귀산과 추항 화랑들에게 세속오계를 전하는 등으로 불교계는 물론 '걸사표'로 수나라 군사를 청해 고구려를 공격하는 등 신라사에 큰 획을 그은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청도 운문사 답사를 위해 기행하고 있는 신화속의역사기행단.

삼국유사는 당속고승전, 삼국사기와 수이전, 전해오는 이야기 등에서 드러나고 있는 원광법사가 법문을 읽으며 진평왕의 병을 치료하는 등의 도력과 기도하는 자세로 열반에 드는 설화들까지 다양하게 소개하고 있다.

신기단은 특히 "원광법사가 도력으로 병란의 위기를 넘긴 이야기, 보양스님이 운문사를 도와준 이무기를 살려주는 장면 등의 소설 같은 장면을 오래된 석조물과 신비스런 탱화 등의 유물이 모두 사실과 같이 느껴진다"면서 "스토리텔링으로 산업화 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김구석 소장은 "이미 1천오백년 전에 청년들에게 삶의 지표로 제시한 세속오계와 같은 원광법사의 지혜는 다양한 콘텐츠로 문화산업화 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경주를 중심으로 사방에 널린 보물 같은 역사문화를 활용하기 위한 특별한 정책을 강구할 때"라고 말했다.

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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